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남동생 금채를 생각하며
세월이 흘러 인생 65년을 살다 보니, 가난하고 힘들어도 추억 많았던 어린 시절이 자꾸만 떠올라 자주 새벽 서너 시가 되면 잠에서 깬다. 다시 자려고 해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교통사고로 미혼의 나이에 내 곁을 떠나 어느 하늘에 별이 돼 있을 남동생 두 명 생각으로 요즘에는 더 자주 잠을 설치며 새벽을 맞이하곤 한다.
금채는 나와 여덟 살 차이며 내가 시골 읍내에 소재하는 중학교 2학년 때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던 남동생이다. 금채는 성격이 명랑하고 쾌활해 친구도 많았으며, 천성적으로 손기술을 타고났다. 시골집 경운기와 자전거, 라디오, 시계 등 고장 난 전자제품들은 신기하게도 동생의 손을 거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다 정상적으로 작동된다. 이렇다 보니 옆집이나 친척들이 가전제품이 고장 나거나 가구가 망가지면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동생이 오면 다들 수리를 부탁했다.
남자 형제로는 내가 장남이고, 금채가 둘째인데 내가 우체국에 취직해 근무할 때 동생을 불러 아르바이트를 시키면 너무 고마워하면서 24시간 밤을 새우며 야무지게 일을 해 직장 동료와 상사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았다.
정규직 공무원이었던 내가 동생에게 교정직 공무원과 법원 공무원 시험을 치르도록 권했는데 26세에 교정직 공무원에 당당히 합격했다. 합격 후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집에서 장흥교도소로 출근하면서 쉬는 날에는 농사짓느라 바쁘신
부모님 일손도 도와 드렸다. 그리고 틈틈이 공부해 법원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했다. 두 형제가 비록 하위직 공무원이지만 안정되게 공직생활을 하고 있어 어머님이 무척 행복해하셨다. 어머님 일생 중에 가장 웃음이 묻어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교도소 교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한 지 3년이 되던 1997년 4월 만 스물아홉의 나이에 결혼도 하지 못한 채,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우리 7남매 중 가장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어머님은 항상 자식을 그리워하시다가 5년 전인 2016년 9월 촌부가 운전하는 오토바이에 뇌를 다쳐 그만 운명하셨다. (남동생인 금채와 병희. 97년 교통사고로 별이 되다)
우리 형제 7남매 중 3남매와 어머님이 일찍이 내 곁을 떠나 마음이 우울할 때가 많다. 특히 명절이 다가오면 나의 가슴은 텅 빈 것 같고, 찢어질 듯 아프다. 형제 중 장남인 나를 가장 잘 따르고, 뭐든지 우리 부부와 대화하며 우애를 나눴던 형제인데 이렇게 하늘이 우리 형제와 남매를 너무 일찍 갈라놓아 원망스럽기만 하다.
남동생은 결혼도 해 보지 못하고 내 고향 깊숙이 보이지 않은 산중턱에 묻혀 있어, 더욱더 쓸쓸할 것인데, 그 당시에는 남동생을 교통사고로 잃어버리고 가슴에 묻은 어머님이 실성한 모습으로 24시간 1년
내내 통곡을 하시기에 집과 멀리 덜어진 곳에 동생을 묻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자식 셋을 당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내 어머님의 심정은 어찌했을꼬!
지금도 종종 고향에 나 홀로 내려가면 무서워서 등산스틱을 들고 조부모님과 어머님, 동생들 산소에
들리면서 술 한잔씩 따라 올리면서 유독 생전에 나를 잘 따라다녔던 먼저 간 남동생들을 잊지 못한다. 동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고 힘이 빠지고 슬프지만 동생들은 내가 이렇게 우울하고
슬프게 사는 모습을 싫어하겠지!!!! 먼저 간 동생들과 누나의 명복을 빌면서 슬퍼도 힘을 내자.
(1988년 4월 3일 내 결혼식 때 사진)
(내가 중학생 때 카메라를 빌려와 시골집에서 촬영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