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흘러가는 것은 슬픈 일인 줄만 알았다.
젊은 날에는 붙잡지 못하는 것이 억울했고, 떠나는 것이 서러웠다.
사람도, 시간도, 기회도 한 번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움켜쥐려 애썼다.
손아귀에 힘을 주고, 가슴에 매달고, 기억 속에 오래 붙들어 두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흘러가니 아름답다는 것을.
ᆢ
구름은 머무르지 않기에 하늘이 넓고,
강물은 멈추지 않기에 썩지 않는다.
바람이 지나가기에 계절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기에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만약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세상은 그 얼마나 답답하고 탁해지겠는가.
흐름은 상실이 아니라 순환이었다.
생각도 흘러간다.
한때는 밤잠을 설치게 하던 고민이 지금은 희미하다. 마음도 흘러간다.
20대 초반 초등학교 동창에게 큰 사기를 당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돈 날리고 나서 이를 갈던 동창생의 얼굴이 세월 속에서 둥글게 닳아 있다. 시간도 흘러간다.
좋았던 날도, 견디기 힘들던 날도 결국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다.
그래서 다행이다.
나쁜 날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ㆍㆍㆍ
아픈 일도, 힘든 일도, 슬픈 일도 흘러갔다.
그때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지나고 보니 나는 여전히 여기 서 있다.
세월이 등을 떠밀어 준 덕분이다.
세월이 흐르는 건 아쉽지만, 그 빈자리에 또 다른 기억을 채울 수 있으니 그 또한 고마운 일이다.
해 질 녘 강가에 서 본 적이 있다. 노을이 너무 고와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저 빛이 곧 사라질 빛이라는 것을ᆢᆢ
아름다움은 영원해서가 아니라 사라지기 때문에 더 눈부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이제 조금은 인생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데,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속상하다가도, 그래서 더 귀해진다.
우리는 와서는 가고, 입고는 벗고, 잡으면 놓아야 할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어찌 이리 깊은 인연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 중에 만나 웃고 울며 한 세상을 함께 건넌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노다지처럼 널린 사랑 때문에 웃고,
가시처럼 돋친 미움 때문에 울어도, 그 시간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인생은 어쩌면 소풍인지도 모른다. 오래 머물 수 없는 자리에서 잠시 도시락을 나누고, 사진을 찍고, 실컷 떠들다가 해가 지면 일어서는 일.
왜 왔나 싶다가도,
아니 왔다면 더 크게 후회했을 길. 그러니
이 소풍길에서 만큼은 원 없이 울고, 원 없이 웃다가 가면 되지 않겠는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옛말이 빈말이 아니길 바란다. 살아 있다는 것, 숨 쉬고 있다는 것, 누군가를 부를 이름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복된 사람들이다.
(교통사고로 하늘의 별이된 남동생과 함께)
그러니 사랑해야겠다. 많이,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
보고 싶을 때 보고,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안아 줄 수 있을 때 안아 주어야겠다.
언젠가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날이 오기 전에.
흘러가니 아름답다.
머무르지 않기에 고맙다.
우리, 어우렁더우렁 더불어 살다가
미련 없이, 소리 없이ㄷ그저 훌쩍 떠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