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atros Jun 10. 2021

자신만을 사랑하는 나르키소스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어원

인격장애(Personality disorders)라는 질환은, 이 질환을 지닌 환자의 성격, 습관이나 사고 방식 등이 사회에서 정한 기준에서 극단적이고 지속적으로 벗어나 사회 생활에 문제를 일으키는 장애를 뜻합니다. 대부분 청소년기나 성인기 초기에 발생하여 이후의 사회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환자와 주위 사람들을 고통 받게 할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의 4번 째 개정판인 DSM-IV에 나타난 분류에 따르면, 크게 3가지의 유형이 있으며 그 안에 10가지의 인격장애가 속해 있습니다.



세 가지 유형은 기이형인 A형(편집성, 분열형, 분열성)충동형인 B형(반사회성, 자기애성, 경계선, 연극성), 그리고 불안형은 C형(회피성, 의존성, 강박성)으로 나누어 집니다. 물론 이와 같은 인격장애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니, 임의로 자신이나 타인이 인격장애라고 속단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이 중에서 클러스터 B군에 속하는 질환 중 ‘자기애성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NPD)’는 과장된 자존감과 칭찬에 대한 욕구, 감정 이입의 결여 등을 특징으로 하며, 그 어원은 그리스 신화 속의 아름다운 청년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나르키소스. 카라바조의 작품.

나르키소스(Narcissus, Νάρκισσος)는 강의 신의 딸이자 님프(Nymph, νύμφη-각주 1)인 리리오페(Liriope, Λιριοπη)의 아들로, 그의 아버지 역시 강의 신들 중 하나인 케피소스(Cephissus, Κηφισός)였으며, 태어날 때부터 ‘물’과 관계가 많았습니다.


리리오페는 자신의 아름다운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여 장님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Teiresias, Τειρεσίας)를 불러 미래를 물어보았는데, 그는 나르키소스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예언했습니다(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전승도 있습니다).



현대에는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고 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거울’이 보편화된 것도 아니었기에, 이 정도 금기를 지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라 느꼈을 것도 같습니다. 어쨌든 이런 예언을 듣고 자라난 나르키소스는 그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으나, 자존심이 세서 그 어떤 여성의 구애도 받아주지 않고 매우 매몰차게 거절하였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가지 않는 이성을 거절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지만, 거절이 매우 여러 번 발생했고, 그 방식이 몹시 매정해서였는지, 거절당한 여성들은 나르키소스에게 원망을 품게 되었고, 그녀들은 복수의 여신인 네메시스(Nemesis, Νέμεσις)혹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복수를 해줄 것을 탄원하게 됩니다. 자신들처럼 실연의 아픔을 겪게 해달라고 말이죠.


살인자를 추적하는 정의(횃불을 든 여신)와 복수(칼을 든 여신). 1808, Pierre-Paul Prud'hon. 네메시스 여신은 악행 뿐만 아니라 오만에 대한 징벌도 담당.

그 호소를 받아들인 복수의 여신은 나르키소스에게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상대와 사랑에 빠지도록 저주를 내렸고, 그는 사냥을 하고 돌아가던 중에 목이 말라 다가간 연못에서 수면(水面)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되죠!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사람이 연못에 나타나자, 나르키소스는 그 사람이 자신인 줄도 모르고 물의 님프라고 생각해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물 속에서 나타난 아름답고 신비한 미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헛된 구애를 계속하게 되었죠.


에코와 나르키소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작품.

물에 손을 뻗으면 도망치듯 사라지고, 수면의 파문이 멎으면 다시 돌아와 자기처럼 미소를 지어 화답하는(본인 모습이므로--;) 매혹적인 요정의 모습에 점점 안달이 난 나르키소스는 연못가를 떠나지 못하고 수면에 비친 자기 모습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말라 죽게 되었고, 마지막 모습은 물가를 향해 고개를 꺾고 있는 형태였다고 합니다.

나르키소스는 그 마지막 모습대로 꽃이 되었는데, 꽃의 이름은 수선화(水仙花, Narcissus)였고 마치 마지막 그의 모습처럼 꽃의 고개가 아래쪽으로 꺾어져 있었습니다.

수선화


나르키소스는 죽어서 명계로 가기 위해 스틱스 강을 건너면서도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로는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었고, 죽어서도 이루지 못할 가장 진득한 사랑의 감정이 바로 자기애(自己愛)라는 은유가 아닐까 합니다.





* 각주 


1. 님프는 매우 아리따운 용모의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신화 속의 신비한 존재들로, 기나긴 수명과 자연물(강, 숲, 바다 등)과의 연관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한국에서는 요정(妖精)이란 단어로 번역하기도 하죠.

매거진의 이전글 메두사의 저주처럼 치명적인 간경변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