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식시장이 무섭게 오른다.
뉴스를 틀어도, 휴대전화 알림을 켜도, 사람들을 만나도 온통 주식 이야기다. 지수가 또 최고치를 찍었다고 한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가진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자산이 불어났다고들 한다.
나는 그 흐름에 올라타지 못했다.
돈을 벌지 못했다는 사실보다도, 너무 쉽게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이 더 힘들다. 평생 성실히 살아왔다고 믿어왔는데, 세상은 성실보다 속도를 더 인정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땀 흘린 시간보다 버튼 한 번이 더 큰 결과를 가져오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그래서 한동안은 주식 앱을 열어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괜히 들여다보면 마음만 시끄러워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숫자가 오르는 만큼 나의 자존감은 내려가는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묘하다.
남의 기쁨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 억울함이 고개를 든다. 나는 왜 저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까. 왜 나는 늘 한 발 늦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괜히 화가 난다. 세상이 불공평해 보이고, 운이라는 이름이 야속해진다.
그러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주는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알아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세상은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반대로 형편이 크게 나쁘지 않아도, 내 노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끼면 삶은 금세 서늘해진다. 어쩌면 내가 주식이 오르는 장을 보며 괴로웠던 이유도 돈 때문만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나의 시간과 나의 노력이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듯한 기분, 그 소외감이 더 아팠던 것이다.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그동안 ‘알아달라’는 쪽에 더 가까이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알아달라고 하면 관계는 멀어진다. 섭섭함이 먼저 생긴다. 그러나 알아주려고 하면 관계는 깊어진다. 마음이 넉넉해진다.
행복은 ‘알아달라는 삶’에는 없고, ‘알아주는 삶’에 있다는 말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산에 가면 가끔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에서 혼자 피어 있는 꽃을 본다. 보는 이도 없고, 사진을 찍어줄 사람도 없지만, 그 꽃은 묵묵히 향기를 낸다. 미모 경쟁도 하지 않고, 향기 경쟁도 하지 않는다. 그저 제 계절이 오면 피고, 때가 되면 진다.
그 모습이 어쩐지 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앞만 보고 달려왔다. 고개를 숙이고 일했고, 맡은 자리를 지켰다. 박수를 크게 받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남과 비교하며 마음을 소모하고 있었을까.
인생 후반기의 삶의 목표는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 아닐까.
주식시장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오늘 웃는 사람이 내일 울 수 있고, 오늘 뒤처진 사람이 내일 앞설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억울함이 올라올 때는 억지로 점잖은 체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 나도 부러웠다.”
“그래, 나도 속이 상했다.”
그렇게 내 마음을 먼저 알아준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인정해주면 조금은 숨이 편해진다.
그래도 친구 주광, 기창, 왕렬, 장근이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치 내가 수익을 낸 것처럼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질투 대신 대리만족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내가 가진 자산일 것이다.
주식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려고 오늘도 스크린골프장으로 향한다. 그래프 대신 페어웨이를 보고, 숫자 대신 홀컵을 노려본다. 혹시 아는가. 인생에서는 한 번쯤 홀인원이 나올지.
산속의 꽃처럼,
보는 사람이 없어도 향기를 잃지 않는 꽃처럼.
남과 겨루지 않고, 남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내 자리에서 조용히 피어 있는 것. 누군가 알아주면 감사하고, 아무도 몰라줘도 서운해하지 않는 것.
꽃은 경쟁하지 않는다.
주식시장이 오를수록 주식과 멀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