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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Sep 01. 2023

공교육, 적은 내부에 있다.

추모를 막는 교육부

2023년 7월 18일, 꽃다운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날

2023년 9월 4일, 서이초 선생님의 49재.


본격적인 더위도 시작하기 전이었던 이른 여름날,

후배 선생님의 교실 자살 소식을 접하고

소름 돋게 떠오르는 교직생활 시절 나의 고통들.

교직에서 질리게 고통을 겪었음에도 변하지 않고

더 젊고 유능한 희생자가 생겼다는 것에 비통했다.




그렇게 교사들은 역대 최고의 더위였던 한 여름에

아지랑이 피는 아스팔트 위에 모여 외쳤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교직에 입직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과 비용 대비

가성비가 없다는 판단에 교직을 탈출하는 시대지만

교사들은 집회에 모여 작은 것만을 바랐다

공교육 정상화
서이초 교사 자살 건에 대한
진상규명


우리가 정녕 많은 것을 바란 것인가?

여름방학을 불태우며 뜨거운 폭염 속에 외쳤건만,

2학기가 시작된 지금,

교육현장에는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그저 탁상행정가들의 뜬구름 잡는 말들이 오갔을 뿐.



공교육 정상화

교사들이 우리의 직무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목소리다.

세상에 어느 직업군이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를 할까?

교사들은 민원 돌려 막기가 아니라, 돌봄이 아니라,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건강한 몸과 마음, 바람직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기초소양을 교육하고자 할 뿐이다.


그것이 교사가 존재하는 이유고 교사의 사명이다.

교사가 교육을 하고 싶어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인가?

교육이란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기에

교사들이 곧 걸어 다니는 교육과정이고,

교사들의 교육권과 안전 보장이 학습권의 보장이다.




진상규명

초등학교 교실에서 전도유망한 젊은 선생님이

자살한 지 벌써 49일이 다 되어간다.

사실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이슈 되지 않았을 뿐,

요즘처럼 붕괴한 교육현장에서 동료의 죽음은 종종

일어나는 재앙이었다.


현명한 고인은 삶을 그만두고자 하는 고통 속에서

교실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것이 정말 개인 사유의 단순 자살인가?

교사를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게 하고,

결국 선택지가 죽음뿐인 결말에 이르게 한 사회가

교사를 죽인 것은 아닌가?


떳떳하다면,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이 존재한다면,

무너진 공교육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체감했다면,

진상규명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곧 49재인 시점에서

진상 규명은커녕 근거 없는 소문만 나돌고 있다.

정녕 우리 사회는 교육을 포기할 생각인지 궁금하다.




교사들은 49재의 날, 공교육을 잠시 멈추고
각자 하나의 점이 되어 모이기로 했다.

특정 단체나 세력이 주된 구성이 아니라,

순수하게 교사 ‘개인’들이 하나의 ‘점’이 되겠다고!

교사 각자는 작은 점에 불과하지만

작은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길게 모인 면들로 길을 만들겠다는 각오였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길.


우리는 9월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했다.

이 날 만큼은 교육을 잠시 멈추고 붕괴된 공교육에

대해 생각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취지다.

아파도, 이사를 해도, 친구나 친지가 죽어도 수업을

해야 했던 교사들이 공교육을 위해 큰 결심을 했다.


착하디 착한 교사들이 용기를 냈고,

앞장서서 공교육 멈춤의 날을 운영하겠다고 선언한

존경스러운 관리자들도 많았다.

감사하게도 공교육 멈춤의 날을 지지하며 가정체험

학습을 신청하는 학부모님들도 많았다.


사실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공교육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

안전하게 가르치고 안전하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

교사, 학생, 관리자, 부모,

예외는 있겠지만 교육공동체는 역시나 하나였다.



그런데 적은 내부에 있었다.

솔직히 아예 예상을 못한 건 아니었지만

진짜 이럴 줄은 몰랐다. 그래서 더 원망스럽다.

교육부는 9월 4일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한 학교를,

교사들의 복무를 샅샅이 조사하겠다며 자료집계를

뿌리더니 기어코.


공교육 멈춤에 참여하는 교사와 학교에게
징계를 내리겠다는

배신감이 차오르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설마 교사들이 일하기 싫어 떼쓰는 걸로 보인 걸까?

교육기관의 수업일수는 법으로 정해져 있고

재량휴업을 한다 한들, 방학이 하루 줄어들 뿐

교육기관이 실시하는 교육일수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공노비’라고 압박을 주는 걸까?

공교육에 종사하는 교사들이 교육부 시도교육청에

소속된 교육공무원인 건 맞다.

하지만 2023년의 대한민국에 신분제도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헌법이 규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복무규정을 걸고넘어지는 게 정녕 어른다운가?


그리고 지금이 복무규정의 꼬투리를 잡아 교직을

분열시킬 상황인가?

교사 개인의 의견으로

교육부의 행보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이번엔 정말 너무하다.

공교육을 ‘빼먹는’것도 아니고, 하루 ‘멈추며’

교직으로 인해 생을 마감한 동료와 붕괴된 공교육을

추모하겠다는 작고 간절한 마음가짐일 뿐이다.

그런데 교육부의 위치를 이용하여 이를 막다니,

이런 게 직권남용이 아니면 무엇일까?




역시 언제나 그랬듯 진짜 적은 내부에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한계를 뛰어넘는 수밖에.

Unforgiven unforgiven unforgiven
한계 위로 남겨지는 우리 이름
-르세라핌 Unforgiven 중-


교육을 위한 행동의 결과가 징계라면,

이런 사회에서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을 위한 교사의 정당한 행동이 징계를 받는다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교사는 학생의 거울이고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행동만을 할 것이다.

상위부서의 용서는 필요치 않다.


Unforgiven I'm a villain.
새 시대로 기억될 unforgiven
-르세라핌 Unforgiven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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