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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Aug 09. 2023

언제까지 피켓을 들게 할까

참을 수 없는 교사들

나는 내가 이렇게 프로 집회러가 될 줄 몰랐다.

그저 살랑살랑 잔잔한 바람만 불었던 내 인생에

이제 집회는 한 치의 고민 없이 가는 현장이 되었다.

유치원 교사가 된 이후로,


시작은 국공립유치원 위탁경영 반대 집회,

그게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집회일 줄 알았지만

만 5세 조기 취학 반대, 유보통합 졸속행정 반대,

그리고 이제 n차에 걸쳐 이뤄지는 공교육 정상화 및

서이초 사건 진상규명 촉구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공통점을 살펴보면 내가 참여한 모든 집회들이

교육현장을 무시한 탁상행정으로 인한 것들이다.

법에 따르면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은 ‘교사’이고,

가르친다는 것은 교육을 하는 것인데

왜 교육할 수 있는 자격도 없는( 교원자격도 없는 )

사람들이 교육을 좌지우지해야 할까?


교사들이 화가 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정작 교육을 하는 당사자는 교사들인데

교육을 막고, 간섭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외부의

요인이 너무나 많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의 교사는 가르침의 자격을

지닌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

교육관과 관계없이 상부의 지침을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었다.




교사들 중 그저 안정적인 공무원을 꿈꾸고 입직한

교사도 있겠지만,

처음엔 아니다가도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 피어나는

것이 교사의 본능이다.

이 아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르침을 주겠다는,

아이들이 웃을 때 이유 없이 행복해지는

교사라는 직업의 순수한 보람이 있다.


어쩌면 이 순수한 행복 덕에

많은 유능한 교사들이 적은 보수에도 교직을 지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교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교사효능감과 행복.

교사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자 중독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주는 기쁨으로 버티기

어려운 교육현장이 되었다.

‘버틴다’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부터 슬프고,

하나 둘 교직을 떠나는 유능한 인재들을 보며 요즘

교육현장이 얼마나 척박했는지 더 와닿는다.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교직사회.

2023년까지 이 낡은 조직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사들의 성향이 대체적으로 순해서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학창 시절부터 선생님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고, 교육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더 높은 인내와 희생이 요구되기도 한다.

관리자의 지시에 넓은 마음으로 흔쾌히 따르는,

다른 표현으로 순종적인 조직문화가 만들어지기에

적합한 집단이다.


그래서 교직사회에서 자기주장 강하고, 내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의 사람(예를 들면 나)은

튀기 마련이다. 좋게 튀면 다행이지만 교직사회

정서 상 좋지 않은 방향으로 소문이 난다.

막상 교직 밖으로 나와보니 나 정도는 주장이 강한

축에도 속하지 않아 놀랐지만...!


이렇게 순하고 ‘집회’라는 개념과 상당히 어울리지

않은 집단인 교직이지만,

이번 서이초 사건으로 교사들이 단단히 각오했다.

언젠가는 터질 것 같았던 폭탄 같은 재앙이

결국 발생한 것이 허망하고,

동료이자 후배를 지켜주지 못한 마음에 슬프다.

그리고 사실 모든 교사들이 직면한 문제다.

언제든 운이 나쁘면 나에게 벌어지고도 남을 일이다.



이제 교사들 사이에 내려오는 생존 전략은 ‘최대한

얌전히 아무것도 안 하기‘가 되었다.

뭐만 하면 민원 들어오고 신고당하고 소송하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범죄자로 몰리는

교육 현장에서 최선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며 숨죽이던 교사들은 기어코

한 마음 한 뜻으로 폭염의 날씨에 아지랑이 피는

끓는 아스팔트 위에 모여 섰다.

교사들의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외침은 쉽게 멈추지

않을 거다.

순해 보이는 사람이 화가 나면 훨씬 무섭지 않은가?



공교육은 더 이상 참고 버티지 못할 만큼 무너졌다.

유초중고, 교과, 비교과를 막론하고 모든 교사들이

지금은 한 마음이다.

살고 싶습니다.
교사로 살고 싶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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