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다도해 신안여행

by 자봉

​세월의 강물이 무심하게 흘러 어느덧 칠순이라는 나이의 문턱에 섰다.

거울 속에는 낯선 노신사가 서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의 장난기가 넘실거린다.


그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50여 년 전, 숭일의 교정에서 함께 꿈을 꾸던 3학년 1반 친구들 열 명이 광주 송정역에서 뭉쳤다. 각자의 삶이라는 전장에서 치열하게 살다 은퇴라는 훈장을 달고 만난 벗들의 얼굴엔, 신안의 바닷바람보다 더 시원한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우리를 실은 승용차는 무안의 평야를 지나 천사대교라는 거대한 은빛 날개를 타고 섬들의 천국, 신안으로 향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강원도의 푸른 망망대해와는 결이 달랐다. 어머니의 품처럼 올망졸망한 섬들이 다도해를 수놓고, 그 사이를 지날 때마다 자연이 빚어낸 천혜의 비경이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임자도와 증도의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과 바람에 몸을 맡긴 튤립의 군무, 그리고 고결하게 피어난 홍매화와 각양각색꽃의 향연은 칠순의 나그네들 마음을 단숨에 설레게 했다.


​이번 여정은 단순한 유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의 삶을 격려하는 ‘우정의 성찬’이었다.

풍차 사업을 하는 친구는 모두를 위해 고급 리조트의 문을 흔쾌히 열었고, 평생 공직과 교단에서 헌신했던 친구는 솔선수범하여 아낌없는 찬조로 마음을 보탰다. 목포에서 달려온 친구가 내어놓은 싱싱한 회 한 점에는 고향의 정이 서려 있었고, 아침 일찍 황탯국과 햇반을 챙겨 온 광주 친구의 세심함은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늦게 치과대학에 진학해 신안 압해도에서 치과병원을

개원해 칠순이 다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반창 친구들을

보기 위해 달려온 친구의 마음에 감동을 받고ㆍ

횟집 식당 주인과 주변 손님들이 우리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며 부러움 섞인 눈길을 보낼 때마다, 나는 이 귀한 인연이 인생의 가장 큰 자산임을 새삼 깨달았다.


​신안의 맛 또한 일품이었다.

갯벌의 생명력이 담긴 짱뚱어탕과 달큼한 애호박탕은 한 점 흠잡을 데 없이 미각을 깨웠고, 처음 마주한 염전의 소금밭은 하얀 보석처럼 빛나며 우리네 인생의 땀방울을 닮아 있었다. 리조트 창밖으로 보이던 다도해의 일몰과 호텔 못지않게 넓고 쾌적했던 공간은 여행의 격을 높여주었다. 이토록 좋은 것을 마주하니, 가장 먼저 마음 한편에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이 아름다운 길을 조만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다시 거닐며, 이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피어올랐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우리는 마음속에 쌓였던 해묵은 고민과 삶의 무게를 신안의 바닷바람에 훌훌 날려 보냈다. 이제 우리는 1년에 두 번, 전국의 산천을 누비며 이 우정을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인생의 황혼기에 만난 보석 같은 친구들아, 부디 건강하자. 우리가 함께 걷는 이 길 위에는 언제나 눈부신 꽃길만이 가득하기를, 그리고 다음 여행에서도 오늘처럼 소년의 웃음으로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흐트러지게 피어난 벚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