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은퇴 이후 오랜만에 35년 동안 제직했던 직장 근처를 가끔씩 되돌아보면 저층 상가들이 허물어지고 신축건물들이 새로 생겨난다.
불과 10여 년 전에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사무실 근처에서 운동을 하고 8시 30분이 되면
몸이 저절로 사우나를 한 후 사무실에 입소하여 퇴근 이후 거지 책상에 코를 박고 일을 하다가 퇴근 시간 이후에는 별별 약속이 생겨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오면 항상 밤 9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가정에서는 가장의 무게가 컸으며, 직장에서는 직원들을 통솔하고 업무를 부여하고 같이 고민하면서 일을 하는 중간관리자인 과장과 센터장 보직을 받아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직장에서 은퇴를 한지도 불과 한 두해 된 것만 같은데 벌써 10여 년의 시간들은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리고,
소속 부서 직원들이나 아니면 동년배 과장급 이상으로 은퇴한 동료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총무를 맡은 지도
10년이 되어 간다.
육신은 은퇴를 했다지만 마음은 항상 현직인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으며 가끔씩 집에서 꿈을 꾸노라면 옛 시절
평직원으로 근무할 적에 고민하고 고통스러웠던 기피민원과 관련한 꿈을 꿀대도 자주 있다.
시간은 흘러 직장 모임이 7개 정도 유지되다가 총무를 맡은 직원이 육아휴직을 하면서 흐지부지되고 지금은
직장 동료들 모임이 5개, 고등학교 모임이 3개, 대학 모임이 1개로 총 9개 모임에 참석하면서 지인이나 동료들과의 끈끈했던 정이 끊어지지 않고 두서너 달에 한 번씩 만나 과거를 회상하면서 등산도 하고, 저녁 모임을
유지하고 있다.
자녀들도 아직까지 배필을 구하지 못해 결혼을 하지 않은 관계로 나중에 애, 경사가 생기면 하객유지는 될 것 같은데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는 학교 동창이나 과거의 직장동료들의 애. 경사는 빠집 없이 참석하거나 축의, 부의금을 보내는 등 인맥관리에 소홀이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모임도 없고, 3년 이상 장기적으로 전화 인사도 없었던 과거에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동료나, 자주
얼굴도 보지 않은 은퇴자들한테서 핸드폰으로 모바일 부고장이나 자녀 청첩장들이 전달된다.
부고소식이나 청첩장을 보고 그냥 지워버리거나 못 본척할 수 없어 고심 끝에 같이 참석할 일행도 없어 축의금이나 부의금으로 5만 원씩 인쇄된 계좌로 입금을 하고, 간단하게 축하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문자를
보낸다.
애, 경사를 치른 후 어떤 이는 13,000원권 커피쿠폰을 모바일로 보내주는 사람도 있으며, 어떤 이는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무런 인사말도 보내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현직으로 근무할 시에는 모두가 다 내가 갑이고 주민들과 사업자들이 을이 라고 말을 했건만
은퇴를 하니 을은 다들 갑이 되었고, 갑이었던 내가 때로는 우울하고 외로워 옛 을들에게 전화를 하고 아무런
조건도 없이 점심도 사주고 커피도 사주곤 한다.
이제 은퇴를 해 자연인이 되었으니 모든 자존심도 내려놓고 무거운 짐들도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살아리고 한다.
주변인들은 나이 70이 되고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 정리도 하고, 카톡에서도 자주 연락되지 않은 사람들은 차단시켜 지우고 정리를 하라고 권유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만난 인연들인데 쉽게 지울 수가 있단 말인가!
이제 비록 연금과 저축해 놓은 돈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것보다는
기존의 만난 사람들과 소중한 인연들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몇 가지를 명심 삼아 본다
첫째, 누구든지 반갑게 만나고 인사하지
둘재, 기존에 한번 이상씩은 연락하고 살았던 분들이니 밝은 목소리로 반가게 만나자
셋째, 누구를 만나든지 내가 주가 되지 말고, 상대방 이야기에 경청하자
넷째, 허물이나 기분 나쁜 이야기가 아닌 따뜻하고 정겹개 말을 하자
다섯째, 만나보면 도 만나보고 싶은 기분 좋은 만남이 되도록 하자
여섯 재, 헤어질 때에는 아쉽게 헤어지자
일곱째, 만남은 항상 겸손하게 행동하자
이제 7학년 시작은 항상 겸손하고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과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하는
자세로 낮은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