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과 친서구화
이번에는 스웨덴과 핀란드다. 이에 들어가기 앞서 나토가 무엇인지부터 먼저 알아보자. 나토(=NATO)는 냉전이 한창이던 1949년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화에 대해 견제하기 위하여 설립된 군사 동맹이다. 본부는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있으며 기존의 회원국은 30개국 정도였다. 이후 2023년과 2024년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회원국은 32개로 더 늘었다. 나토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마쳤으니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대해 알아보자.
핀란드와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중립국이었는데 이러한 중립 원칙을 깨고, 나토 가입을 함으로써 화제가 됐다. 스웨덴의 경우 나폴레옹 전쟁 가담을 마지막으로 계속해서 중립 원칙을 고수하며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냉전 때도 별 다른 피해 없이 나름 잘 지내온 국가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냉전 붕괴 이후 유지되어 온 유럽의 기존의 안보 구조가 요동치자 2022년 5월 스웨덴은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지리적으로 핀란드 다음으로 인접해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전쟁과 같은 군사 활동을 할 경우 안보에 있어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발트해는 스웨덴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발트해는 예나 지금이나 스웨덴이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벗어나 대서양까지 진출할 수 있는 중요한 길목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는 스웨덴 제국이 발트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최대 전성기를 이룩했고,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와 발트해를 놓고 북방 전쟁까지 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런 식으로 군사적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가 발트해에서 해군을 통해 스웨덴을 압박하거나(러시아의 군사 활동 범위가 우크라이나에서 그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칼리닌그라드에 미사일을 배치해 스웨덴을 위협할 경우 (이는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도 당시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거의 확정되자 러시아는 칼리닌그라드에 핵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렇다면 핀란드는 왜 나토에 가입했을까? 이에 대해 알기 위해 먼저 핀란드가 역사적으로 러시아에 의해 얼마나 많이 시달렸는지 알 필요가 있다.
우선 핀란드는 앞서 언급한 스웨덴 제국의 일부였다. 하지만 핀란드 전쟁(앞서 언급한 나폴레옹 전쟁의 일부로 1808년 2월-1809년 9월까지 진행됨.) 이후 핀란드는 스웨덴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나 다시 한번 러시아 제국의 제후국이 된다. 이렇게 시간이 흐른 뒤 러시아 제국 내에서 적백내전(1917년-1922년)이 발발한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노동자, 농민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적군이 승리했으나 핀란드에서는 자본가를 중심으로 하는 백군이 승리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1920년 10월 14일 타르투 조약이 맺어지고, 핀란드와 소련 사이에 국경선이 확정되어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한다.
1932년에는 소련과 핀란드 사이에서 10년 기한의 불가침 조약이 체결된다. 하지만 1939년 10월 소련 측에서 핀란드-소련 협정 체결을 요구해 오면서 과도한 요구를 해오기 시작한다. 그 요구는 아래와 같다.
1. 라플란드 지역과 카렐리야 지역을 소련에게 할양한다.
2.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보호와 소련의 안보를 위해 국경선을 서쪽으로 즉, 핀란드 내륙으로 옮긴다.
3. 핀란드만에서 발트해 쪽으로 뻗어나가는 데에 있어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인 항코항을 30년간 소련에게 빌려준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의 농업 집단화와 중공업 육성(스탈린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부)으로 인해 경제 대공황의 여파 없이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국가였고(당시 GDP규모가 3590억 달러로 세계 2위였다.) 군사력도 막강했던 터라 핀란드도 되도록이면 소련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 주장만큼은 핀란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항코항은 핀란드가 발트해로 진출할 수 있는 주요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핀란드는 소련에게 항코항을 내주면 여기에 소련이 30년이란 임대 기간 후에 군대를 영구 주둔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 챈 상황이었고, 이렇게 군대가 한 번 주둔하면 쉽사리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이 핀란드는 소련에게 항코항을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이것 때문에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하고자 한다. 이후 마이닐라 포격 사건(핀란드-소련 국경 지대에서 핀란드의 선제 포격으로 소련인 4명이 죽은 사건)을 조작해 침공 명분을 만들었고, 1939년 11월 30일 헬싱키 공습(핀란드 시민 약 90명 사망, 300명 부상)을 시작으로 겨울 전쟁(핀란드VS소련)이 시작된다. 이후 핀란드는 만네르하임 장군을 중심으로 만네르하임 방어선을 만들었고, 지형과 기후(당시 핀란드는 -43도였다.)를 이용하여 제대 간의 연결을 끊고, 핀란드 영내로 소련군을 유인한 후 각개 격파를 시전하며 항전했다 당시의 소련도 스탈린의 대숙청(1937-1938년 동안 진행된 사건으로 정적이 될만한 정치적 인물 혹은 군 장성들을 모조리 죽인 사건이다.)때문에 소련군의 질도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막판에 소련이 90만 명이나 되는 병력을 투입하자 더 이상 싸울 여력이 없었던 핀란드는 1940년에 모스크바 평화 조약을 맺고, 핀란드 영토의 11%를 내주며 항복한다.
그러나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이 바바로사 작전을 통해 독-소 전쟁을 시작하자 핀란드는 소련에 의해 빼앗긴 영토(카렐리야 지역)를 되찾기 위해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고 카렐리야 지역 대부분을 수복하는데 성공한다. 이후에는 나치 독일과 협력해 레닌그라드 포위전에 동참한다. (핀란드는 영토 수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자 레닌그라드를 포위하는 과정에서 나치 말을 잘 안 들었다. 왜냐하면 핀란드는 영토 수복도 했겠다 더 이상의 불필요한 희생을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카렐리야 지방을 수복하도록 도움을 준 게 나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이는 나치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는데 성공했으나 나치를 따라 2차 세계대전에는 개입하고 싶지 않았던 프랑코가 어쩔 수 없이 독-소 전쟁에 군대를 파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기점으로 나치가 소련에게 패배할 기색이 역력해지자 핀란드도 연합국에 가담했고(라플란드 전쟁/1944년 9월 15-1945년 4월 27일까지 나치 독일에 대항해 연합군으로 전향한 핀란드가 싸운 전쟁 이 전쟁이 한창인 1944년 9월 19일 1944년 앞서 언급한 모스크바 평화 조약의 내용에서 살짝만 수정한 모스크바 휴전 협정을 체결한다. 이 조약에 근거해 결국 수복한 카렐리야를 소련에게 다시 빼앗기고 만다.), 이후 1948년에는 핀란드-소련 우호협력 상호원조 조약이 맺어진다.
초반에 언급했던 스웨덴을 다시 상기시켜 보자. 스웨덴의 경우 군사력이 강하여(스웨덴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름 반도 강제 합병 이후 꾸준히 군비를 증강했다.) 자발적 중립국이라고 부르지만 핀란드는 친소련 중립국이라고 불린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겨울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와 냉전 동안 소련이랑 국경을 맞닿고 있다 보니 위에 언급했던 핀란드-소련 우호협력 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해 소련이랑 억지로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핀란드는 EU 가입을 1995년이 되어서야 신청했다. (1992년에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체결되고, 1993년에 이 조약이 효력을 발휘하면서 EU가 창설된다.) 왜냐하면 이 때는 소련/공산권 블록이 해체된 후였고, 국제 정세의 주도권도 서방에게 많이 넘어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핀란드는 NATO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에 AEPC(=유럽/대서양 협력평의회)를 통해 나토의 회원국/파트너국과 함께 안보 협력을 지속해 왔다. 이렇듯 소련이 붕괴하고, 핀란드의 외교 공간이 넓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에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핀란드 국민의 52%가 NATO 가입에 반대했고, 19%만이 찬성했을 정도로 핀란드 내에서는 NATO 가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2022년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다시 한번 치러진 설문 조사에 의하면 NATO 가입 찬성이 62%, 반대가 16%로 완전히 뒤바뀐 결과를 보여주었다. 앞서 설명했듯 핀란드는 러시아에게 시달린 역사가 많았고, 특히나 겨울 전쟁의 경우 핀란드에게 있어 영원한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 당연히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했을 때 핀란드는 겨울 전쟁이라는 악몽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고, 이번에야말로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고자 NATO 가입을 신청한 것이다. 또한 냉전 때만큼이나 핀란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도 강하지 않아 NATO 가입이 옛날보다 수월한 것도 핀란드의 NATO 가입 결정에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추가로 당시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확실시되자 러시아가 칼리닌그라드에 핵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한 것을 감안하면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결정은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된다.
현재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회원국으로서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양국의 가입 절차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30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를 해야 하는데 예상치 못 한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튀르키예(=터키)였다. 그렇다면 튀르키예가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반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튀르키예가 테러 단체로 지정한 소수 민족 쿠르드족을 주축으로 하는 분리주의 세력인 쿠르드 노동자당에 대해 스웨덴이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스웨덴 내에는 쿠르드계 스웨덴인이 전체 인구 중 15만 명이나 된다. 이렇기에 스웨덴 정계에도 쿠르드계 출신인 의원이 6명이나 된다(대표적 인물로는 무소속 의원인 아미네흐 카카바베흐가 있다.) 이런 이유로 튀르키예는 더욱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반대했다. 여기다 튀르기예가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반대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스웨덴과 핀란드가 튀르키예에게 부과한 군사 무기 수출 금지 제재 때문이었다. 이 제재는 2019년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있었던 튀르키예의 군사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기 위해 부과되었다. 하지만 튀르키예가 입장을 바꿔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동의한 것으로 보아 튀르키예의 요구 사항들이 받아들여 졌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난항을 겪기는 했지만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결국 이뤄졌고, 이는 또 한 번 러시아에게 안보적 위협을 가져다주었다. (핀란드는 1300km나 되는 국경을 러시아와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기 위해 이때까지 보여왔던 침공이라는 푸틴의 행보는 그 정당성과 효력을 잃어버린다고 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해 쓰레기 하나 치우려다 쓰레기 둘을 더 늘려버린 것이 되며, 자신이 자신의 발등을 도끼로 찍은 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