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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Aug 15. 2023

맞고 일하는 교사

신변의 위협까지..?

나는 운이 좋게도 교직생활을 하며 맞아본 적 없다.

이걸 ‘운이 좋다’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학교에서 맞으며 자란 지금의 젊은 교사들은

교사가 되어서 언제 맞을지 모르는 위협 속에 산다.


다행히 맞아본 적은 없지만 맞을 뻔한 적은 있었다.

결국 맞지 않았고, 일도 잘 해결되었지만

다시 그 순간을 떠올려보면 공포스럽고, 서럽다.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길이었다.

출근길에 우연히 만난 동료들과 당연한 코스인

편의점을 들르고, 좋아하던 바나나 우유를 샀다.

유치원이 가까워져 오고, 말은 가기 싫다 하면서도

정작 부지런히 유치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우리.


평소처럼 유치원 앞에 도착했고,

처음 뵙는 얼굴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성분이

유치원 문 앞에 서 계셨다.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다.

곧 저 아버님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거란 걸!




교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원장실로 소환되었다.

알고 보니 그 건장한 체격의 남성분은 우리 반 아이

아버님이셨다.

아버님은 아침 일찍 원장님을 뵙기 위해 오셨고,

원장님께서는 교실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담임이

출근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답변하셨다.

기다리는 동안 차라도 한잔 내어드리지...

문 앞을 서성이게 하기보다 앉아서 기다릴 자리라도

마련해 드리지....


아버님은 그렇게 내가 출근할 때까지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얼굴도 모르는 담임교사를 기다리셨다.

아마 기다리는 동안 화의 크기는 점점 커졌을 거다.


아버님을 만나러 나가는 찰나의 시간 동안 생각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아침부터 달려오셨을까?
어제 **이 다치지 않고 큰 갈등 없이 지냈는데,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나?
나 이번엔 뭘 잘못한 걸까?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는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고

스스로 이미 나 자신을 죄인으로 여겼다.




누가 봐도 화가 난 상태의 아버님을 뵈러 나가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담임교사를 만나러 온 학부모님께 기관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외부인 출입 불가함을 알렸고,

그렇다고 담임교사와 함께 밖으로 나오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은 내게 부담과 더 큰 두려움으로 돌아왔다.

아버님은 나를 만나자마자 어금니를 꽉 깨문 채

화를 억지로 참아가며 말씀하셨고

나는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꼈다.

어쩌면 맞을 수도 있겠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그늘로 가서 이야기하자는

핑계를 대며 cctv 근처로 이동했다.

아버님께서는 아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하시며

어제 아이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화가 솟구쳐

잠을 잘 수 없어 아침부터 달려왔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화를 분출하기 위해 뒤를 돌아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허공에 치셨다.


그날의 공포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속은 바들바들 떨면서 겉으로는 차분함을 유지하며

아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말을 듣고 학교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말씀해 주셔야 도와드릴 수 있다며 설득했다.


겁에 질렸지만 유치원 현관 밖에는 아버님과 나,

둘 뿐이었다.

관리자들은 내가 지금 화난 아버님과 밖에서 대화

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잠시도 나와주지 않았다.

보다 못한 행정실에서 행정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식물에 물을 주는 척 나와주셨다.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렸다.

이젠 맞는다 해도 목격자가 있고, 말려줄 사람도

생겼으니까!

마음속으로 나는 교사다. 교육적인 답변을 드리자

새기고 또 생겼다.





다행히 내가 모르는 심각한 일이 생긴 건 아니었다.

아이가 바깥놀이 시간에 술래잡기를 하는데 혼자만

계속해서 술래를 했고, 특정 친구가 본인과 놀지

않는다며 아버님께 투정 어린 관심을 끈 것이었다.


아버님께 술래를 많이 한 것은 사실이며, 이유는

달리기가 느려 계속 잡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친구들이 고의로 한 아이만 술래를 시킨 게 아니고

말로만 전해 들으면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특정 친구가 본인과 놀아주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이는 한 친구와 깊게 놀고 싶어 하는데

**이가 좋아하는 친구는 두루두루 어울려 놀이하는

편이며, 놀이 성향이 달라 하루종일 같이 놀이하지

않을 뿐 학급에서 굉장히 친한 사이임을 해명했다.


아버님의 걱정에 대한 답변을 침착하고 교육적으로

해냈지만, 속으로는 제발 이쯤에서 끝내기를 빌고

빌었다.



아버님은 나의 답변에 납득은 하신 것 같았지만

쉽게 화가 가시지 않는 듯 계속해서 화를 내셨다.

결국 교실에 수업하러 들어갈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고 긴 이야기는 방과 후에 통화로 진행하기로

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유치원에 들어왔다.


내가 실내로 들어오자마자 관리자들이 다가와서는

“뭐라고 하셔?” “잘 수습했어요?”라며 물으셨다.

서러웠다.

왜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아침부터 난데없이 화를

받아주고, 기관에서는 교사를 지켜주기는커녕

불똥이 본인들에게 튀는지의 여부만 관심 가지 다니.




나는 관리자들의 질문에 예의 없게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눈물로 세수할 지경으로 말없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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