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시골 외딴 산골에 몇몇 가구가 모여사는
하늘아래 외딴 동네이다.
농촌이라기보다는 산촌에 가까운, 외진 마을의 풍요롭지 못한 가정이었지만
대부분의 옛날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많이 낳았다
내 부모님도 4남 3녀인 7남매를 낳아 키웠지만
교통사고와 암으로 사랑하는 자식 세명을 당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슬픔과 절망으로
굴곡진 삶을 사시다가 먼저 간 자식들을 만나러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유독 성격이 좋은 둘째 아들인 금채는 법무부 교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남동생 금채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형제간에 우애도 깊어 우리 7남매 중 가장 정이 많았던 동생이다
내가 우체국에서 근무할 때에는 신혼이었던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가 사준 공무원 수험서로 독학을 해 합격한 후 고향인 장흥에서 근무하였다
동생은 고향에서 근무하면서 시골집에서 직장으로 출ㆍ퇴근하며 농사를 짓는 어머님의 바쁜 일손을 도와주곤 했다
아버지가 항상 어디 가서 가족들 사주를 보면 자식들 중 공직생활을 할 사주는 한 명뿐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주가 틀렸는지 우리 형제 중 2명인 금채와 내가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도 자주 도와 드리고 찿아뵈면서 효도를 했다
다행히도 그동안 고생만 하셨던 어머님의 그늘진 모습이 활짝 펴지며 행복해하셨다. 행복해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에 이웃들도 좋아하고 부러워했다
남동생 금채는 직장이 읍내에 소재하였기에 몇몇 가구가 되지 않은 외딴 산촌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어머님 곁에서 항상 효도하면서 착한 아들이었다.
버스나 대중교통이 들어오지 않은 첩첩산중이다 보니 교통이 너무 불편해 남동생은 수시로 어머님의
크고 작은 부탁을 받아 생필품이나 식자재들을 읍내에서 구입하여 하루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면서 집으로 가져다 드린 효자이다.
교통이 불편하니 100만 원에 구입한 중고 승용차로 마을 사람들이 시장을 가면 태워다 주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하다 보니 마을사람들도 너무 좋아했다
고향과 먼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가끔씩 고향을 찾게 되면 나도 동생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어머님을 모시고 인근 면소재지에서 농사를 짓는 누나집으로 가서 매형과 온 가족이 모여 오손도손 정담을 나누면서 식사를 했던 기억이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했던 추억들이 몇몇 안 되는 지나가 버린 추억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도 오래가지 못하고 잠시였다. 남동생 금채가 1997년 4월경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부모님을 비롯하여 모든 가족들은 슬픔에 잠겼고
머나먼 타향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나는 연차휴가 15일을 사용해 사망원인을 알아보고자 경찰서와 대검찰청에 진정하고
여러 언론사에 투고하여 일간신문에 기사화되었다
사고원인을 분석하고자 사망한 남동생의 연금으로
사설 민간교통사고 분석 전문가를 찾아가 사고분석을 의뢰하고 "교통사고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사고현장에 3개월 동안 부착시켜 혹시나 대형트럭과 부딪친 사고가 의심되어 대형차동차나 수리를 하는 정비업소들을 혼자서 다 찾아다녔다.
날씨는 더워져 몸은 기진맥진되었지만 남동생의 원한
이라도 풀어주고자 자동차정비업소들을 방문했지만 교통사고 관련 경찰관도 아닌 민간 유가족에게 어느 누가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겠는가?
힘들고 온갖 설움에 눈물도 많이 났지만 차분하게 남동생의 007 가방을 뜯어보고,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 전 금융기관에 예금과 보험가입 현황조회를 의뢰했다.
금융기관에 의뢰해 회신을 받아보니 우체국에 운전자보험 1.500만 원권이 2개 가입되어 있었고,
삼성생명 보험에 사망보험금이 5,000만 원짜리가 가입되어 있었다.
남동생은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이었기에 사망보험금 3건 8천만 원과,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동생이 불입한 연금 3,000만 원 등 총 1억 1천만 원을 찾아 아버지 통장으로 입금시켜 드렸다.
어머님은 사망한 자식이 보고 싶어 계속해 그리워하며 울면서 생활하셨지만 아버지는 남자라서 그러신 지 잘 참고 견디셨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3년 후 막내아들인 병희마져 또 사망하고 9년의 세월이 흘러간 뒤 큰딸이고 나에게는 한 명뿐인 누나마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불치병인 혈액암으로 떠나셨다.
불쌍하고 가련하신 내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식 3명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셨으니 우리
엄마 가슴속은 얼마나 찢어지고 괴로우셨을 것인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ㆍ 아마도, 가슴속이 시꺼멓게 타 버렸을 것이다.
평소에, 남동생인 금채와 형수인 내 아내와는 부모님 도와드릴 일이나 고향집과 관련해서는 항상 큰 의견 차이가 없었다
고향집에 가전제품이 없었기에 어머님께 냉장고와 세탁기, 텔레비전을 사다 드리자고 내 아내가 의견을 내면 아무런 군말도 없이 남동생은 너무 고마워하면서 먼저 돈을 보내주면 아내가 여기저기 가전제품들을
비교해 물품들을 구입해서 부모님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시골집으로 보냈다.
이러한 남동생과는 크고 작은 견해차도 없이 호흡도 잘 맞고 우애가 너무 좋았다.
이러한 광경들을 본 여동생과 다른 남동생들은 어머님께 [엄마! 엄마는 좋겠네, 큰 며느리가 세탁기와 냉장고 선풍기. 등 등 가전제품들을 엄마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다 사주니 좋으시겠다]라고 말씀드리면 어머님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며느리를 잘 얻어 복을 받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평소에는 잘 웃으시지도 않은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너무 좋아하시고 행복해하셨다
그러나 남동생 금채와 막내 병희, 그리고 누나도 연이어 하늘나라로 떠나 버리고 어머님 마저 백주의 대낮에 셋째 남동생 부부가 읍내에서 밤늦게까지 식당을 하다 보니 집에도 들어오지 못해 부모님은 셋째 아들 부부의 어린 자녀 3명을 돌봐주다가 홀로 사는 76세의 노인이 운전하는 오토바이에 뇌를 다쳐 그냥 의식도 없이 몇 년을 사시다가 먼저 떠난 3남매의 자식 곁으로 떠났다.
어머니가 뇌를 다쳐 의식이 없다 보니 어느 날 아버지는 병원비가 없다고 큰 아들인 내게 천만 원만
만들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아버지는 손자는 못 낳고 손녀 두 명만 낳은 큰아들인 내게는 아들도 못 낳은 칠거지악이라고 소리 지르고 미워하시면서 아들손주 한 명과 딸손주 두 명을 낳은 셋째 아들에게 큰 아들인 우리 부부 몰래 수억 원 의 금전을 사업자금으로 도와줬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결국에는 부부가 이혼해 갈라졌다.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전, 의식이 있고 정신이 총명할 때 시골에서 농협에 다니신 시동생이 금융기관에 예치실적이 없으면 본인의 신상에 해롭다고 내 부모님을 꼬드겨 본인이 재직하고 있는 농협에 남동생 사망보험금 중 일부인 5천만 원을 우리 남매들 몰래 받아가 농협공제금으로 예치했나 본다
우연챦게 막냇동생도 사망하자 숙부는 통장을 만들어 소지하고 있다가 직원을 시켜 사망보험금 5천만 원을
막냇동생이 사망하자 바로 찾아가 횡령했다는 사실을 먼 훗날에 금융감독원을 통해 인지하게 되었다
남동생 금채 교통사고 사망보험금과 공무원 연금 총 1억 1천만 원을 힘들게 찾아 부모님 통장에 입금해 드렸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어머님은 시동생이 횡령해 버렸던 5천만 원은 큰아들인 우리 부부 몫으로 우리에게 주라고 했다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숙부는 금융기관에 근무하면서 공제금 통장을 만들어 소지하고 있다가 두 조카들이 사망하자 사망보험금을 찾아 횡령해 사용했다는 소식에 어머님은 또 한 번 괴로워하셨다ㆍ
숙부님이 횡령해 버린 남동생들의 사망 보험금 원금은 10여 년이 지난 후에 살아있는 둘째 남동생이 숙부님이
재직했던 농협으로 찾아가 언쟁을 하며 목소리를 높여 다행히 받아와 사업을 하다가 결국에는 실패를 했다
이렇게 우리 엄마는 너무나도 복도 없고 가련하고
불쌍하다ㆍ 가난 때문에 자식들 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가슴이 타버릴 고통을 느끼면서 3자녀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다
시동생에게 사랑하는 아들 2명의 사망한 보험금까지 횡령당했으니 이 세상에 우리 엄마처럼 복이 없는 분이 또 계실까?
우유부단한 우라 아버지를 잘못 만난 팔자이겠지만 우리 엄마 이제 늦게라도 하늘나라에서 내 누나와 남동생 2명을 만나서 모자상봉을 해 행복하게 살고 계셨으면 좋겠다ㆍ
오늘따라 불쌍하고, 가련한 내 어머니가 보고 싶고 너무 그리워진다
사망보험금과 돈을 보면서 돈 앞에는 염치도 도덕도 양심도 없는 것인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어느 누가 그랬던가! 부모님 돈은 먼저 가져가 사용한 자식의 돈이라고....
그렇지만 자식의 교통사고로 피 묻은 사망보험금을
몰래 찾아간 분이 자식이 아닌 시동생이라고 하면
더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내 남동생들의 사망보험금도 이렇게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으니 친척이고 형제이고 자식이건 간에
먼저 가져가 사용한 사람이 주인이라는 것을.....
이제는 이러한 불상사로 가장 가까운 숙부사이가 ㄴ피도 섞이지 않은 남보다 못해 연락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이가 되었지만. 부모가 생존해 계신데
어찌 조카들의 교통사고로 피 묻은 사망보험금을
찾아 횡령해서 싸우고 나서 10여 년 만에 원금만 갚고
오히려 금전을 늘려주려고 했다고 허위변명을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돈은 소중하면서도 추접하고
친척간에 우애를 깨버리는 도구라는 것을 ᆢ
그래서 ,원친불여근린. 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멀리있는 친척은 가까이 있는 이웃보다 못하다
라는 말이 문현듯 떠 오른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고 친척이 사기와 거짓말로
그토록 나를 괴롭혔으니 그동안 고통받은 세월들을
생각하면 참 씁쓸하고 마음이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