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죽음은 왜 개인사유인가?
2024년 2월 21일 수요일.
인사혁신처에서는 ‘순직 인정 심의회’가 열린다.
고 서이초 교사를 비롯하여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교사들의 순직을 심의한다.
이미 전 국민이 순직으로 여기고 있는 사안에 대해
오직 교사들의 고용주, 국가만이 순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교사들의 죽음이 ‘개인 사유’라는 것이다.
평소 교사들이 개인 연가를 사용하여 수업이 끝난
이후에 고작 몇 시간 조퇴하는 것도 ‘개인사유’ 중에
어떤 사유인지 보고하라는 지시가 놀랍지 않은 곳이
바로 교직사회고, 학교다.
교직사회에서 ‘개인’의 존재는 흐리다 못해 사라질
지경이다. 교사들은 주체성을 지닌 개인이 아니라
그저 교육청이라는 국가 행정기관의 인적 자원,
그러니까 교육청에 귀속된 소유물 취급을 받는다.
개인을 드러내는 교사는 ‘유별난 사람’, ‘영 교사답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지며
해당 교사가 얼마나 교육에 열정으로 임하는지,
아이들을 애정 있게 가르치는지는 보지 않고
교사로서의 자질을 의심한다.
교직사회란 이 정도로 개인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왜 교직에서 자살한 교사는 ‘개인의 사유’로
단정 지어버리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체 언제부터 교사에게 개인 사유라는 게 있었다고!
화가 나는 것을 넘어 기가 차는 지경이다.
더 기가 차는 건 일하다가 사망하게 된 ‘순직’이라는
사실을 유가족이 오롯이 증명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정황과 기록들이 순직이라고 소리치는데,
눈 감고 귀 닫고 그저 ‘인과관계를 증명’하라고 한다.
죽음과 교직과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라는 치졸함.
평소에도 교육적 가치와 관리자의 의견이 상충할 때
누가 봐도 교육보다 관리자의 욕심임에도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교육적 가치를
증명하라던 교직문화와 똑 닮아있다.
죽어서까지 내 선택의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대체 얼마나 자료를 제출하고, 증명해야 인정할까?
미처 글로 다 담을 수 없지만 수많은 말도 안 되는
일로 교직에 돌아가지 못하는 나에게는
이렇게 순직을 순직이라 인정하지도 못하는 찌질한
고용주가 나에게 경고를 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죽어도 네 탓이다.
살아도 네 탓이다.
정말 내 탓을 하고 싶지 않은데,
국가는 교사들이 스스로를 탓하게 만든다.
스스로를 탓하는 행동은 우울증과 자살사고를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이러면 결국 국가가, 교직 사회가 교사들을
벼랑 끝으로 보내고 떨어지도록 떠미는 것이 아닌가?
이쯤 되면 괘씸해서 순직 인정을 해줘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억울한 선생님들을 돌아가시게 만든 건
교사들의 고용주, 대한민국이다.
국가가 인정하지 않아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교직에 얼마나 진심이고, 개인의 내가 없었으면,
그저 직업일 수도 있는 교육과 교직이 무너졌을 때
교사들도 함께 무너졌을까?
난 순직이 인정되는 그날까지 글을 쓰고 또 쓸 거다.
나는 교직사회의 순직 생존자인 셈이니까.
운이 좋게 살아남게 되었으니 목소리를 내야지.
부디 이번 순직 인정 심의회에서
순직이 인정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