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의 경고

by 자봉

평온해야 할 일요일 아침, 시계 바늘이 여섯 시를 가리킬 때 세상은 예고 없이 뒤집혔다.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천장은 평소의 정지된 면이 아니었다.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나를 삼키려 들었다. 고개를 까닥일 수도, 몸을 일으킬 수도 없는 지독한 현기증.


걷기는커녕 중심을 잡는 것조차 불가능한 무력감 속에서 나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과거 미주신경성 저혈압으로 두 번이나 정신을 잃고 응급실로 실려 갔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가슴은 먹먹하게 죄어왔다. 속은 메스꺼워 당장이라도 구역질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심근경색일까, 아니면 뇌에 이상이 생긴 걸까.' 불길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119를 부를까 망설이다가도,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미련이 발목을 잡았다.

혹시 저혈당일까 싶어 더듬더듬 사탕 하나를 찾아 입에 넣었지만, 설탕의 달콤함도 휘몰아치는 어지럼증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결국 나는 닫힌 자식의 방문을 두드렸다. 휴일 아침, 단잠을 자고 있을 딸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끝까지 버텨보려 했으나,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작은딸은 하필 오늘이 재택 당직 근무라 꼼짝없이 모니터 앞을 지켜야 했다. 아픈 아버지를 보고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작은딸의 눈에 미안함과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빠, 미안해. 내가 가야 하는데..." 그 말 한마디에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졌다.

운전이 서툰 큰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얼른 옷을 챙겨 입었다.


직접 운전대를 잡기엔 불안한 실력이었지만, 딸은 주저 없이 카카오택시를 호출했다. 집 앞까지 도착한 택시에 몸을 싣고 강북삼성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길, 내 손을 꼭 잡은 딸의 온기가 차가운 식은땀을 녹여주는 듯했다. 서툰 운전 실력 대신 아버지를 위해 가장 빠른 길을 찾아내고 곁을 지켜주는 딸의 뒷모습이 새삼 든든하고 고마웠다.

(일요일 아침 응급실에서)



휴일 아침임에도 응급실은 이미 만원이었다. 고통 섞인 신음과 바쁜 의료진의 발걸음 속에 외국인 환자들까지 섞여 북새통을 이뤘다. 심전도와 혈액검사를 거치고 나서 의사는 뇌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MRI 검사를 권했다. 팔에는 수액과 어지럼증 완화제가 꽂혔고, 차가운 검사대 위로 몸을 눕혔다. 에어컨 바람이 살갗을 파고들어 오한이 났지만, 내 머릿속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6분간의 기계음을 견뎌냈다.

검사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렸을 큰딸은 내가 나오자마자 얼굴색부터 살폈다.


검사를 마치고 받아 든 고지서에는 '본인부담금 57만 원'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은퇴 후, 매달 들어오는 수입보다 나가는 지출에 예민해진 실버 세대에게 50만 원이 넘는 돈은 단순히 '숫자' 그 이상의 무게였다.


하루아침에 날아간 거금에 마음 한구석이 쓰리고 서운한 감정이 밀려왔다. '돈 벌기는 이토록 어려운데, 쓰는 것은 어찌 이리 한순간인가.'

하지만 곁에서 나를 부축하며 "아빠, 돈 걱정하지 마. 검사 결과 괜찮으면 그걸로 된 거야"라고 말해주는 딸이 있었다. 집에서 마음 졸이며 연락을 기다릴 작은딸까지 생각하니 서운했던 마음이 이내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오후1시가 지나자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작은딸도 응급실로 찾아왔다


오늘 병원비 58만 원은 내 건강을 확인한 비용이기도 하지만, 우리 딸들이 아버지를 얼마나 아끼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해 준 '사랑의 확인서'이기도 했다.


만약 내가 젊은 날 성실히 일하며 이 아이들을 키워내지 않았다면, 오늘 누가 내 손을 잡고 이 차가운 응급실 복도를 함께 걸어주었겠는가.

병원 문을 나서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검사를 피했다가 만약 더 큰 화를 불렀다면, 그때는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후회만 남았을 것이다. 우리가 젊은 날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던 이유는 명확하다.


단순히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노후에 찾아올 불청객 같은 병마 앞에서 당당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자력을 갖추기 위함이며,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고통을 넘겨주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내가 젊을 때 부지런히 일궈놓은 삶의 터전이 있었기에, 오늘 비싼 병원비도 감당할 수 있었고 딸들에게도 든든한 아버지로 남을 수 있었다.


열심히 사는 것만이 내 노후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지탱해 주는 유일한 보루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건강은 과신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며, 그 관리를 위해서는 젊은 날의 노동과 노년의 절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비록 통장 잔고는 조금 줄었을지언정, 오늘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을 확인했다. 아플 때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안도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밖의 햇살이 유난히 따뜻했다. 이제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고 고단했던 내 몸을 달래 보려 한다.


나를 걱정해 주는 두 딸의 마음을 보약 삼아, 내일은 더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다시 일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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