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산 재래시장
금년에 중대재해 예방과 관련 처벌 법, 산업안전관리법 컨설팅을 위해 취업 서류를 접수하고 소식을 기다렸다.
공동 안전관리자라는 직업은 우리처럼 평생을 공직에서
보낸 퇴직자들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터다.
현장을 누비며 쌓은 경험이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방패가 된다는 자부심, 그것이 우리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모집 인원이 한정된 탓인지, 아니면 서류 보완이 늦어진 탓인지 기대했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잠시 멈춰 서기로 했다.
1년 넘게 앞만 보고 달려온 공동 안전관리자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퇴직 동기와 학교 동창들과 스크린 골프채를 휘두르고 당구공의 경쾌한 마찰음을 즐겼다.
파크 골프도 새롭게 배워보고
평생학습관과 도서관의 정적 속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며 건강을 돌봤다.
그러다 문득 발길이 닿은 곳이 바로 화곡동의 ‘까치산 골목 재래시장’이었다.
20년 전, 한창 현직에서 땀 흘리던 시절 가끔 들렀던 그 시장은 여전히 활기찼다. 퇴직 동기인 인자한 선배와 함께 시장 어귀에 들어서니, 좁은 골목 양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이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나를 반겼다.
제철 채소의 알싸한 향과 갓 쪄낸 떡의 구수한 냄새,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과일들의 천연색이 눈을 즐겁게 했다.
지하철역과 가까워 교통도 편한 이곳은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이 저렴하게 모여 있는, 그야말로 사람 냄새나는 보물창고였다.
구경을 하면서 천천히 시장 골목을 걷다 보니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아니,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곳 까치산 시장의 풍경은 나를 50여 년 전, 열아홉 살의 소년에게로 데려다 놓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도 하기 전에 갈 곳도, 기댈 곳도 없던 시절이었다.
무작정 야간 완행열차를 타고 동이 트기 전 용산역에 내려 사설 직업 안내소를 전전하면서 취업이 된 곳이
밤늦도록 일하는 음식점이었다
젊은 시절 다행히 어느 가게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사장님의 친척 되시는 전무님은 성실한 나를 유독 신임하셨다.
열아홉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카운터를 맡기셨고, 나는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누구보다 일찍 하루를 열었다.
매일 오후 4시.
나의 발길은 광장시장으로 향했다.
야채 가게와 건어물 전, 과일 시장을 돌며 좋은 물건을 골랐다. 당시 시장에는 ‘지게꾼’들이 있었다.
내가 물건을 골라 놓으면
시장 사장님은 물건들을
모아 지게꾼들이
우리 가게까지 배달해 주었다.
당시 내 봉급은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해 주고 단돈 3만 원이었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은 어린 녀석이 기특하다며 가끔씩 용돈을 쥐여주곤 했다.
그 푼돈은 내게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나는 그 돈을 모아 시간이 생기면 책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시장 바닥의 흙먼지를 털어내고 책장을 넘기며 미래를 꿈꿨다.
군대에 입영하기 전까지, 그리고 3년 후 전역한 이후에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이어갔던 그 시절.
고된 노동 뒤에 찾아오는 배움의 시간은 ‘뼈 아픈 젊은 시절’이었으나, 동시에 내 인생의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그 땀방울이 모여 결국 공직 생활의 문을 열어주었고, 직장생활과 병행한 대학 공부까지 마칠 수 있게 해 주었다.
50년대생인 우리 세대에게 시간은 참으로 무심하게 빠르다.
어느덧 머리칼은 희끗해지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오늘 재래시장을 구경하며 느낀 것은, 우울증이라는 그림자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사실이다.
광장시장, 망원시장, 경동시장, 동대문 시장 등 재래시장을 종종 방문하면서
오늘 다녀온 까치산 시장까지.
시장은 멈춰있는 박물관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체다.
물건을 깎으려 실랑이하는 소리, 덤을 얹어주는 시장 아주머니의 투박한 손길, 스티로폼 박스를 나르는 분주한 움직임 속에 ‘사람 사는 재미’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재래시장)
시장을 다니다 보면 또 다른 손님이 찾아오고, 또 다른 이야기가 쌓이는 그 생동감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속의 엉성한 화(火)도, 쓸쓸함도 어느새 씻겨 내려간다.
공동 안전관리자 컨설팅 연락이 조금 늦으면 어떠한가.
내게는 아직 건강한 두 다리가 있고, 함께 추억을 나눌 선, 후배가 있으며, 무엇보다 뜨거웠던 열아홉의 기억이 있다.
나는 앞으로도 부지런히 재래시장을 탐방할 것이다.
화려한 백화점보다 투박한 시장 골목에서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인생 70 이후의 삶도 재래시장의 새벽처럼 활기차고, 지게꾼의 어깨처럼 든든하며, 시장 상인이 건네던 용돈처럼 따뜻하기를 소망한다.
오늘 까치산 재래시장을
탐방하면서 열아홉 소년의 꿈과 일흔 노병의 여유를 느낀다.
나는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부지런히 나의 인생 시장을 개척하면서 건강하고 즐겁게
노후를 살아갈 것이다.
(재래시장은 삶이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