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년 지기 우정

by 자봉

인생의 계절이 어느덧 일흔을 바라보는 초로의 문턱에 닿았다. 불과 몇 달 전 입학 5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모임을 가든호텔에서 가졌음에도,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남은 온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오늘은 우리 반 동창들과의 ‘반창회’ 모임을 위해 다시 집을 나섰다.



서울 하늘 아래 수십 년을 살았으면서도 가락시장은 내게 낯선 풍경이었다. 지하철 가락시장역에 내려 마주한 활기찬 시장의 공기 속에서, 멀리 청주에서부터 경기도 광주, 오산, 안산, 부천 등 수도권 각지에서 달려온 친구들을 만났다. 아홉 명의 동창이 모여 앉으니, 2층 식당의 공기는 금세 옛 학창 시절의 소란함으로 가득 찼다.

상 위에 오른 회는 입안이 꽉 찰 정도로 두툼하고 싱싱했다.

하지만 그 식감보다 더 달콤했던 것은 50년 세월을 이겨낸 친구들의 변치 않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니, 그 안에는 우리네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교단에서 평생을 바쳐 교장으로 은퇴 후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 후 공동주택 관리소장으로 인생 후반기를 재 취업한 똑똑한 친구, 하이닉스나 굴지의 대기업에서 이사로 퇴직하며 산업의 역군으로 살았던 친구, 그리고 환갑이 넘는 나이에도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따낼 만큼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열정적인 부천 친구까지. 모두가 참으로 치열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한 세상을 살아낸 이들이었다.


점심을 마치고 롯데백화점 인근과 석촌호수를 천천히 걸었다. 호숫가 찻집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앞에 두니,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공부하느라 바빴던 20대를 지나, 30대와 40대, 그리고 50대까지 우리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직장생활이라는 전쟁터에서 가족을 건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느라 정작 자신을 돌볼 겨를은 없었다.


이제는 모두가 은퇴라는 이름 아래 인생 후반기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누구는 자격증을 따서 안전관리자와 관리소장ㆍ우체국에서 민원 상담역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누구는 소박한 사업이나 연금 생활을 하며 소일거리를 즐긴다.


사는 모습은 서로 조금씩은 달라도 동창과 친구라는 이름으로 마주 앉으면, 우리는 다시 열여덟 살의 그 소년들로 돌아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물론 세월의 야속함에 가슴이 저미는 순간도 있다.

한 반 65명 중 벌써 10여 명의 친구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남은 이들의 마음에는 슬픈 그림자가 드리운다.

불과 2,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모이기 시작해 몽산포와 속리산, 청주 상당산성을 1박 2일로 여행을 다녔던 기억이 너무 소중하지만,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 간 친구들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인생이란 참으로 금방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가버린 세월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는가.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제 남은 인생의 후반기를 아프지 않고, 즐겁게, 그리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뿐이다.

이제는 열심히 살아온 우리에게 주는 선물 같은 이 시간들을 건강하게 지켜내고 싶다.

어제 모인 아홉 명의 친구들을 보며 다짐해 본다.

다음 모임에는 우리의 소식이 더 널리 퍼져, 더 많은 친구가 이 귀한 인연의 자리에 동참하기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도 우리들의 우정과 건강만큼은 묵직한 바위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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