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종소리가 맑은 얼음 조각처럼 창가에 부딪혀 부서지는 연말이다. 거리마다 화려한 불빛이 넘실거리고 사람들의 표정엔 설렘이 가득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손님처럼 묵직한 회한(悔恨)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휴대폰 진동음과 함께 들려오는 소식들은 대개 승진의 소식이다.
누구는 국장으로 영전했네, 누구는 구청의 요직을 꿰찼네 하는 이야기들. 그 축하의 행렬 뒤에서 나는 잠시 15년 전의 그 좁았던 사무실 책상으로 돌아가 본다.
당시 우리 부서에는 다섯 명의 팀장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그중 나는 가장 나이가 많았지만, 공직 임용은 내가 가장 늦었다. 나보다 젊고 정년이 창창한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늘 보이지 않는 초조함에 시달려야 했다. 인생의 출발선이 남들보다 한참 뒤처졌다는 부채감은 나를 쉼 없이 채찍질했다.
일찍이 친구간에 우정과 사람을 믿었던 죄로 시골
국민학교 동창과 선배에게 사기를 당하고, 보증의 굴레에 갇혀 청춘의 금쪽같은 시간들을 법정과 거리를 헤매며 보냈던 탓이다.
남들이 공직의 기틀을 견고히 다질 때, 나는 무너진 삶의 기둥을 다시 세우기 위해 흙탕물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선택한 것이 공부였다.
일과가 끝나면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방송대 행정학과 강의를 들었다.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도록 행정법과 행정학 강의를 듣고 또 들었다. '시험만 본다면, 내 실력을 증명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하는 간절함으로 승진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운명은 가혹했다. 공무원들이 공부하느라 업무를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시험 제도가 전격 폐지된 것이다. 100% 심사 승진으로 바뀐 현장에서, 시험 한 번 보지 못한 채 내 간절했던 노력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승진시험을 유지했으면 승진할지 떨어질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 이지만 미리 준비했던것이 허사가 되니 아쉬울 뿐이었다
제도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한 개인의 치열함은 너무나도 무기력했다.
시대는 또 얼마나 무섭게 변했는가!
타자기의 경쾌한 소리에 익숙해질 법하니 시커먼 화면의 286 컴퓨터가 들어왔다. 뒤이어 386, 486을 거쳐 펜티엄의 시대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눈은 점점 침침해지고 손가락 마디는 굳어갔지만, "늦게 시작했으니 남들보다 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디스켓에서 CD로, 다시 USB로 바뀌는 격변의 기술 속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밤낮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그 지독한 성실함은 서랍 속 수십 장의 장관급 표창장과 이곳 저곳에서 받은 상장들이 훈장과 함께 남았다.
퇴직할 때 받은 '녹조근정훈장'과 마지막 소임을 다했던 센터장이라는 직함. 객관적으로 보면 남부럽지 않은 마침표다. 하지만 동기들이 부시장이나 부군수 국장이 되어 조직의 정점에서 호령하는 소식을 접할 때면, "그 모진 사기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인간적인 미련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직급은 단순히 계급의 높낮이가 아니라, 내가 버텨온 시간의 무게이자 빼앗긴 청춘에 대한 보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쏟아지는 겨울 햇살 아래 가만히 나의 거친 손마디를 만져본다. 만약 내가 그 풍파를 겪지 않았더라면 이토록 뜨겁게 일할 수 있었을까. 남들보다 늦었기에 내게는 한 끼의 밥이 더 절실했고, 한 번의 승진이 더 눈물겨웠다.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싸웠던 그 독기와 강단이 있었기에, 거대한 조직의 변화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끝내 훈장을 가슴에 달 수 있었으리라.
나의 관운(官運)은 아마도 여기까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조금 천천히 걸었기 때문일 뿐이다. 동료들이 매끈한 아스팔트 길을 달려 산 정상에 깃발을 꽂을 때, 나는 가시덤불 우거진 바위너덜길을 묵묵히 닦으며 올라왔다. 깃발의 높이는 다를지언정, 내가 걸어온 길의 깊이와 단단함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감히 자부한다.
이제 나의 치열했던 ‘고격사(苦格史)’를 웃으며 놓아주려 한다. 늦은 나이에 시작해 훈장을 가슴에 품고 당당히 문을 나서기까지, 참으로 수고 많았다. 세상이 매겨놓은 급수보다 훨씬 더 고귀한 '성실'이라는 이름의 계급장을 나는 이미 가슴속에 달고 있지 않은가. 거울 속 노병의 지친 어깨를 내가 먼저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그래, 참으로 고생 많았다.
다음 생에서는 절대로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주지
말아라고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