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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May 28. 2021

마블의 새 영화 [이터널스] 속 등장인물들

21세기에 재해석되는 고대 신화

오늘은 의학과는 관계 없는 글을 하나 써보려 합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21세기 최고의 오락거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등장인물과 마법과 과학을 넘나드는 신비한 능력들, 우주급 스케일, 그리고 지속적인 세계관 확장 등이 지속적으로 파고들 거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가볍게 즐길 수도 있고, 진지하게 연구하고 분석하며 봐도 되는 종류의 영화랄까요.


저는 이제까지도 나름 즐겁게 봤지만, 이번에 [이터널스(Eternals)]라는 영화의 트레일러가 뜨는 것을 보며 상당히 흥미롭게 느꼈습니다. 최근까지 MCU는 북유럽 신화를 기원으로 하는 토르, 오딘, 로키, 그리고 애시르 신족들에 대해서만 주로 다루었는데,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북유럽신화 외의 서양문화권 신화를 다루기 시작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터널스 포스터

이터널스는 셀레스티얼이라는 외계종족에 의한 DNA 간섭으로 태어난 종족이란 설정으로, 인간이지만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 초능력, 아름답고 준수한 외모, 그리고 살해당하지 않는한 거의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력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정말 고대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과 흡사한 모습이죠.


이터널스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다양한 신화(주로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오마쥬가 담겨 있어서 매우 반갑기까지 합니다.


아직 영화가 개봉을 하지 않았고, 코믹스와는 다르게 가는 경우가 많은 MCU의 특성을 고려하여 가볍게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기준으로 그 기원만 살펴보려 합니다.

이터널스 트레일러의 한 장면(뉴시스 제공). 왼쪽부터 킨고, 마카리, 길가메시(마블리), 테나, 이카리스, 에이잭스, 세르시, 스프라이트, 파스토스, 드루이그.

이번 영화 예고편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로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이나 영웅의 이름을 따온 경우가 제일 흔하고(에이잭스, 테나, 이카리스, 세르시, 파스토스, 마카리), 수메르 신화 속 영웅인 길가메시, 켈트족 전설을 따온 것으로 생각되는 스프라이트(켈트어로는 스프리건, Spriggan), 약간 정체를 짐작하기 힘든 드루이그, 그리고 4세대 이터널스라고 나오는 킨고가 있습니다.


여기서 킨고는 코믹스에서는 사무라이로 나오던데, 영화에서는 인도 발리우드 배우로 바뀐 것 같습니다. 킨고 역할의 경우엔 영화를 직접 봐야 어떠한 신화를 차용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이터널스 이름의 기원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에이잭스(Ajax):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인 '대(大) 아이아스(Αἴας)'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인물인 것 같습니다. 신화 및 코믹스에서는 남자였으나, 영화에서는 여성배우(셀마 헤이엑)가 캐스팅되었네요. 

아이아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그리스 장수 중 하나로, 거대한 덩치와 뛰어난 창던지기 능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성격은 깡패(...)들이 득실대는 그리스 진영 안에서는 조용하고 과묵하며 신의를 지키는 편으로 나오는데, 아킬레우스의 전사 이후 그의 갑옷을 누가 가질 것인지에 대해 오디세우스와 다투다가 언쟁에서 지게 됩니다. 그 이후 화풀이로 그리스 병사들을 죽일 뻔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수치심을 느낀 나머지 자살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과연 영화에서는 어떠한 역할로 나올지는 모르겠는데, 아이아스의 이야기를 참고해서 만든다면 나름 지도자적 위치로 나오다가 정신을 잃고 폭주한다던다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영화 '트로이' 속에 등장하는 아이아스. 용맹한 전사의 이미지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2. 테나(Thena): 영문 이름만 봐도 대강 예상이되는데, 바로 그리스 신화 속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입니다. 트레일러 속 모습도 검을 들고 싸우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면, 영화 내에서도 아테나와 비슷한 역할을 맡게되는 것 같습니다.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당장이라도 적을 향해 돌진할 것 같은 용맹함이 느껴집니다.


3. 이카리스(Ikaris): 그리스 신화 속 이카로스(Ἴκαρος , Icarus)에서 따온 이름으로 보입니다. 코믹스 설정을 보면 자신의 아들인 이카리스(young Ikaris)에게 비행 장치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것의 정확한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한 채로 사용하다가 높은 고도까지 갔을 때 산소 부족으로 기절하며 추락하였다고 합니다. 

태양 가까이 올라가 날개를 고정한 밀랍이 녹아 추락하였다는,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 보다는 훨씬 더 현대 과학에 맞는 설정입니다. 

영화에서도 뭔가 신화 속 이카루스처럼 약간 촐랑(?)대다가 사고를 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됩니다 ㅎㅎ.

추락하는 이카루스. 이카루스의 추락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아버지 다이달로스도 보입니다.


4. 세르시(Sersi):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마법사이자 여신이기도 한 키르케(Κίρκη, Kirke)가 이름의 기원으로 생각됩니다. 신화 속에서는 온갖 마법의 약을 만들고, 사람을 짐승으로 변신시키는 등의 신비한 능력을 보이는데, 영화 속에서도 여러 가지 물질의 성질을 마음대로 바꾸는 능력자인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는 인간에게 매우 호의적인 이터널스로 나온다는데, 신화에서처럼 외로움을 타서 오디세우스와 같은 인간을 사귀거나 하지 않을지 궁금합니다.

키르케. 워터하우스의 그림. 발치에는 마법의 힘으로 돼지로 변하게 한 사람과, 거울 속에 비치는 새로운 희생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5. 파스토스(Phastos): 이름이나 능력을 볼 때, 그리스 신화 속 헤파이스토스(Ἥφαιστος, Hephaistos)가 기원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기계나 무기를 만들어 이터널스를 후방 지원하는 역할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뭔가 은근 오파츠도 많이 만들 것 같은 느낌이...

헤파이스토스. 대장장이로서의 모습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6. 마카리(Makkari): 처음에 얼핏 이름을 듣고는 무슨 신을 본따서 만든 것인지 헷갈렸으나, 가장 빠른 이터널스이며, 이집트에서는 '토트'로 활동한 적도 있다는 코믹스 설정을 보니 떠오르는 신이 있습니다.

바로 헤르메스의 로마식 이름인 메르쿠리우스(Mercurius)에서 나온 영어 이름인 '머큐리(Mercury)'이죠.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으로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누구보다 빠르게, 멀리 이동할 수 있었으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집트 신인 토트와 헤르메스를 동일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신을 합쳐서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라고도 불렀죠. 

아마 신화 속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는 능력이 가장 강조될 것 같으나, 헤르메스처럼 잔꾀도 잘 부리는 재밌는 모습도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헤르메스와 토트가 합쳐진 존재인 헤르메스 트리메기스투스의 이미지.

7. 길가메시(Gilgamesh): 길가메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왕조 초기 시대인, 우루크 제1왕조의 전설적인 왕이자 영웅입니다. 혈통의 3분의 2가 신이고 3분의 1이 인간이며, 훔바바라는 괴물과 싸워 이기고 여신 이난나의 구애도 받았으며, 불로불사의 힘을 얻기 위한 모험도 떠났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대활약이 담겨져 있는 '길가메시 서사'가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점토판의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이터널스로서의 길가메시가 역사 속에서 계속 활약을 해서인지, 이미 신화 속 길가메시는 사망한지 오래인 '바빌론' 시대에 등장하는 모습이 영화 속에 나타납니다. 바빌론의 자랑인, 푸른색의 '이슈타르의 문'이 배경으로 보입니다. 

길가메시의 전설과 캐스팅된 배우인 마동석씨의 이미지를 더해서 보면, '호방한 힘캐' 역할로 그려질 것도 같습니다.

이슈타르 문 앞에 모인 이터널스 멤버들.


8. 스프라이트(Sprite): 스프라이트는 '음료수' 이름으로 더 친숙하시겠지만, '요정'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스프라이트는 페어리와 같은 요정과 비슷한 이미지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영국 콘월 지방에서 전해지는 '스프리건' 전설에 따르면 고대 거인이 남긴 보물을 지키는 수호자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페어리와 같은 요정의 이미지가 더 강한지, 11세 정도의 소녀로 나오며 이터널스들의 기억을 조작하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스프리건 동상


9. 드루이그(Druig): 여러 가지 물질과 인간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터널스로 나오며, 영화 속에서는 다른 이터널스들과 뜻이 안 맞아 따로 은둔한 상태로 지내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코믹스에서는 드루이그를, 로마의 신인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와 동일 신격으로 여겨지는)를 본따서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 발킨(Valkin)이라는 이터널스의 아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드루이그라는 캐릭터만 보면, 불카누스 혹은 헤파이스토스의 아들로 나오는 신화 속 인물들과는 딱히 잘 맞지 않아서 좀 더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드루이그는 'Vorozheika'라는 가상국가의 수상(prime minister)으로 활동한다고 하는데, [The Bathhouse at Midnight]라는 책에서 이 단어의 기원에 관련된 설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CHURCH SLAVONIC(고대 교회 슬라브어)로는 '적', '악마',  '마법사' 등을 의미하고 후대의 러시아어로는 'wood-sprite'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앞서 나온, 스프라이트와 비슷한 것도 같은데... 나무 요정인 스프리건 자체가 켈트족의 전설과 관련되는 것을 고려하고 마법사의 이미지가 더해진다면, 드루이그는 켈트 신앙 사제인 드루이드(Druid)에서 변형하여 만든 이름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여기까지 영화 [이터널스]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가지고 신화와의 연관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실제 영화 속에서 열마나 신과 영웅들의 모습이 반영될지 기대됩니다^^!

킨고에 대해서는 제가 아직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혹시 배우가 인도 출신인 분으로 바뀌면서, 인도 신화의 신들의 능력을 넣지 않을까라는 추측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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