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2일,
만개한 산 벚꽃 잎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완연한 봄날에 찾은 서대문 독립공원의 붉은 벽돌 담장 사이를 오르며, 열여덟의 나이에 차가운 감옥 안에서 손톱이 빠지고 온몸이 부서지는 참혹한 고문을 견디면서도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슬픔이다"라고 외쳤던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기개와 거룩한 희생정신을 마주하는 순간, 내 가슴 한구석에는 일제강점기 독립의 불꽃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선열들의 넋과 함께 6.25 전쟁이라는 민족의 거대한 비극 속에서 무려 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꽃다운 청춘을 전선의 포화 속에 던져 조국을 지켜내시고 뒤늦게나마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자식인 나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가문의 긍지와 명예를 물려주신 나의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진다
위대한 호국의 발자취가 섬광처럼 교차하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로운 자유와 풍요로운 일상이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영웅의 피와 눈물로 일궈낸 기적 같은 축복임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기에, 역사의 거친 파도 속에서 작고 평범했을지라도 선열들의 독립 정신과 아버지의 호국 정신이 대를 이어 흐르는 이 숭고한 애국심의 줄기만큼은 그 무엇보다 단단한 뿌리가 되어 내 삶의 중심을 지탱해 왔음을 깨닫는다
서대문 형무소의 높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유관순 열사가 꿈꿨던 자주독립의 세상과 아버지가 총을 들고 지켜낸 평화의 땅을 우리 후손들이 영원히 가꾸고 보존할 수 있도록 나는 이제 남은 생애 동안 그분들의 거룩한 뜻을 전하는 역사의 증인이자 등불이 되어 한 점 부끄럼 없는 길을 걸어가리라 다짐해본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종종 지하철 5호선을 타고 환승해 독립문역에 내려 서대문 안산 자락길을 두서너 시간 걷다 오곤 하지만 이토록 맑고 청명한 봄날에 안산 자락길을 상쾌하게 걷는 기분은 직접 발을 내디뎌 걷지 않은 자는 결코 알 수 없을것이다
벅차오르는 감동과 대를 이어 내려온 가문의 영광을 한 줄기 긴 호흡의 문장에 정성껏 실어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우리 민족의 혼과 자부심으로 가슴 깊은 곳에 엄숙히 새겨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