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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Apr 17. 2024

그리움과 추억

힘든 것도 추억이다

 농촌이라기보다는 산촌에 가까운 대 여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집성촌을 만들어 사이좋게 살았던 내 고향은 서울에서 정남 쪽이라서 정남진이라고 불러오는 전라남도 장흥이다.

경주가 씨 종갓집 종손으로 태어나 10리 길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고향에서 다니면서 같은 반 또래 친구도 없는 외로운 소년이었다.

초등학교를 가려면 비탈지고 마을도 보이지 않은 단웅국재를 넘어  푸른 수풀들과 마무들이 우거진 묘지들 옆으로 학교를 다니려면 무서워 울면서 학교를 다녔다.


  고향이 워낙 산골이라,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은 외딴 마을이기에 등유를 사용하는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글씨도 보이지 않은 교과서와 산수 문제 풀이를 하면서 검정고무신을 신고 보자기에 교과서를 똘똘 말아 어깨뒤로 메어 비와 눈을 맞으면서 한 시간 동안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이렇다 보니, 비가 내리면 옷도 다 젖고, 눈이 내리면 행여 미끄러져  다칠세라 무릎 위까지 내린 하얀 폭설에 농사짓고 남은 볏잎으로 새끼줄을 만들어 고무신을 똘똘 둘러 미끄러워 넘어지지 않게 사전 예방을 톡톡히 하면서 힘들게 학교에 다녔던 우리 4남 3녀 7남매들!!!

  

  그래도 나는 종갓집 장손이고 종손이어서 힘들었어도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해서 초가집에 월세를 

  얻어 손수 밥을 해 먹으면서 이것 또한 고난의 유학생활이었다.     

  지금처럼 교통환경이 좋지 않은 열악한 환경으로 어머님이 머리에 쌀과 반찬, 군불거리들을 토가리를 만들어 잔뜩 머리에 이고 외진 숲길과 오솔길을 내려오면 삼정 마을 앞 도로에는 포장되지 않은

  비포장 도로에 한두 시간 기다리면 덜덜거리는 완행버스가 도착해 30여분 몸과 짐을 싣고 가다 보면 읍내 버스 종착장에 내렸다.     

  이곳에 내리면 어김없이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짐을 날려주고 돈을 받는 리어카꾼과 짐을 싣는 육중한 자전거꾼들이 어린 학생들과   흥정을 하고 자취방까지 함께 배달해 주었던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생활이 즐거울 리가 없고, 도시아이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지만, 시골 아이들은 농사를 짓는 부모님 일을 도와 드리기 위해 농번기 방학이 별도로 있었고, 틈만 나면 공부보다는 논, 밭에 호미와 삽, 낫을 들고나가 풀을 베고 비료와 농약을 뿌리는 부모님을 도와주는 게 공부보다 중요했었다.     

다행히도 남자이고 장남이라서 중학교에 진학이라도 했지만, 두 살 터울인 누나와 바로 밑 여동생은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상급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농사짓는 부모님 곁에서 일을 도와주느라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이렇게 고생만 한  누나는 농촌으로 결혼을 해 농사짓느라고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50대 초반에 불치병인 혈액암으로 별세하여 너무 가슴 아프고 애석하고 눈만 뜨면 누나가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물론, 누나가 생전에 계실 때에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꼭 시간만 생기면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과 누나 가족을 모시고, 인근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누나에게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용돈이라도 드렸지만 이제 60대 중반을 넘어서니 이 세상에 한 명뿐이었던 누나가 계시지 않으니 마음이 늘 허전하고, 마음이 착했던 누나가 더욱더 보고 싶고 가슴이 여미어 진다.     


지금은 모든 것이 풍부한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형제들 간에 우애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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