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님 ㆍ신암공
1. 1886년 구한말의 혼란 속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수난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다 가신 증조부님, 신암(新庵) 이상호(李相瑚) 공의 숨결이 서린 ‘신암고(新庵稿)’였다.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눌러 쓴 행서체 글씨 사이로 증조부님의 고뇌와 자손들을 향한 간절한 가르침이 읽힌다. 묘비에 새겨진 ‘경주 이씨 신암공 상호지묘’라는 차가운 돌의 기록보다, 이 문집 속에 담긴 먹의 향기가 더욱 뜨겁게 가슴을 파고든다. 고려의 대문장가 익재 이제현 선생의 25대손으로서, 가문의 영광을 지키는 길은 권력이 아니라 오직 ‘학문’과 ‘자기 수양’에 있음을 증조부님은 이 문집을 통해 웅변하고 계셨다.
2. 호백구(狐白裘)와 계명구도, 사람의 귀함을 깨치다
문집의 첫머리를 장식한 맹상군과 호백구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진나라에 갇혀 죽을 고비에 처한 맹상군을 구한 것은 대단한 장군도, 유능한 정치가도 아니었다. 도둑질에 능한 자와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 즉 세상이 ‘천하다’고 여겼던 식객들이었다.
증조부님께서는 왜 이 고사를 자서전의 앞부분에 두셨을까. 그것은 사람을 대함에 있어 귀천을 따지지 말라는 준엄한 경계였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절, 우리 민족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반목하기도 했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증조부님은 후손들이 사람의 겉모습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각자가 가진 고유한 재능과 진심을 알아볼 줄 아는 혜안을 갖길 바라셨던 것이리라. "사람이 곧 하늘이며, 보잘것없는 재주 하나가 가문과 나라를 구한다"는 그 가르침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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