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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Apr 19. 2024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어머님(창 님)을 그리워하면서

     6·25 전쟁 중 현역사병으로 전역이 되지 않아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아버지와 맞선을 보신 어머니는 경주 이 씨 종갓집 종부로 시집을 오셨다. 산골 마을에 시부모님과 시동생이 줄줄이 딸린 집안의 며느리로 농사를 짓고, 7명의 자녀를 낳아 밤낮없이 평생 애쓰며 사시다가 2016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어머님은 억척같이 일만 하시고, 좋은 곳 구경 한번 제대로 못 하시고 한 많은 인생을 사셨다. 보릿고개 시절 쌀밥 한 그릇은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드리고, 보리밥은 물을 넣고 끓여 몇 숟가락 드시고 허기진 배는 감자나 고구마로 채우셨다. 비가 오면 비옷도 없이 비를 맞고 밭에 나가 배추와 콩을 심고, 고구마 줄기와 감자를 수확해 머리에 이고 10리 길이나 되는 시장에 나가셨다. 시장에서 온종일 곡식을 팔아서 번 돈으로 생선과 생활용품들을 사서 머리에 이고 오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시골집 아궁이에 땔감으로 군불을 지피고 솜이불 하나로 할머니와 우리 7남매가 서로 이불을 덮기 위해 끌어당기고 뺏기면서 잠을 잤다. 새벽이면 방바닥이 차가워져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보냈던 가슴 아픈 시간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치곤 한다. 당시에는 쌀이 귀해서 직접 농사지은 밀을 빻아 놓고 칼국수와 수제비를 자주 만들어 먹었다. 다듬잇방망이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서 얇게 펴 펄펄 끓는 부뚜막 무쇠솥에 넣어 하얀 밀죽을 만들어 먹었던 기억들이 선명하다.



어려운 집안의 장남이었던 나는 군대를 제대한 후 행사장 야간경비도 하고, 액자 만드는 공장에서 풀도 만들고, 망우리 공장에서 전봇대 만드는 일을 거쳐 음식점에서 새벽 3시까지 일을 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공무원이 되기 위해 쉬는 날은 학원과 도서관에서 공부한 덕에 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직장에 들어가서는 빨리 승진하기 위해 방송통신대 행정학과에 입학해 주경야독하며 대학을 다녔다. 또 평생 배워야 할 것 같은 생각에 학점은행제로 운영되는 00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학위를 취득하고 50대 초반에는 젊은 시절  하지 못했던 공부를 후회 없이 해 보고자 00 대학교 지방자치대학원에 늦깎이로 입학해 주말도 없이 3년 동안 고생했다.



공직자로 35년을 근무하면서 성실히 노력했던 덕택인지 국가에서 수여하는 대한민국 훈장도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 광주 영락공원에 모셔져 있는 납골당으로 훈장증과 훈장을 가지고 가서 어머님 영전에 바치니 사진 속 어머님께서 “내 아들,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구나! 너의 퇴임과 훈장 수여를 축하한다”라고 말씀하시며 기뻐하시는 것만 같았다.  오늘따라 유독 평생을 고생하셨던 어머님이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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