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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Sep 05. 2023

교사로 살고 싶습니다

더 이상 동료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어제는 고 서이초 선생님의 49재를 추모했다.

7월 18일, 서이초등학교 1학년 6반 선생님께서

자살을 하셨고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에

내 몸과 마음은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남의 일이 아니었기에’

고작 ‘2년 전 나의 일이었이기에’




사람들은 ‘오죽하면’ 자살하게 되었을까 하며

고인을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왠지 그 ‘오죽하면’이

어떤 지경인지 낯설지 않았다.


고인의 사인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진상규명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결국은 49재가 되도록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약 내가 2년 전에 자살을 선택했다면, 나 역시

개인사유로 묻혔겠구나. 진상규명은 없었겠다는

생각에 억울함과 분노의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과거에 유사한 사유로 자살하셨다는 선생님의 소식,

또 선생님께서 자살하셨다는 소식,

그리고 또 선생님께서 자살하셨다는 소식,

계속해서 이어지는 선생님들의 자살 소식...





선생님들의 부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살을 생각하던 내 교사시절이 떠올랐다.

내 경험으로는 자살에도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자살할 용기가 90퍼센트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휴직을 하게 되어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동료들이 망가진 나를 배려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나도 이미 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일처럼 아팠다.

잠을 더 못 자고, 호흡이 더 어렵고, 더 먹기 힘들고,

더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졌다.

항우울제 복용 덕에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지만, 다시 눈물샘이 고장 났다.

별이 된 선생님들이 늘어날 때마다

내 아픔은 점점 심해졌다. 피할 수 없는 PTSD였다.





나는 비슷한 고통을 겪고 살아있는데,

사실 살아있어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내 관점에서 나는 자살에 실패한 겁쟁이였다.

살아있는 걸 감사해야 하는데, 부끄럽기 시작했다.


아무리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아픈 몸으로 한여름 집회에 참여해도

돌아오는 건 다른 동료들의 부고였다. 더 아팠다.


더 이상 동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동료들을 잃을수록 나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남은 힘을 쥐어짜보기로 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고민하며 자유발언 원고를

써내려갔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직관적이었다.

살려주세요
교사로 살고 싶어요

원고를 언제 제출할지 고민했다.

원고를 다 썼지만, 전 국민에게 송출될 자유발언을

신청하기까지는 마음을 더 다잡아야 했다.

계기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교사들을 분노하게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관님 진상규명 촉구합니다.

0904 공교육 멈춤의 날에 동참하는 교사에게

징계를 내리겠다는 소식.

소싯적 걸어 다니는 교권사전이었는데, 징계를 내릴

근거는 없었다. 명백한 직권남용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9월 4일 서이초 선생님의 49재를
추모하며 발언해 보겠다고!

교직에 돌아가는 것에 확신이 없는 나에게

징계는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징계를 받는다면,

교육부장관 표창보다 더 명예롭게 받기로 했다.

받고, 행정소송으로 보답하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장관님 덕분에, 발언할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그렇게 벌벌 떨며 자유발언을 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동안 숨겨왔던 내 피해경험을 막상 말하려니

긴장되어 덜덜 떨렸다. 겨우 원고를 읽고 내려왔다.



발언을 마치고 내려오니

나에게는 분에 넘치는 응원과 격려들이 쏟아졌다.

어쩌면 내가 더 이상 아프기 싫으니 교사들을 살려

달라는, 고인의 진상규명을 촉구한다는 외침이었다.

나를 위해 올라간 발언 자리이기도 한데,

살아있어 고맙다는 감동스러운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덕분에 어젯밤은 얼마만의 숙면일지 모를 정도로

푹 잤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늦잠을 잤다는 것에

놀랐지만 개운한 기분과 컨디션에 설렜다.

“아, 잠을 자고 일어나면 원래 이런 기분이지. “

오랜만에 살아있는 것 같았다.

이게 다 검은 점들의 힘인 것 같았다.


소중한 검은 점들,

점에 불과했지만 모이니 검은 물결이 되었다.

검은 물결을 이루는 검은 점들 중에서

하나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


교사로 살고 싶습니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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