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 그릇의 비빔밥과 같다.
온갖 색깔의 나물과 고기, 고추장과 참기름이 어우러져 하나의 맛을 내듯, 내 70 평생도 슬픔과 기쁨, 고난과 보람이 뒤섞인 긴 여정이었다.
돌아보면 내 삶의 초반부는 ‘나’라는 재료보다 ‘환경’이라는 그릇에 맞춰진 시간이었다. 가난의 허덕임 속에서 학업의 기회는 멀기만 했고, 어머님과. 남동생 둘. 위로는 한 명뿐이었던 누나를 너무 일찍 여읜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기였다.
젊은 시절 배움에 대한 갈증은 컸으나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그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나는 내 인생의 ‘맛’을 포기한 채 오직 생활의 전선에서 몸을 던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60대 중반을 넘어 70이라는 숫자가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자식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내 던져버린 내 인생의 시간들. 남은 것은 무엇일까 자문해보니 텅 빈 마음뿐이었다. 그 마음 한구석에는 채 입어보지 못한 ‘따뜻한 옷’ 한 벌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
어느 날 접한 안중근 의사의 어록 한 구절이 가슴을 쳤다. "화유중개일(花有重開日)이나 인무갱소년(人無更少年)이라." 꽃은 다시 피는 날이 있지만, 사람은 다시 젊어질 수 없다는 그 서늘하고도 명확한 진리.
그동안 나는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을 소진하며 살았다. 하지만 꽃이 지고 다시 피듯, 내 인생에도 ‘두 번째 개화기’가 올 수 있음을 깨달았다. 비록 육체는 예전 같지 않아도, 마음만은 다시금 새로운 나물을 무치고 고추장을 넣어 나만의 비빔밥을 비빌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장수의 비결이 별것이겠는가. 먹는 것은 절반으로 줄이되, 걷는 것은 두 배로 늘리고, 웃는 것은 세 배로, 그리고 사랑은 무한정으로 베푸는 것. 그 단순한 진리를 지팡이 삼아 나는 다시 길을 나서기로 한다
요즘 나의 일상은 ‘발분망식’이라는 네 글자로 요약된다. 무언가에 마음을 다해 몰입하느라 밥 먹는 것조차 잊는다는 그 경지.
젊은 시절 이루지 못한 학업과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일흔의 나이에 다시 불붙었다.
신문을 읽고, 좋은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는 필사(筆寫)의 시간은 내 인생 비빔밥의 가장 고소한 참기름과 같다.
첫째, 돈이 들지 않아 마음이 편하고,
둘째, 매일 새로운 지식을 얻으니 뇌가 깨어난다.
셋째,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흐르고,
넷째, 문장 속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깊이 배운다.
다섯째, 비로소 품격 있는 노년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공자가 말했듯, 도를 깨치면 즐거움에 근심조차 잊는다(낙이망우)고 했다.
매주 말이면 서대문 독립문역에 내려 안산자락길을
걷거나, 혹은 안양천을 걸으며 내 머릿속은 온통 다음 수필의 주제와 외워둔 한자 성어들로 가득하다.
이 몰입의 즐거움이 곧 내 인생의 가장 따뜻한 외투가 되어주고 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을 입지 않는다.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지위라는 무거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오로지 ‘이00’이라는 사람의 내면을 따뜻하게 감싸줄 진정한 자아의 옷을 입고 싶다.
그 옷은 화려한 비단옷이 아니다. 매일 8천 보를 걷는 성실함으로 지은 옷이며,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볼펜을 꾹꾹 눌러쓰는 정성으로 누빈 옷이다. 또한, 먼저 떠난 부모님과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을 승화시켜 글로 펴내는 용기로 만든 옷이다.
내 비빔밥은 이제 거의 다 비벼졌다. 고통스러운 가난은 쓴 나물이 되었고, 치열했던 공직 생활은 든든한 밥알이 되었으며, 지금의 배움은 매콤달콤한 양념이 되었다. 이 비빔밥을 한 숟갈 크게 떠먹으며 나는 비로소 웃는다.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도 마음껏 누리고 건강하라."
인생의 석양은 슬픈 것이 아니라, 가장 붉고 아름다운 빛을 내는 시간이다. 꽃은 다시 피지 않아도, 내 글은 종이 위에서 영원히 피어날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를 위한 옷을 입고, 내 인생의 비빔밥을 맛본다. 참으로 고소하고, 참으로 따뜻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