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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Jun 14. 2021

기억을 잃는 병

기억상실증의 어원은 여신 므네모시네

기억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며, 자신의 삶을 인식하고 다양한 지식을 배울 수있게 하며, 그것들을 바탕으로 인간이 미래를 준비하고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억이 사라진다면 기억상실증은 치매나 뇌경색과 같은 신경계 질환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기도 하며, 이러한 형태로 기억의 상실이 뇌의 기질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에는 원인이 되는 병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달리 심리적인 이유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라고 합니다. 해리성 기억상실증은 해리성 장애(Dissociative Disorders)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억상실증을 의미하는 단어인 ‘Amnesia’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 Μνημοσύνη)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아래 그림은 '회상 혹은 기억'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인 'Ricordanza'라고도 하며, 여신이 기억의 램프를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뇌라는 거대한 도서관 안에서 등불을 들고 돌아다니는 작업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상당히 적절한 비유인 것 같습니다. 

므네모시네 여신. Dante Gabriel Rossetti (c. 1876 to 1881).

므네모시네는 티탄 신족의 한 명으로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고 합니다. 거의 최초의 신들인 하늘과 땅의 딸이란 점에서 ‘기억’이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신화적 설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2003년도부터 개발된 간격 반복(Spaced-repetition) 소프트웨어의 이름이 '므네모시네(The Mnemosyne Project)'인데, 간격 반복이 암기 속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기억의 여신'의 이름을 붙인 것의 아주 적절한 예라고 볼 수 있겠죠.

간격 반복(Spaced repetition)의 예시. 므네모시네 프로그램의 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므네모시네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무사(복수로는 무사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뮤즈, Muses, Μοῦσαι)라고 불리우는 아홉 명의 딸을 낳게 되는데, 이들은 한 명, 한 명이 다양한 형태의 문학과 예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있어 ‘뮤즈’라는 단어는 작가나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를 의미하기도 하죠. 

아폴로, 므네모시네, 그리고 아홉명의 무사 여신들. 1761년. Anton Rphael Mengs. 예술과 관련된 여신들답게 리라 연주에 능한 아폴론과도 자주 어울려 다닙니다.


그들을 한 명씩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칼리오페(Caliope, Καλλιόπη)는 서사시와 현악

클레이오(Kleio or Clio, Κλειώ)는 역사

에우테르페(Euterpe, Eὐτέρπη)는 서정시

탈리아(Thalia, Θάλεια)는 희곡

멜포메네(melpomene, Μελπομένη)는 비극

테르프시코레(Terpsichore, Τερψιχόρη)는 춤

에라토(Erato, Ἐρατώ)는 연애시와 독창

폴리힘니아(Polyhymnia, Πολύμνια)는 찬가(혹은 무언극)

우라니아(Urania, Οὐρανία)는 천문학(할아버지인 우라노스의 이름과 비슷한 것을 보면 예상이 가능한 전공(?)이겠네요)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우라니아와 칼리오페. 1634. Simon Vouet. 우라니아는 머리에 별들이 달린 티아라가, 칼리오페의 손에는 서사시인 '오디세이'가 놓여있습니다.

모두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필요한 요소들이었지요. 한 편으로는 요즘과 같은 인쇄술이나 기록 보관 방법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서는, 인간의 기억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방식의 전승이 필요했었다는 비유일 수도 있겠네요. 


이들 중에서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인 오르페우스(Orpheus, Ὀρφεύς)의 어머니인 칼리오페가 가장 유명합니다. 오르페우스는 너무도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갔지만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위대한 예술가로 불리우는 것을 보면 진정한 무사 여신의 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1862년. Edward Poynter. 저승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찾아오려 노력하는 오르페우스의 모습이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므네모시네는 신화 속에서 특별한 활약은 없지만, 명계에서 망각의 강 레테('죽음이란 무엇인가' 포스트)와 반대로 기억을 유지시켜 주는 연못물로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흘러가버리는 것은 망각이지만 고여있는 물은 기억과 비슷하다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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