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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Jun 16. 2021

신체 안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메아리(Echo)

나르키소스를 짝사랑하던 님프 에코의 슬픈 이야기

초음파(超音波, ultrasound)란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 높은 주파수의 음파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 음파를 인체 내부로 보내게 되면 내부에서 반사되는 음파가 돌아오게 되고, 이 반사되는 음파를 눈으로 볼 수 있게 영상화 시킨 것이 현대 의학에서 진단 방법으로 사용되는 초음파 검사 입니다. 

초음파의 주파수 영역. 출처-위키피디아.


초음파 검사는 검사하고자 하는 장기(심장, 간, 담낭, 췌장, 비장, 방광, 자궁, 난소, 전립선, 유방 등)의 위치에 초음파 기구를 밀착시킨 후에 초음파를 장기로 보내면, 실시간으로 장기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숙달된 검사자가 사용하면 장기의 구조와 형태, 혈류의 흐름까지도 측정 가능한, 매우 유용한 검사 방법입니다. 

의료용 초음파 기계(좌)와 심장초음파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우). 출처-위키피디아.

이러한 초음파 검사 방법 중에서 심장 초음파의 경우에는 ‘Echocardiography’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echo’라고 하는 접두사가 바로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님프의 이름인 에코입니다.

에코의 사연은 나르키소스의 이야기에서 잠시 언급을 하려던 것인데요, 이 님프는 나르키소스를 짝사랑하던 님프들 중 하나이며 나르키소스 못지 않게 슬픈 결말을 맞게 된 존재입니다. 


에코는 원래 숲의 님프로 말재주가 매우 좋은 수다쟁이 님프였습니다. 발랄한 성격의 님프였던 그녀는 사슴 사냥을 하는 나르키소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 짝사랑을 하던 상태였지만, 나르키소스의 냉정함을 알았기에 쉽게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르키소스를 짝사랑하는 에코. 1771년. Louis-Jean-Francois Lagrenee.


그러던 어느 날, 숲의 님프들과 노닥거리기 위해 제우스가 나타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을 찾기 위해 헤라 여신까지 나타나 제우스와 님프들은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제우스와 친구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고자 에코가 헤라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고, 재밌는 말재주로 헤라의 마음을 뺏어서 결국은 제우스를 도망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헤라로서는 불륜 현장을 습격하려던 것을 방해당했던지라 화가 날 수 밖에 없었고, 그 화풀이로 에코에게 저주를 걸었습니다. ‘너는 앞으로 네가 먼저 말을 할 수 없고 상대방의 말의 끝부분만 따라 말하게 될 것이다.’라구요. 한마디로 우리가 아는 ‘메아리’같은 존재가 된 것이었죠. 

헤라를 속이는 에코. 15~16세기. Giovanni Dosso (좌). 헤라의 저주를 받아 대답만 할 수 있게 된 에코. 1874년. Alexandre Cabanel.


안그래도 어려운 짝사랑 중인데, 그녀의 특기인 말재주조차 사용할 수 없어진 에코는 나르키소스 주위를 맴돌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친구들과 사냥을 나온 나르키소스를 또 보게 되었는데, 그날 따라 나르키소스는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어 동료들을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들을 부르기 위해 ‘어이~ 여기서 우리 만나자!’라는 내용으로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를 들은 에코는 ‘우리 만나자!’라는 말을 따라하며 달려나와 나르키소스의 목을 와락 껴안았습니다. 그러나 가뜩이나 여자들을 싫어하던 나르키소스로서는 낯선 여자가 자기말을 따라하며 달려와 껴안는 상황이 끔찍할 따름이었고, ‘네가 손을 치우지 않으면 여기서 그냥 죽는 게 낫지!’라고 외치며 그녀를 밀쳐 냈습니다. 



에코는 슬픔과 수치심에 가득찬 채로 ‘그냥 죽는 게 낫지.’라는 말을 따라하며 동굴로 숨어들어갔고, 거기서 점차 온몸과 마음이 타들어가 결국은 목소리와 뼈만 남게 되었고, 나중에 뼈는 바위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목소리만 남아 메아리가 되었고, 나르키소스가 연못가에서 말라죽을 때도 계속 지켜보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나르키소스의 죽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에코. 1627-28년. Nicolas Poussin. 


돌아오지 못할 사랑에 대해 메아리로만 답할 수 있었던 그녀는 너무 안타깝지만, 에코의 이름을 따온 초음파 검사는 의사와 환자들에게 진단을 위한 큰 도움을 주어 많은 사람을 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그녀에게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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