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치료의 어원이 된 헬리오스
10월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는 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가을과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에게 빛과 열을 제공하는 '태양'과 관련된 이야기를 써보고자 합니다.
태양(Sun)은 우리 태양계의 항성으로, 그로부터 나오는 빛과 열은 우리 지구에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해주고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동식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생명의 근원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태양은 고대로부터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어 왔고, 온갖 신화 속에서 '태양'을 담당하는 신들은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론 역시 태양의 신 외에도 온갖 위대한 신격들(경쟁에서의 승리와 영광, 음악과 예술, 의술, 궁술 등)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졌으며, 외모 역시 그 어떤 신보다도 뛰어나게 아름답다고 묘사됩니다(여신으로서 아프로디테가 있다면, 남신 중에서는 아폴론이 으뜸이었죠).
그런데, 이 아폴론이 처음부터 '태양의 신'으로 여겨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폴론이 태양의 신으로 숭배되기 전에는 '헬리오스(Helios, Ἥλιος)'가 태양의 신으로 불리웠습니다.
헬리오스는 티탄 신족인 히페리온(Hyperion, Ὑπερίων: 광휘의 신)과 테이아(Theia, Θεία: 신성한 여신)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자매들은 셀레네(Selene, Σελήνη)와 에오스(Eos, Ηώς)로 각각 달과 새벽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태양의 마차를 몰다가 운전 미숙으로 하늘과 땅을 태우고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죽었다고 전해지는 파에톤(Phaëton, Φαέθων)이 바로 헬리오스의 아들 중 하나입니다. 후대에 헬리오스와 아폴론의 역할이 합쳐져서 아폴론의 아들로 전해졌지만, 원래 전승에 따르면 헬리오스의 아들이죠.
비록 그리스 신화 속에서는 아폴론과 그 역할의 구분이 모호해져서 특별한 활약이 없는 편이지만, 로도스섬에서는 상당히 열광적으로 숭배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전해지는 로도스 섬의 거상의 모델 역시 '헬리오스'였죠.
또한 로마에서는 솔(Sol)이라고 불리우며 태양신으로 계속 숭배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아폴론과 같은 신으로 혹은 또 다른 신격으로 여겨지던 헬리오스는, 현대로 넘어와서는 조금 생뚱맞게도 의학 용어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태양광치료(Heliotherapy)입니다.
태양광치료(Heliotherapy)는 광선 치료의 일종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던 피부 질환 치료법 중의 하나입니다.
태양광은 여드름(Acne Vulgaris)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3000년 전에 살았던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일광욕을 이용하여 여드름과 같은 피부병을 치료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태양광과 같은 광선이 여드름을 일으키는 세균인 proprium bacterium acnes에 대해 멸균 작용을 일으키고, 여드름의 증상을 나타내는 피지선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여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닐스 뤼베르 핀센(Niels Ryberg Finsen, 1860년 ~ 1904년)이란 덴마크의 의사가, 유럽에서 많이 발병했던 피부 결핵(각주 1)의 일종인 심상성 루푸스(보통루푸스, lupus vulgaris)와 천연두(smallfox)에 의한 피부 병변 치료에 이 태양광치료법을 활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치료법 개발의 공로로 1903년에는 노벨 생리-의학상까지 수상하게 됩니다.
물론 천연두의 박멸과 결핵 치료에 효과적인 항생제의 개발로 인해 핀센의 태양광치료법은 무용지물이 되었으나, 의학의 발달 과정 중에 환자를 돕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핀센과는 다른 목적과 방법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결핵 환자들을 대상으로 태양광치료가 시행된 예는 또 있습니다.
뼈에 결핵이 발병한 환자들에게 충분한 햇빛을 쬐게 하였을 때 환자들의 상태 호전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각주 2).
롤리어(Auguste Rollier, 1874년 -1954년) 라는 의사에 의해 시행된 치료는 많은 결핵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는데, 아마도 햇빛에 의한 비타민D 합성이 결핵 감염의 진행을 막는 것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각주 3).
물론 이와 같은 방법 역시 현재에는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에는 이전처럼 있는 그대로의 태양광을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특정한 광선만 추출하여 다양한 질병의 치료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건선(Psoriasis)이라는 피부 질환에는 태양광의 자외선(ultraviolet) 중 UVA (A자외선)만을 이용하여 치료하는 방법(PUVA)이 매우 유명하며, 최근에는 UVB (B자외선)도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수면장애나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파장인 가시광선의 빛을 이용하여 생체리듬 정상화에 도움을 주는 방법인 '빛치료(Light therapy)'가 적용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의학과 과학이 계속 발달하다보면 더욱 효과적으로 태양광을 이용하는, 다양한 치료 방법이 개발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 각주
1. 결핵균인 Mycobacterium tuberculosis의 감염이 피부에 발생하게 되면, 주로 얼굴과 목 부위에 통증을 동반하는 결정성 피부 병변을 만들게 됩니다.
2. Patients rebuilt: Dr Auguste Rollier's heliotherapeutic portraits, c.1903-1944, Tania Anne Woloshyn. Med Humanit. 2013 Jun;39(1):38-46.
3. Impact of vitamin D on infectious disease-tuberculosis-a review. Kashaf Junaid and Abdul Rehman. Clinical Nutrition Experimental. 2019 Jun, Pages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