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닮은 아이

너에게서 내가 보였어

by 해봄

우리 유치원에서 가장 키가 큰 여자아이,

우리 유치원에서 가장 키가 작은 여자 선생님,

그 둘은 같은 반 사제관계였다.


바로 나와 초롱이의 이야기다.

우리는 쌍꺼풀이 진 동그란 눈이 비슷해,

행정실장님께서는 함께 하원길에 나서는 우리를 볼 때마다 "큰언니랑 막냇동생 같네"라고 하셨다.


나와 비슷한 외모의 초롱이는 마치 열일곱 살 같이 성숙한 아이였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는 물론 인생 고민까지 나누는 세대를 초월한 친구였다.





초롱이는 호불호가 강한 어린이면서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고

시끄러운 환경을 싫어하고 조용한 놀이를 선호했다.


특히 손재주가 남달라 초롱이가 만들어주는 선물은 유치원 아이가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남다른 퀄리티여서 종종 다른 선생님들도 탐내곤 하셨다.


그리고 한번 하기로 한 건 끝장을 보는 친구이다.

놀이시간에 자유 작품을 만들어가는 걸 좋아했는데,

한 번 만들던 걸 마무리하기 전에는 절대 다른 놀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외모를 제외하고도 정말 나와 가장 닮은 친구였다.



나는 초롱이의 학부모 상담 때 이런 말씀을 드렸다.

아이가 또래 7세 아이들에 비해 근성이 남다른 모습을 보여요.
7세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욕구를 참고 하던 일을 이어 나간다는 건, 장점이 확실하지만!! 아이가 혹시 제가 모를 부담감을 안고 있을지 걱정되어서 어머니께 여쭤보아요!

초롱이의 어머니는

어머니께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다며,

집에서도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부모님의 양육스타일은 성취에 대한 그 어떤 압박도 없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평소 하원길에 만나며 쌓은 신뢰감과

말씀하시는 태도를 보아하니

정말 성취에 대한 압박을 안 하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와 나는 아이의 근성을 장점으로 여겨 살려주되, 부담을 놓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도록 아이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는 교육방식을 선택했다.



그러던 11월의 어느 날,

우리 반은 자체 '줄넘기 대회'를 개최했다.

아이들에게 1년 동안 특색교육으로 줄넘기를 가르쳤고, 그 피날레를 장식하는 활동이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굳이 경쟁을 시켜 순위를 매긴다는 게 굉장히 싫었고,

신체활동 역량이 강한 아이들에게 유리한 종목이기도 하고, 모두 지난 3월부터 줄넘기를 열심히 배운 걸 칭찬하는 의미로 줄넘기 대회를 열고 싶어서


대회 규칙에 아이들이 의견을 내도록 했다.

(사실상 교사가 다 정한 거나 마찬가지지만!)


잘 유도해서 다행히 우리 반은 하나의 팀이고, 공동의 목표를 함께 달성하면 메달을 수여받기로 대회 규칙을 정했다.

한 친구씩 릴레이로, 모든 바다반 친구의 줄넘기 숫자를 합쳐, 200이 넘으면 성공!
그리고 선생님 찬스를 1회 사용할 수 있고
총 5번의 도전 기회가 있는 줄넘기 대회다.

나름 굉장히 체계적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약속!

이 약속은 우리 반에게 1년 내내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한 내용이기도 한데,

'친구가 잘 못한다고 무시나 실망을 하거나,

내가 더 잘한다고 으스대지 않기'

누구나 더 잘하고, 덜 잘하는 것이 있다.
서로가 잘하는 것이 달라서 특별하고
무엇인가를 배울 때의 속도도 다 다르다.
그러니 "남 평가 금지"



이렇게 대회 규정과 약속을 정하고, 받게 될 메달을 보여주니 아이들의 기대감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초롱이는 줄넘기 대회날 불가피한 이유로 결석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반은 초롱이 없이 줄넘기 대회를 진행하고, 메달 시상식 후에 한껏 신나서 귀가했다.


며칠 뒤에 유치원에 다시 등원한 초롱이는,

친구들이 몇 날 며칠을 신나서 메고 다니던 메달을 보고 아쉬운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우리 반은 초롱이만을 위한 줄넘기 대회를 하기로 했고, 똑같이 도전 기회는 5번!

줄넘기 횟수는 초롱이가 직접 20번으로 정했다.


초롱이는 평소에 평균적으로 줄넘기를 10-15번 정도 하는 친구였으니, 연습의 시간을 주기 위해 일주일 뒤로 날짜를 잡았다!


그날 이후 아이는 매일 줄넘기를 연습한 모양이다.

평소처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제 놀이터에서 줄넘기 연습했는데 21개 했어요!"같은 말을 자주 했기 때문이었다.




대회 이틀 전, 우리 반의 강당 놀이 시간이라 강당으로 갔다. 평소처럼 스트레칭을 하고 자유 강당 놀이를 하는데 초롱이가 다가와

"선생님 전 줄넘기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은 들은 나는 "하고 싶으면 해야지!" 하며 줄넘기를 꺼내 주고, 다른 친구들에게 '줄넘기 놀이터가 열렸으니 줄넘기할 친구 외에는 이 근처로 가까이

오지 말 것'을 주문했다.



초롱이는 무려 40분 동안 줄넘기만 했다.

그것도 쉬지 않고!!!

강당은 지하라 환기도 잘 안되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열기로 더워진 상태였다.


그런데 초롱이는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로 줄넘기만 하는 것이다. 눈빛에는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기특하면서도 저 아이의 끈기를 나도 배워야겠다 싶었는데!

점점 지나치게 느껴졌다. 숨을 헉헉대며 계속 줄을 넘는데, 이러다가 아이가 쓰러질 것 만 같았다.


"초롱아 좀 쉬었다가 하자! 아직 시간 남았어!"

회유를 해보았지만 아이는 개의치 않았다.

속으로 제발 잠깐 쉬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겠다고 빌고 또 빌었다.

아이는 이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얼굴은 터질 듯이 빨갛고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렇게 몸을 갈아 넣어 가며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동료 선생님들이 컨디션이 안 좋으니 적당히 하라고 할 때도 이를 갈고 버티는 내가 보였다.
유치원이 몸과 마음에 큰 손상을 주었는데, 계속 무리하며 유치원에 발 붙이고 있는 내가 보였다.
항상 유치원 교사 말고 다른 경험을 해보는 걸 꿈꾸면서, 훌륭한 유치원 교사로 끝을 보고 싶어 바보처럼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내가 보였다.



초롱이에게 애원하듯이 말했다.

초롱아 물 한잔 마시고 하자.
물 마시고 잠시 앉아있다가 그래도 줄넘기 또 하고 싶으면 그때 다시 하자

아이도 힘들었을게 뻔하니 바로 물을 마시고 쉬겠다고 했다. 이번엔 내 말을 들어주어 고마웠다.



나는 그날 이후로,

바다반을 마지막으로 일단 유치원 교사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더 이상은 고통받는 내 모습을 외면하며 '나는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라고 자신을 속이지 않겠다고,

경력이고 뭐고 일단 휴직을 해야겠다고,

쉬어가며 다양한 것들을 더 경험해보아야겠다고,

흔들리지 않을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