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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Jun 18. 2021

같은 형벌, 다른 품격

프로메테우스와 티티오스, 그리고 간의 재생.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는 신에 대항하거나, 불경하거나, 그 외에 여러가지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다양한 징벌들도 등장합니다.


앞선 이야기에 등장한 시시포스처럼 타르타로스에서 영원히 바위를 산 위로 굴려올리는 벌을 받거나, 아틀라스처럼 하늘을 받치고 있는 것과 같은 고통을 얻기도 합니다.


수많은 징벌들 중에서 상당히 인상적이고 신화적이라고 생각되는 형벌이 있는데, 바로 간을 끊임없이 파먹히는 것입니다.

이 형벌을 받은 신화 속 존재들은 두 명이 있는데, 바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Προμηθεΰς)티티오스(Tityos, Τιτυός)이며 이들이 형벌을 받는 형식을 보면 비슷해보이지만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들의 형벌과 간의 재생 능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현대 의학 지식에 따르면, 간은 재생이 잘 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고 암 수술 등으로 대략 65%까지 절제해도 나머지 35%의 남은 간이 재생하여 6개월 정도 지나면 거의 다 기능을 회복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간의 특성 덕분에, 생체 부분 간이식이라는 수술법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생체 간이식의 과정. 출처 -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611220561524734


간세포의 재생은 ‘IL-6’ 같은 사이토카인(각주 1)이 간의 쿠퍼세포에서 분비되면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HGF’ ‘TGF-α’ 와 같은 성장인자들이 나오게 되고 이들에 의해 간세포 분열이 활발해집니다. 재생의 마지막 단계는 ‘TGF-β’ 계열의 사이토카인에 의해 조절됩니다(각주 2).


낯선 사이토카인들의 이름이 난무하여 그 과정이 복잡해보이지만 간단히 정리해보면, 간은 많은 부분이 잘려나가도 남은 세포들이 으쌰으쌰 노력하여 원래의 기능을 회복해낸다는 것입니다. 간이식이 필요한 환자와 의사들에게는 너무도 감사한 일이죠.


현대에 사는 우리들이야 간이 재생되는 기관임을 알지만, 과연 고대 그리스 사람들도 간이 재생 능력을 지녔음을 알았던 것일까요? 도대체 어떤 생각에 의해 간이 파먹혔다가 재생되는 형벌을 상상해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른 의학자들도 의심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각주 3, 4).

의학적으로 간의 재생에 대해 알게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입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서는 두 개의 이야기가 간의 재생 능력에 대해 묘사하고 있으니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고대에도 간을 다쳤다가 무사히 살아났다거나, 간이 손상될만한 상처를 입었던 사람을 나중에 해부해보니 간이 정상 같아 보였다던가 하는 식으로, 우연히 간의 재생 능력을 추측할만한 상황을 접하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사료가 없기 때문에 고대 신화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대인들이 '간'이라는 장기에 부여한 특별한 상징성에 대해 풀이해보는 식으로 말이죠.


우선 프로메테우스와 티티오스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올림포스 신들이 집권하기 전에 세상을 지배했던 티탄 신족이었고, 티티오스는 반신반인의 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존재가 살아가는 모습은 매우 달랐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영웅의 길을 걸었으나, 티티오스는 범죄자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신들의 계보를 정리한 신통기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땅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손자에 해당하며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들 중 하나와 결혼하여 데우칼리온(Deucalion)을 낳았습니다. 데우칼리온은 훗날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헬렌(Helen, Ἕλλην)이라는 아들을 낳게되고 그가 바로 그리스인들의 조상이 된다고 합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올림포스의 제왕인 제우스와는 사촌이 되는 셈이고, 고대 그리스인들의 조상이 되는 위대한 신이 되는 것이죠. 인류를 사랑했던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전달해주고, 이로 인해 벌을 받게 됩니다.

카프카스(혹은 코카서스)산 위에 있는 바위에 묶인 채로,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씩 찾아오는 독수리(Eagle)에게 간을 뜯어먹히는 것입니다. 그의 고난은 먼 훗 날 헤라클레스에 의해 끝나게 됩니다.

코카서스 산에 매달려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 형벌을 내리기 위해 날아오는 독수리가 잘 보입니다. 출처는 그림 하단.
프로메테우스의 형벌. 귀스타브 모로의 작품입니다. 아쉽게도 이 그림에서는 독수리가 vulture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으나, 프로메테우스의 당당함이 돋보이죠.

인간을 위해 신들의 왕과 대적하다가 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와 달리, 티티오스는 오직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다가 벌을 받게 됩니다. 티티오스는 제우스와 엘라라(Elara, Ἐλάρα)라고 하는 인간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제우스가 엘라라를 헤라로부터 숨기기 위해 땅 속 깊은 곳에 넣어놨는데 임신 중에 티티오스가 너무 거대하게 자라 엘라라의 자궁을 찢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는 거인으로 자랐는데 절제력이 부족했는지, 제우스의 여자이자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인 레토 여신을 겁탈하려 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혹은 제우스에 의해 살해되어 명계의 왕인 하데스 앞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는 결국 타르타로스로 끌려가 영원의 벌을 받게 되었으며, 그 벌이란 바위 위에 묶여서 대머리독수리(Vulture)에 의해 간을 파먹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벌은 매일 혹은 매월 초승달이 뜰 때마다 받게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벌이 끝났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티티오스의 형벌. 겁에 질린 티티오스의 표정과 뒤로 펼쳐진 살벌한 타르타로스의 모습이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상당히 흡사한 이야기지만, 벌을 받게 된 원인이 매우 다르며 그 과정도 약간 다를 뿐만 아니라, 결과 역시 매우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한 명은 영웅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그저 성범죄자였습니다. 또한 한 명은 높은 산 위에서(진정한 의미에서는 죄가 아니란 뜻이며 일종의 양심수라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나락으로도 불리는 그리스 신화 속 지옥인 타르타로스에서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들의 형벌을 수행하는 존재도 매우 다릅니다. 한글로 번역된 신화에서는 둘 다 모두 '독수리'라고 쓰여져 있으나, 프로메테우스에게 온 것은 'Eagle'이며 이것은 제우스의 상징이기도 하고 직접 사냥을 하는 새로 알려져 있는 흰머리독수리 입니다. 이에 반해, 티티오스의 형벌을 담당하는 새는 'Vulture'라고 하며 한글로는 '대머리독수리'에 해당합니다. 이 새는 시체를 찾아서 그 썩은 고기를 뜯어먹는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머리 독수리(좌)와 흰머리 독수리(우)


흰머리 독수리는 수많은 문화권에서 왕이나 지도자가 지닌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대머리 독수리는 비열한 존재를 비유하는 표현으로 많이 활용되며 악당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죠. 벌을 내리는 존재의 차이만으로도 프로메테우스와 티티오스의 격의 차이가 느껴지실 겁니다.

미국 연방 국회의 상징인 흰머리 독수리(좌)와 마블 스파이더맨 1편의 악당인 벌쳐(우).


끝으로,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영웅인 헤라클레스에 의해 해방되어 자유를 되찾고 이후로도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고마운 존재로 추앙받게 됩니다. 그러나 티티오스는 영원토록 타르타로스 안에서 고통스러운 벌을 받게 됩니다.


이 두 존재에게서 '간'이 상징하는 바는 판이합니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영혼과 생명력과 지혜를 상징하며,  티탄 신족이자 영웅이기에 그것들이 끊임 없이 샘솟아나며 그렇기에 벌이 영원히 반복될 수 있습니다. 제우스 신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더욱 강조해주는 장치가 되는 것이죠.


이와 달리, 티티오스의 간은 일종의 쾌락과 열정, 욕망을 상징합니다(각주 5). 티티오스의 절제되지 않는 욕망을 보여주며 그것을 끊임 없이 뜯어냄으로서 일종의 거세형과 같은 형태로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가 저질렀던 범죄에 대한 댓가로 아주 적절한 형벌인 셈이죠.


아마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어렴풋이 간이 재생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의학 지식이었다기 보다는 철학적인 상징성이 더 강했을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라 두 이야기 속에서 끝없는 형벌의 대상으로 활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영웅과 범죄자에게 끝없는 벌을 받게하는 간의 재생 능력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간이식'으로 활용될 수 있으니 역시 의학의 발전에 새삼 감사하게 됩니다.



*각주
1. 사이토카인(Cytokine)이란 세포간 신호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은 단백질을 의미합니다. 코로나 판데믹 중에 '사이토카인 폭풍'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하여 용어 자체는 익숙하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사이토카인은 펩타이드 형태이며, 세포의 지질막을 뚫고 들어가지는 못하여 세포 표면에 있는 수용체를 통해 작용합니다. 내분비 신호 전달이나 면역 조절 기능 등을 담당하게 됩니다.


2. Liver regeneration: biological and pathological mechanisms and implications. George K. Michalopouls, et al. Nature reviews gastroenterology & hepatology. 2020.


3. Hepatic regeneration in Greek mythology. Papavramidou N. World J Meta-Anal. Mar 31, 2019; 7(3): 77-79.


4. Tityus: A forgotten myth of liver regeneration. Dina G. Tiniakos, et al. Journal of Hepatology. August 2010, Pages 357-361


5. 그리스어에서 나온 간을 의미하는 단어는 " ἧπαρ(hepar)"인데, 이건은 "hedar"라고도 불리며 이 단어의 어원은 "hedoni(쾌락)"이라고 합니다. 앞서 나온 에로스와 프시케 사이에 태어난 딸의 이름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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