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법과 정책과 사회에 두들겨 맞는 심정이란
요즘 나는 만신창이다.
머릿속은 과부하다.
심장은 화로 가득하다.
찔러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게 냉소적이다.
난 이렇게 비참한데 동료들은 어떤 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동료들을 살피고 챙길 기력조차 없다.
그렇지만 가라앉고 싶어도 가라앉을 수 없다
공립유치원 교사로 임용된 후
지지리도 운 없고 일복이 넘치는 나에게는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탄식의 상황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내가 아픈 탓이 국가와 사회와 법과 정책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아픈 건 내가 처한 상황과 나의 성향이 정말
철저하게 ‘어긋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보통합이라는 비교육적 정책을 눈 가리기 식으로
정당화하며 국가의 을인 교사를 기득권으로 칭한다.
이쯤 되면 폭력 아닌가?
국가와 사회에게 갑질당하는 기분.
교사들은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없다.
교사는 공무원이기에 파업도 못하고
교육자이기 때문에 정계와 유착해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존재이유이자 정체성인유아교육을 맥없이 빼앗길 수도 없다.
그건 교사의 직업윤리, 정체성과 다르니까.
그런데 왜 교사는 기득권이며,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난받는 걸까?
명백한 국가와 사회의 폭력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집회뿐인 교사들은
‘고용주인 국가와, 국가를 움직이는 법과 정책
그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 국가를 움직이는 자에게 이익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
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다.
교사들은
현 유보통합 정책이 일방적이고 졸속일 뿐만 아니라
‘유아교육의 질 하향’을 우려해 정책을 반대한다.
이쯤 되면 벌써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보육이 유아교육의 질 하향인가요?
선생님, 경력 적어서 뭘 좀 모르시네요^^
이젠 놀랍지도 않고 대답할 가치도 못 느낀다.
“네. 보육은 유아교육의 질 하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육은 교육을 포함하고 있다. 영유아보육법에
교육이라는 단어‘도’ 적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목적은 ‘사회복지서비스’다.
영유아보육법상 ‘위탁자‘인 양육자에게 주어지는
서비스로 영유아를 보육하고 교육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아교육’은? 학교체제의 교육이다.
교육기본법을 기저에 두고 운영하는 학교,
학교의 목적인 ‘교육을 하는 것’
교사는 ‘법에 따라 유아를 교육하는 사람’
교사는 ‘교원자격검정법’에 따른 교원양성체제를
거친다. 대한민국의 교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아 ‘교육’이
영유아보육 ‘복지서비스’가 된다.
이래도 교육의 질 하향이 아니라는 것인가?
정말 아이들이 유아 교육이 아닌
양육자를 위한 복지를 받는 게
아동 최선의 이익인가?
나는 보육을 절대 교육과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보육교사들에게는 아무런 억하심정이 없다.
무시한다고 하시는데 무시할 자격도 여유도 없다.
나는 영아반에서 보육실습을 했고,
나에게 보육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해
보육교사 자격이 있음에도 유아교육의 길을 걸었다.
오히려 존경한다. 내가 못하는 걸 하는 분들이니까.
하지만 유아교육? 내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굉장히 자신 있고 진심이다.
나이도 젊고 경력도 적은 주제에 네가 뭘 잘한다고?
싶을 수 있다. 사실 나이는 안 젊지만....
그런 사람들에겐 얼마든지 내 수업과 학급운영을
공개할 수 있다. 교육은 단순노동이 아니라서
경력과 실력이 비례하지 않는다. 능력이 중요할 뿐,
유아교육은 내게 아프지만 가장 애정하는 존재다.
인생의 1/3을 걸었고 난 우리 반에게 최고의 교사다.
보육전문성과 교육전문성은 다른 분야이다.
게다가 보육교사를 무시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 게
주변에 유치원 교사보다 어린이집 교사가 더 많다.
나는 내 친구들의 실력과 마음가짐을 알기에
절대 보육교사를 싸잡아 무시할 수 없다.
내 친구들은 유치원 정교사 교원자격이 있지만
보육기관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사실 보육교사 중 많은 사람들이
‘유치원 정교사 자격’을 소지하고 있다. 이들은 교원
자격이 있는 만큼 당연히 교육전문성이 있기에
어린이집에서 보육만 한다고 하면 기분 나쁜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래도 어린이집은 보육기관이다.
보육교사 개인이 본인의 능력으로 보육현장에서
교육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모든 보육기관에 일반화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육대학원에는 보육교사로 근무하며
유아교육전문성 향상을 위해 공부하는 분들이 많다.
교원양성체제에 따른 모든 과정을 정당하게 거치고,
시간과 기회비용과 노력을 투자하는 분들이시다.
이런 분들이 계신데 어떻게 보육교사를 싸잡아 무시할까?
공립유치원 교사들이 말하는 질적 하향은
‘유아교육’이라는 학교교육체계가 사라지고
어린이집, 유치원이 모두 ‘영유아보육’이 되는 거다.
유보통합이 법과 정책을 만드는 사람의 주장대로
보육은 보육전문성을 키우고 펼치고
교육은 교육전문성을 키우고 펼치는
아름다운 정책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다 같이 보육으로 퉁치고 예산 줄이고,
아이들은 하루종일 기관에 있고
부모는 하루종일 노동하며 국가의 생산성을 높이는
비교육적인 정책
가정의 기능을 훼손하는 정책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외면하는 정책
아동과 양육자에게 가혹한 정책이다.
솔직히 투쟁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다.
공립유치원 교사는 유보통합 반대를 위한 투쟁에서
혹시 투쟁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딱히 얻는 게 없다.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호봉제의 급여와
현재 교사들의 노후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연금
국가의 을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권리조차도 없는
안정적이지만, 안정적인 저임금인 직장을
그대로 변함없이 유지할 뿐이다.
이는 유보통합이 현행대로 진행되어도 마찬가지다.
공립유치원 교사들은
급여를 올려달라고 한 적도, 연금개혁을 중단하라고
한 적도, 파업의 권리를 달라고 한 적도 없다.
세상에 하던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뜨거운 여름에, 차가운 겨울에 집회를 하다니
정치계와의 유착이 불가능하기에
로비도, 정치인과 대화도 할 수 없는 교사에게
‘기득권’이라니,
‘악의 집단’이라니,
원하는게 있으면 국회의원에게 찾아와 발품을
팔으라니, 대놓고 로비하라는 말씀이신지..?어이가 없다는 생각뿐이다.
현재 진행되는 유보통합은
유아들에게 ‘학교교육’과 ‘교육받을 권리’를 묻지도
않고 어른들이 마음대로 빼앗아가는 폭력이다.
교육전문가이자 당사자인 교사들에게
‘어떤 방향이 교육의 질적 상향인지’를 묻지도 않고
너희는 복종의 의무를 가진 공무원이니 하면서
기득권 취급하고, 목소리를 내면 가뿐히 무시한다.
고용주인 국가가 교사들에 가하는 폭력이다.
세계적으로 저출생이 사회문제인 상황에서
타국은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원하지만
돈 안 되는 유아교육 따위는
로비할 수 있는 개인사업인 보육계에 비하면
전혀 중요하지 않은 듯 없애려 한다.
정책 변화로 인한 미래사회의 문제는 모른 척하고,
다음 세대에게 가하는 비교육적인 폭력이다.
하도 두들겨 맞아서 갈기갈기 찢긴 기분이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나 싶다.
그럼에도 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
교사는 공무원이기 이전에 교육하는 사람이고
교육을 잃은 교사에게 정체성은 없으니
가지고 있는 유일한 권리인 ‘유아를 교육할 권리’를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한 서린 목소리를 낼 뿐이다.
내가 교육한 아이들이 크면 역사가 알아줄 테니까.
정말 기득권이 누구고, 이익집단이 누구인지,
국가와 사회가 온통 불투명하다고 해도
교육만은 투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