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일탈
이번에는 헝가리다. 헝가리는 빅토르 오르반이 현직 총리며 이 총리도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처럼 장기 집권을 하기로 유명하다. 헝가리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있어 대단히 소극적인데 그 이유는 크게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사회/문화적인 측면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정치적 요인이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애국주의자/보수주의자다. 이는 그가 2012년 3월 코수스 광장에서 한 발언에서도 두드러진다.
“헝가리 인들은 외세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국정 연설에서 헝가리 저출산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는 헝가리의 아이들이 필요하다.”라고 하면서 저출산 문제를 기타 유럽국들과 달리 이민자 입국 허용으로 해결하지 않고, 순혈주의 정책(순수 헝가리 계통의 사람들이 만나 순수 헝가리 혈통인 자녀를 낳도록 하는 정책/나치가 순수 게르만 혈통의 아이들을 추구한 것과 유사하다.)으로 해결하려 한다. 최근에는 EU의 이민자 정책을 맹비난했으며 이외에도 그는 애국심, 헝가리 민족주의 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가 언론과 사법 장악을 시도해 강력한 정치권력을 구축하자 EU가 헝가리에게 보조금을 삭감하겠다며 경고했으나 오르반 총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일방적인 정치 행보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2022년에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하자 4만 7000명의 헝가리 예술가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였다. 이렇듯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는 반 EU적인 행보를 보이며 EU가 내세우는 가치와는 정반대 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일들 때문인지 오르반 총리는 기본적으로 EU에 대해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며 전형적인 유럽 우파 민족주의 정치인의 성향을 띤다. 이러한 정치 성향 때문에 EU의 우크라이나 원조에 대해 강력히 반대해 오며 친러 행보를 보여 온 것이다.
두 번째는 경제적인 문제다.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을 통해 중부 유럽 국가(체코,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에 유입된다. 헝가리도 예외는 아니며 기타 유럽 국가들처럼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36%로 높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헝가리의 경우 노골적으로 우크라이나 편을 들면 러시아의 심기를 자극해 러시아산 가스 공급을 중단될 수 있고, 그 결과 에너지 가격이 상승해 인플레이션이 유발되어 오르반 본인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펼쳐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본인의 정치적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으므로 우크라이나 원조에 소극적인 것이다.
세 번째는 외교적 요인이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휴전 협상을 제안했다가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별 성과 없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방러를 해 푸틴을 찾아 가 휴전 협상을 제안했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작년 여름철 대공세 때부터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황(물론 흑해에서 러시아의 흑해 함대를 몰아내는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 전황을 바꾸기는 힘들다. 뭔가 다른 극적인 한 방이 필요하다.)에서 러시아의 점령지를 인정하는 채로 휴전협상을 한다는 것은 러시아에게 유리하지만 우크라이나한테는 불리하다. 그래서 그런지 푸틴은 오르반 총리의 휴전 협상 제안에 선뜻 동의했고, 우크라이나는 반대했다. 물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도 미국 대선 때 트럼프가 될 것을 대비해 우크라이나 국민이 원할 경우 러시아와 휴전할 수 있다고 밝히며 기존 입장에서 선회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크라이나의 평화 공식(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 러시아군의 완전 철수 등)이 전제된 상황에서 전개되는 협상을 의미하며 미국 대선의 불확실성에 대해 미리 대비하는 차원인 것이지 러시아가 현재 점령지를 들고 가는 것(러시아가 원하는 바)을 조건으로 협상을 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다.
이렇듯 오르반은 극명한 입장 차를 가진 양국을 오가며 튀르키예의 에르도안이나 중국의 시진핑처럼 이 전쟁의 중재자 모습을 연출하여 러시아와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국내 정치를 위한 본인의 선전 수단으로써 활용하려는 계획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고 연이어 푸틴도 찾아간 것이다. 한마디로 우크라이나를 찾아간 것은 오르반의 입장 변화 때문이 아닌 본인의 정치적 계산과 헝가리와 러시아 사이의 외교 관계 유지를 위한 것이다.
마지막은 바로 사회/문화적 요인이다. 우크라이나 내 자카르파탸주에는 약 15만 명의 헝가리 이주민들이 살고 있다. 마치 돈바스 지역 내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은 헝가리어는 잘 구사하지만 우크라이나어를 잘 구사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크라이나 사회에 잘 동화되지 못하며 적응을 못 하고 산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의 언어법이 우크라이나 내 헝가리 인들이 헝가리어를 구사하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헝가리 인들을 차별하며 탄압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로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에 있어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요인은 앞서 언급한 오르반의 우파 민족주의적 정치 성향과 관련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오르반의 주장이 과연 사실일까?
우크라이나 헌법에는 우크라이나어를 유일한 국어로 지정하고 있다. 2012년 친러 성향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재임 시절 언어법이 통과된다. 이 법안에 의해 지역 공식어로 인정받은 18개의 언어(러시아어, 헝가리어, 루마니아어, 폴란드어 등) 중 러시아어는 압도적으로 많은 이들이 구사한다. 우크라이나인들의 90%가 러시아어를 할 줄 알고, 돈바스 지역을 포함한 동남부 지역에 러시아계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헌법이 인정하는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국어인 우크라이나어가 그 지위를 위협당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우크라이나 헌법에 위배된다. 결국 2018년 우크라이나 헌법 재판소는 이 법안을 위헌으로 판단했고, 이 법안은 폐지되었다.
이후 2019년 또 다른 언어법이 통과된다. 이 언어법에서는 러시아어, 헝가리어 등 우크라이나어 외의 언어를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관공서, 병원, 상점 등에서는 우크라이나어를 우선 사용하되 서비스 이용자 또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다른 언어도 사용 가능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이 법률의 대상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인 기업이나 업체다. 그렇기에 우크라이나어 우선 사용을 직원이 지속적으로 위반할 경우 벌금형에 처하며 그 대상은 직원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나 업체다. 이러한 법률안은 우크라이나 헌법에서 지정하는 우크라이나어의 지위도 인정하면서 즉 위헌 소지도 없으면서 우크라이나 내 모든 인구가 본인이 원하는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오르반의 주장과는 반대로 우크라이나 정부가 언어법을 통해 우크라이나 내 헝가리 인들을 탄압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언어법을 통한 러시아어 사용 금지 그로 인한 돈바스 내 러시아인 탄압/차별이라는 푸틴의 명분과도 다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