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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Aug 10. 2023

아무것도 안 하겠습니다.

하다 하다 왕의 DNA

이젠 하다 하다 우리 아이는

‘왕의 DNA'를 가졌다는 교육부 공무원의 교사 갑질

뉴스가 보도되었다.

교사로 근무하며 ‘n년만에 얻게 된 귀한 자식’ ,

‘n대 독자’ 어린이‘님’들은 많이 만나봤지만

왕의 DNA라는 신박한 발언은 처음 들어봐서

참 역대급이다 싶었다.


그런데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니,

전혀 역대급이지 않다. 교사라면 익숙한 일들이다.



왕의 DNA를 가진 아이를 위한 교육내용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아이만 왕으로 대하세요”

심지어 “대해주세요.”도 아닌 “대하세요”다.

엄연한 교육 전문가인 교사에게 무려 교육에 대한

지시를 하다니...

갑질도 참 정성스럽게 한다 싶었다.


정말 교육부 공무원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갑질을 하면

아이는 왕처럼 귀하게 대접받으며 자랄 수 있을까?




소름 돋게도 내 짧은 교직생활동안

저 사진의 하나부터 아홉까지 다 겪어보았다.

모든 교사가 나 같이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나의 경우는 “특별히 대해달라. “는 요구를 받을수록

특별히 최대한 아무 개입도 하지 않았다.

특별히 대한다는 명목하에 하나라도 더 잘해주려고

지도하면 곧장 또 민원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특별한 대우를 바라며 뻔뻔하게 교사의

교육권까지 본인의 것인 양 지시하는 부모의 자녀는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된다.

교사는 아이가 불쌍하지만, 이 아이로 인해

불편함을 겪는 다른 아이들이 생겨 골치가 아프다.


아이가 특별하답시고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순간

왕의 DNA를 가졌건, 3대 독자건,

7년 만에 인공수정으로 겨우 얻은 자식이던,

교사에게는 포기의 대상이 된다.

아무리 좋고 능력 있는 선생님을 만나도 마찬가지다.

교사의 교육할 권리를 뺏었으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이 지나길 바랄 뿐이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형성할

수 있도록 교육받는 기회를 부모가 뻥 차버린 거다.



대체 교사를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교육기관에 보낼

용기를 내신 걸까?

교육은 철저히 사람인 교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누군가의 귀한 집 자식인 교사는

자신이 자라오며 받은 사랑으로, 열심히 공부하며

쌓은 전문성과 교육에 대한 신념으로 가르친다.


교사도 누군가의 귀한 자녀

아이들도 누군가의 귀한 자녀

모두가 다 누군가의 귀한 자녀들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우리 아이‘만', 나’만' 귀하다고 외쳐봤자 세상이

그렇게 여겨줄까?

갑질을 하는 찰나의 순간에는 그렇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아니다.

타인의 존엄과 귀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만 귀하니

당당하게 ‘차별’을 요구하는 태도는

결국 사회에서 배척당한다.


아무리 왕의 DNA를 가졌다 주장해도 우리 세상은

그렇게 여겨주지 않는다.

언제부터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곳이었던가?


일곱 살짜리 아이들만 해도

자기주장만 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는 친구를

아이들이 싫어하며 같이 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미 일곱 살의 세상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어른의 세상에서는 특별히 차별해 달라는 게

가능할 리 만무하다.


공정이 화두인 사회에서 당당하게 차별을
요구하는 자,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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