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너희를 기억할게
잠도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매일을 그저 좀비처럼 지내던, 그래도 교실에서는 약간 살아있는 좀비로 지내던 하루하루가 흘러
겨울 방학이 찾아왔다.
아이들을 졸업시키기 전 마지막 방학이었고,
나에겐 아이들 졸업까지 방학 이후 한 달을 버텨낼 힘을 쌓아놓는 시간이 주어졌다.
유아 임용에 합격해 발령받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 유치원만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공립유치원의 방학은 휴가가 아닌 재택근무라는 걸,
카톡으로 지시되는 업무를 하고, 카톡에 온 수정사항에 따라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공식 퇴근 시간이 지나도 카톡은 끊임없이 왔다.
이제 이 정도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영혼 없는 기계처럼 일하는 방학을 보냈다.
하지만 아무리 영혼 없이 일을 하고 있더라도
모든 몸의 기운을 싹싹 모아서 정성을 들여야 할 일,
'생활기록부'
생활기록부 작성에는 영혼을 갈아 넣고 싶었다.
지난 1년 동안 바다반에서 찍은
만 장이 넘는 사진들을 모두 들여다보았고,
사진 속 바다반과 나의 시간은 싱그러웠다.
사진으로 보니 아이들이 훌쩍 자란 것이 눈에 보여
내 자식도 아닌데, 찡한 마음에 눈물이 고였다.
마지막으로 담임한 제자들에 대한 애정으로,
그 어떤 참고 문장 자료도 찾아보지 않고
오로지 '교사로서 나의 시선'으로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선생님만 아는, 선생님의 시선에서,
교실이라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매력, 강점, 흥미를 있는 그대로 적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
아이를 떠올리고, 아이의 모습을 추억하고,
가장 역량이 크고 사랑스러운 부분을 찾아 적었다.
의외로 '생각하는 그대로' 적으니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생활기록부 작성이 끝났다.
그리고 내 머릿속엔 한 명 한 명에 대한 기록이 진한 기억으로 남았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생각을 따뜻한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하는 점이 돋보임
기존에 제시된 놀잇감에 새로운 생각을 더해 창의적인 놀이를 만들어 친구에게 제안하는 것을 즐김
주변 환경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느끼고 언어로 표현하며, 갈등 상황에서 친구들의 입장을 조율하는 역량이 뛰어남
이렇게 유치원에서의 마지막 제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 기록까지 마쳤다.
정말 떠나보내는 기분에 아쉬워 모두를 꼭 잊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유치원 선생님을 잊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기억 속에는
바다반 아이들 모두가 남아있을 수 있도록,
기억을 더 진하게 새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