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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Jul 06. 2024

어머님의 칠순 잔치

  - 생전에 효도했던 한 가지-

                          

장마철이라 그런지 먹구름이 끼었다. 햇볕이 뜨거워졌다. 반복한다.

나이가 들어가니 생각하지도 않았던 몸들이 여기저기 아프고 지나온 시간과 세월들을 회상하면 즐거운 일도

많지만 모든 게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슬픈 일이든 추억으로 간직되고 남는다.

은퇴 후 시니어 세대이다 보니 가능하면 살아 있을 때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추억도 하고, 회상하기 위해 시간이 나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평생 학습관으로 가 글도 되지 않은 말과 글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려 본다.


어제 책을 읽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읽었던 책 내용들이 기억에 떠 오르지 않는 것 보니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는가 본다.

어느 책을 읽어 보니 사람은 65세에 순간적으로 늙어 버리고, 또 75세에 확 늙게 된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는데 65세가 지나 7학년에 접근하다 보니 확실히 몸에 기력도 없고, 몸무게도 10킬로 정도 줄어든다.


은퇴세대이기에 정확한 출, 퇴근시간도 없지만 그래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나면

동네 한 바퀴를 자전거로 40여분 정도 돌고, 오전 9시가 되면 도시락을 준비해 평생 학습관이나 노인복지관

등 등 무조건 집을 나섰다가 오후 5시 6시에 귀가하는 직장인 같은 비 직장인이다.

오늘은 장마철이라 그런지  자꾸만 쓸쓸해지고 지난 세월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 오른다     

70여 년 전 보잘것없고, 평범한 시골 농촌에서 소작농을 하는 소박한 부모님 슬하애 4남 3녀가 태어나 성장하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 누나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여동생은 중학교만 졸업 후 대도시인 부산과 서울 구로공단에서 액자를 만드는 표구사와 콘크리트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남보다 빨리 자립. 성공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었다.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면서, 주경야독했던 탓인지 다행히 고등학교 졸업장은 받았다.     

이렇게 우리 7남매는 많이는 배우지 못했어도 회사생활과 타향살이를 하면서 열심히 살아왔으나 누나는 50대 초반에 암으로 돌아가시고,

살아있는 남동생 두 명도 결혼도 하지 않은 20대 후반에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너무나 빨리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이렇게 갑자기 3남매가 부모님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리니 어머님은 정신을 잃고 먼산만 바라보시면서 매일 누나와 동생들 이름을 부르시다가 결국에는 가슴에 한이 맺히셨는지 2016년 추석전날에 먼저 떠나버린 3남매 곁으로 가셨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다닌 직장과 친구 지인들은 부모님 회갑잔치와 칠순 팔순잔치를 하는 게 효도라고 생각했던 탓 인지 효도잔치가 대 유행이던 시절도 있었다.

남들은 부모님께 효도잔치를 다 하는데 우리 3남매가 먼저 떠났다고 마냥 슬픔에 잠겨, 부모님을 위한 효도

잔치를 하지 않으면 평생 동안 막심한 후회가 될 것 같아 어머님 생존해 계실 때 칠순잔치라도 한번 하는 게 후회가 없을 것 같아 20년 전 낙엽이 다 떨어져 바람에 휘날리던 늦가을 11월 마지막주 금요일 저녁에 직장에서 

퇴근을 하면서 많은 직원들이 퇴근 후 술과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오목교 근처 창학부폐를 예약해 사랑하는 어머님을 위한 칠순잔치를 해 드렸다.

부모님을 모시고 자녀들이 다 같이 앞으로 나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사회를 보는 사회자에게는 아들 딸 소개하지 말고 그냥 자녀 동시입장으로 행사를 진행하라고 신신 당부 했었다.

괜히 큰딸, 큰아들 둘째 등 차례대로 소개를 시키면 먼저 가버린 3남매들이 보고 싶고 그리워서 어머님이 통곡해 울면 칠순잔치 연회장이 엉망이 될까 봐 자녀들 소개는 생략하고 음악과 분위기를 띄우면서 행사를 진행했다.     

금요일 주말 오후 퇴근길이어서 정신적으로도 부담도 되지 않아 마음이 편안했던지 400여 명의 직원들이 참석하여 노래를 부르고  제 어머님을 등에 업고 둥실둥실 춤을 추면서 축하를 해줘 부모님께는 효도를 할 수

있어 칠순잔치에 참석한 동료 직원들에게 고맙고 감사했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과 즐거운 추억이다.     

이제는 부모님도 별세하시고 계시지 않지만 20년 전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님과 아버지 칠순잔치를 동시에 해 드린 게 너무너무 잘한 것 같고 인생 살아가면서 가장

잘했던 일중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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