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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May 18. 2021

이상한 나라의 모자 장수는 왜 미쳐버렸는가?

수은 중독이 초래한 광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필명)'이 1865년에 출판한 아동 소설이자 영국 최고의 고전 중 하나로 불리우는 작품입니다.

원전을 다 읽어보지 않은 분들도, 디즈니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접하고 대강이나마 그 스토리나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 경우가 많을 겁니다.


일반적으로는 1951년에 디즈니 사에서 만들어진 장편 애니매이션이 가장 유명하고(그림), 현재까지 이어지는 금발 머리에 파란 원피스를 입은 앨리스 이미지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실제 '앨리스'의 모델이었던 소녀는 검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합니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귀여운 소녀(원작에서는 일곱살)가 토끼굴을 통해 땅 속에 숨겨져 있는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 온갖 특이한 등장인물들을 만나고 마지막에는 하트 여왕을 만나 그녀가 주관하는 이상한 재판에서 증인도 되었다가 결국 카드 병정들에게 쫓기는 중에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는 아동 판타지의 정석과 같은 내용입니다.




여러 등장인물들 중에 주인공 앨리스를 제외하고 가장 인지도가 높은 것은 '미친 모자 장수(Mad Hatter; 매드 해터)'와 '체셔고양이(Cheshire cat)'일 것입니다. 아래 그림들은 초판본에 들어가 있던 삽화들로 '존 테니얼(John Tenniel)'라는 사람이 맡아서 그린 것들이며 소설 못지 않게 유명해졌습니다.

위의 그림 왼쪽에 보이는 캐릭터가 바로 미친 모자 장수라는 뜻의 매드 해터입니다. 원작 소설의 매드 티 파티(Mad Tea Party) 챕터에서 등장하여 3월 토끼와 함께 계속 차만 마시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 티파티 속의 시계는 항상 오후 6시로 시간이 고정되어 있죠.2

그림의 오른쪽에 보이는 체셔 고양이는 항상 웃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앨리스와 대화할 때 알 수 없는 말장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중 매드 해터 라는 등장인물의 기원에 대한 설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설이 출간되던 19세기 말에 런던 근교에서 모자를 만드는 기술자들이 수은(질산 수은: mercuric nitrate) 중독 증상으로 인해 이상 행동이나 손 떨림 등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 "As mad as a hatter(모자장수처럼 미친)" 이라는 관용어구가 생겼었습니다. 그래서 루이스 캐럴이 이에 에 착안해서 만든 인물이 매드 해터가 아니냐는 설이 있었습니다.

실제 영어 단어 중에는 'Hatter's shakes(모자장수의 떨림)'라는 것도 있으며, 이 역시 수은 증기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손을 떨고, 우울이나 불안, 복통을 호소하는 것을 보고 만들어졌다고 합니다(각주 1).


Austin Lane Crothers, 46th Governor of Maryland (1908–1912), wearing a top hat(출처: 위키피디아).


모자를 얼마나 많이 만들어 썼길래 이와 같은 산업 재해가 발생했을까 싶으실텐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의 남성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 중 하나가 위와 같은 'Top hat'였습니다. 멋을 아는 신사라면 응당 저러한 모자와 슈트를 갖춰입고 다니는 것이었죠. 남성 모자 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모자를 많이 썼고 그러한 모자를 만드는 재료로 '펠트(Felt)'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모자의 형태를 잡을 때 사용할 직물로서 적합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러한 펠트를 만드는 과정에는 수은이 필요하였습니다.

댄버리(Danbury)의 펠트(felt) 모자 공장.

펠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양모(혹은 다른 낙타나 비버 같은 동물의 털)와 다른 섬유와의 혼합을 위해 수분, 열, 압력을 가하여 문질러서 얻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때 수은을 사용했고, 수은의 유독성을 몰랐던 노동자들은 그 증기를 고스란히 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위의 그림에 나오는 댄버리(Danbury) 펠트 공장 역시, 펠트 생산 공정에서 수은 증기를 쐬는 일이 많았고, 그래서 저 공장 출신 노동자들이 손을 떠는 모습을 'Danbury shake'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만성 수은 중독의 결과는 다양한 신경학적 이상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그에 대해 잘 알려지게 된 사건이 바로 1956년 일본의 구마모토 현 미나마타 시에서 일어났습니다. 

마을 근처에 있던 공장에서 방류된 '메틸수은'이 포함된 폐수가 방류되었고, 그 폐수에 오염된 물고기를 먹고 피해를 입은 환자가 2000명이 넘었었죠. 유기 수은은 신경계를 침범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무기력증과 피로, 우울증 등을 일으키다가 나중에는 발음 이상, 떨림, 운동 실조(균형을 못 잡고 사지를 가누기 힘든 증상), 혼돈 등의 증상을 나타내게 만듭니다.

환자들은 수십년 동안 증상에 시달리기도 하고, 수개월만에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수은 중독 질환에 '미나마타 병(Minamata disease)'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고, 환경오염에 의해 발생한 건강 문제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었습니다.

미나마타병을 앓고 있는 자녀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


수은 중독의 위험성과 그로 인한 신경계 증상들을 살펴 보면, 매드 해터라는 등장인물이 수은 중독 증상을 앓고 있었을 것이란 추측도 그럴 듯해 보입니다.

이에 대한 분석은 이전에도 있어왔는데, 매드 해터의 기원을 찾는 논문들에 따르면 루이스캐럴이 모티프로 삼은 대상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 속에 나온 Theopulus Carter란 인물이며, 모자를 쓰는 형태나 시간에 대한 강박이 실제 소설 속 매드해터와 닮은 점이 있죠(각주 2)


Theopulus Carter (1894년 사진).

이 사람은 루이스 캐럴이 살던 동네인 옥스포드 근처에서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기이한 알람시계(사람을 깨우기 위해 침대를 기울여 버리는)를 만든 발명가이기도 했습니다. 

매드 해터처럼 Top hat를 약간 뒤로 기울여 쓰고 '시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이 사람을 보고 매드 해터를 상상했을 거라고 합니다.



위와 같은 내용을 보면 루이스 캐럴은 수은 중독 증상을 겪은 노동자들의 상태는 잘 몰랐을 가능성이 높고, 후대에 산업의료나 신경계 질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매드 해터와 수은 중독 간의 연관성을 찾아낸 것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오히려 앨리스를 가지고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수은 중독에 관련된 정보를 잘 알고 있기에 그에 대한 것을 반영해서 만든 듯한 장면이나 분장 등이 눈에 들어 옵니다.

아래 그림에 나온 증기(찻주전자에서 나오는 김이 저렇게나 자욱할 수가)가 가득한 모습이나, 당근을 방불케하는 붉은 머리의 영화 속 매드 해터의 모습이 수은 증기를 다루던 펠트 제작 공정을 비유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애니메이션 속의 매드 티 파티 속에 나오는 연기는 모자 공장에서 나오던 수은 증기 같아 보이고, 영화 속에 나온 매드 해터의 붉은 머리 카락은 질산수은을 사용하여 양모를 압축하던 과정에서 붉게 변하게 되는 'Carroting' 과정을 거친 것처럼 보이니까요(각주 3).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매드 티 파티의 한 장면.
영화 속 매드 해터의 모습. 애니매이션과 달리 당근과 같은 색의 붉은 머리카락이 눈에 띕니다.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매드 해터가 왜 이상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Hatter's shake'라는 단어의 기원이 된 모자 공장의 인부들이나 미나마타 병에 시달린 환자들이 고통 받은 원인은 매우 명확합니다.


이렇게 질병의 원인, 특히 공해병이 원인이 되는 물질을 명확히 알았을 때는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모자 공장 인부'가 쐬고 있던 수은 증기 같은 종류의 무언가를 '무지'로 인해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할 것입니다.


매드 해터는 이상한 나라에만 있어야 하니까요.




* 각주

1.  19세기 말에 발표된 'Sixth Annual Reports Bureau Statistics of Labor & Industries New Jersey.'라는 문헌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북아메리카 지역에 모자 공장이 많아서 이러한 사람들을 많이 관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Danbury' 라는 지역에 공장이 많아서인지 'Danbury shake'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2. Did the Mad Hatter have mercury poisoning? Br Med J (Clin Res Ed). 1983 Dec 24. H A Waldron. 

3. Jack Larkin (23 November 2010). Where We Worked: A Celebration Of America's Workers And The Nation They Built. Lyons Press. pp. 95–. ISBN 978-1-4617-4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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