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트러지게 피어난 벚꽃

by 자봉

​계절의 시계가 예년보다 조금 더 빠르게 돌아간 모양이다.

서부간선도로를 나란히 끼고 흐르는 안양천 둑길에는 어느새 하얀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장관을 이루고 있다.

기상청의 예보보다도 8일이나 일찍 터진 꽃망울이라니, 성급한 봄의 마음이 이토록 화려한 군무로 나타난 것일까.


​겨우내 무채색이었던 둑길이 하루아침에 하얀 분칠을 하고 나타난 듯하다.

지하철 5호선에 몸을 싣고 양평역에서 내리니, 바깥공기부터가 이미 달랐다. 도심의 소음은 온데간데없고, 눈앞에는 하얀 꽃구름이 안양천을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양평역에서 안양천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설 때마다, 시야는 점점 하얗게 물들어간다. 마침내 둑길 위에 올라섰을 때, 입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게 바로 꽃 대궐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머리 위로는 새하얀 벚꽃이 터널을 이루어 하늘을 가리고, 발치에는 노란 개나리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며 화답한다. 하얀색과 노란색의 대비는 자연이 그린 가장 화려한 수채화다. 선유도역을 향해 걷는 길은 그저 산책로가 아니라, 세속의 근심을 잊게 만드는 별천지로 통하는 통로 같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꽃 아래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으며 미소 짓는다.

그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꽃은 나무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는 이들의 얼굴 위에도 함께 피어나는 것 같다. 3월과 4월이 교차하는 이 시기, 안양천은 그야말로 ‘화려강산’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낙원이 된다.


벚꽃에 빨려 걷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눈부신 풍경을 즐기기 위해 거창한 준비나 먼 여행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누구나 손쉽게 이 ‘꽃 대궐’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복잡한 서울 한복판에서 지하철 몇 정거장만 이동하면 이토록 평화로운 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점에 새삼 감격하게 된다. 예전 같으면 높은 분들의 정원에나 있을 법한 진귀한 구경을, 이제는 누구나 운동화를 신고 나와 편안하게 누릴 수 있으니 참으로 좋은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안양천 물줄기를 따라 걷다 보니, 꽃잎 하나가 어깨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다. 이 작은 꽃잎 하나가 주는 위로가 일상의 고단함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서부간선도로의 자동차 행렬과 대조적으로, 둑길 위를 걷는 이들의 발걸음은 한없이 느릿하고 여유롭다.

(흐트러지게 핀 벚꽃들)



​선유도역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마음속에 이미 이 화려한 꽃 대궐을 한 채 지어놓은 기분이 들어 든든하다.

해마다 꽃은 피고 지겠지만, 올해 8일이나 일찍 우리 곁을 찾아온 이 안양천의 봄은 유독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4월은 ​꽃 구경하기 참 좋은 시절이다.

화려강산이라는 말속에 담긴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안양천 둑길에서 다시금 확인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입구로 향하는 발걸음 뒤로 벚꽃 향기가 진하게 따라붙는 것 같았다. 이 좋은 세상,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 꽃길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걸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안양천의 벚꽃과 개나리꽃들을 원 없이 구경하고

발길을 집으로 향한다

(중학교 동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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