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일흔이 되어간다
어제는 토요일이라 누가 깨우지 않아도 새벽이면
저절로 일어나 진다
이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루틴이 되었다
토요일이라 일찍부터 서둘러 지하 창고로 향했다.
넉 달 동안 차곡차곡 쌓아둔 헌책과 신문 뭉치들을 꺼내 집 우리집 옆 고물상에 팔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모아서 건네받은 돈은 8,300원.
누군가는 석 달 치 정성이 겨우 그뿐이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내 손에 쥐어진 이 돈은 그 어떤 거금보다 묵직하게 다가왔다.
요즘 아파트에서는 재활용품을 그냥 내놓으면 업체가 공짜로 가져가거나 오히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저 버리는 것이 아까워 창고 한쪽에 매일 우편으로 배달되어 온 신문과 잡지들을 다 읽고 모으기를 반복한다.
이 미련해 보이는 근면함은 사실 내 유년 시절의 가난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비 오는 날이면 검정 고무신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던 그 시절,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학교에 다니며 나는 돈 10원짜리 하나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뼈저리게 배웠다.
그 시절의 고생이 내 몸에 '근검절약'이라는 지울 수 없는 습관을 새겨 넣은 것이다.
지나온 날들을 회상해 보면, 참으로 별의별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때로는 잔잔한 호수 같았으나, 때로는 집을 집어삼킬 듯한 해일이 일기도 했다. 사람들은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인연의 상처는 깊었다.
정이 많고 사람을 믿었던 탓에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떼이고, 친구와 친척의 보증을 섰다가 평생 일군 재산의 일부를 잃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기가 약해서 당하고만 사는가" 싶어 자책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쉬지 않았다. 가족을 지켜야 했기에 앞만 보고 묵묵히 걸었다. 남들이 요령을 피울 때 미련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어린 날의 그 근면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그렇게 모진 풍파를 견딘 끝에 이제는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칸과 든든한 연금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65세 노인 가구의 평균 소득이 백만원이라고 한다
내 연금과 이자 글 쓰기 수입이 총 400여만원 되니
노인의 기본소득보다는 먆다
이것이야말로 젊은 시절 검정 고무신을 신고 빗속을 달리던 그 소년이 흘린 눈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아닐까?
청년 시절, 안정된 직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나를 지워냈던 시간들이 이제는 복(福)이 되어 돌아왔다.
이제는 크게 돈 걱정이나 건강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으니, 인생 70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황금기를 만난 기분이다.
오늘 문득 보게 된 "그냥 모든 게 다 고맙습니다"라는 글귀가 내 마음을 울린다. 살아보니 정말 그렇다. 사랑하면서 살아도 모자라고 감사하면서 살아도 모자란 것이 인생이다.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스치듯 만나지만,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편안하고 말이 없어도 마음이 전해지는 인연은 참으로 귀한 선물이다.
나를 이용했던 이들조차 이제는 내 인생의 도화지를 채워준 하나의 색깔로 받아들인다.
인생 70년, 참 길고도 짧은 여정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근검절약하고 부지런히 살아갈 것이다.
석 달 동안 모아 오늘 판매한 재활용 책과 신문지 판매대금 8,300원 ㆍ
그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풍요로운 부자로 살아가고 싶다.
그림 속의 덕담처럼 항상 즐겁게, 행복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남은 길을 걷고자 한다.
무거운 짐은 내려놓고, 오늘 주어지는 따뜻한 햇살과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가리라.
"그냥 모든 게 다 고맙습니다."
이 짧은 고백이 내 인생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보람찬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