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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Mar 15. 2022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신경과 질환

네번째 이야기: 편두통의 ‘전조증상(Aura)’이라는 단어의 어원

환절기에 다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지요?
봄이 되니 시간이 더욱 빨리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날씨가 따뜻해져서 바람이 쐬는 것이 덜 힘들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봄바람을 맞다보니 ‘바람’과 관련된 여신에 관한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산들바람과 아침의 시원한 공기를 의인화한 여신인 아우라(Aura, Αυρα)의 이름이 등장하는, 짧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아우라 여신의 조각상으로 추정되는 작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Aelous, Αἴολος)의 손자인 ‘케팔로스(Cephalus, Κέφαλος)’와 그의 아내인 아테네의 공주 ‘프로크리스(Procris, Πρόκρις)’입니다.



이 비극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 버전이 전해지지만, 가장 간결하고 잘 알려진 내용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부부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 드물게(…) 나오는 금슬이 좋은 부부 중 한 쌍으로, 로마의 유명한 시인인 오비디우스가 그의 책인 ‘The Art of Love’에도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놓았습니다. 이 부부는 서로 매우 사랑했지만, 그 사랑에 의해 생긴 ‘의심’에 의해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남편인 케팔로스는 사냥을 즐기는 건장한 청년이었고, 프로크리스는 그런 남편을 위해 자기가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받은 보물이었던 ‘표적을 반드시 맞추는 창’과 ‘사냥감을 반드시 따라잡는 사냥개’를 선물하였습니다.



케팔로스는 아내가 준 선물에 기뻐하며 사냥을 즐기고 있었는데, 사냥을 위해 뛰어다니다 땀을 잔뜩 흘린 후엔 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을 쐬며 휴식을 취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쉴 때는 바람이 불어와 자신의 땀을 날려주는 게 좋았던지, “바람(Aura-산들 바람을 의미하는 단어이자 여신의 이름)이여 내게로 오렴.” 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누군가가 프로크리스에게 ‘당신의 남편이 사냥을 나가서 Aura라는 요정을 만나서 밀회를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전하였고, 이로 인해 프로크리스는 남편이 바람을 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에 대해 직접 대화를 나눠보면 좋았겠으나,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프로크리스는 자신이 직접 남편의 부정을 확인하고자 마음먹고 몰래 사냥을 떠난 남편의 뒤를 밟기로 하였습니다.



막상 수풀 속에 숨어서 남편이 쉬는 모습을 지켜보니, 케팔로스는 정말 ‘바람’에 속삭인 것뿐이었고 요정이나 여신, 혹은 그 어떤 여성도 그의 곁에는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프로크리스는 너무 기쁘고 안심이 된 나머지 남편에게 달려가 안기려고 수풀에서 일어났는데, 그 순간 비극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수풀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케팔로스가 이것을 들짐승이 움직이며 낸 소리로 오해하여, 사냥감을 잡기 위해 수풀 쪽으로 아내가 준 창(표적을 반드시 맞춘다는 그 창)을 던지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여신의 축복을 받은 창답게 그 창은 표적을 맞추었으나, 불행히도 그가 던진 창이 꿰뚫은 것은 사냥감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였습니다.


케팔로스가 사냥감을 확인하러 수풀에 다가갔을 때, 그는 가슴에 박힌 창을 잡고 신음하는 아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By Paolo Veronese, 1580년 작품).

비통한 마음에 아내를 안고 울부짖었지만 프로크리스의 목숨을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프로크리스는 자신의 영혼이 바람에 실려 날아갈 것을 생각하며 남편의 품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에 따라서는 끝까지 남편에게 숨겨진 연인이 있다고 오해를 하여, “내가 죽더라도 그 Aura라는 이름의 얄미운 요정이 내 자리를 차지하게 하진 말아주세요.”라고 부탁을 하며 죽어간다는 결말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신 아우라의 이름이 신경과 질환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란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러나 ‘Aura’라는 단어는 상당히 흔한 신경과 질환 중 하나인 편두통(migraine)과 관련이 있습니다.

편두통은 1차성 두통의 원인 중 하나로, 구역 구토, 빛 공포증(photophobia), 소리 공포증(phonophobia)과 동반되는 반복적인 두통을 특징으로 하며, 유병률이 대략 12%(연구에 따라서는 2.6~21.7%)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각주 1).

편두통은 이름 때문에(영단어인 migraine의 라틴어 어원 조차도 ‘hemicrania-반쪽의 두개골’이란 뜻이었습니다), 무조건 한쪽 편의 머리가 아프면 ‘편두통’이라고 진단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머리가 전체적으로 아플 수도 있으며, 단순히 두통의 위치보다는 그 양상이 더 진단에 중요합니다.

그 양상이란 위에서 언급된 ‘반복적인 두통 삽화(episode)’가 나타나는 것인데, 그 두통이 4~72시간 정도로 지속되며, 중등도 이상의 두통이고, 구역/구토/빛이나 소리 공포증이 동반, 두통이 발생할 때 일상 생활을 지속하기 힘들거나 일상 생활로 인해 두통이 더 악화되는 경우, 그리고 박동성 혹은 욱신거리는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편두통일 경우에는 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에 맞는 치료를 받아야 증상 완화시키고 두통 삽화 발생 빈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양상의 두통이 자주 반복된다면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가 진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되겠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먹는 약 뿐만 아니라, 증상 조절에 도움이 되는 보툴리눔 독소(흔히 보톡스라 알려진) 주사 치료도 있고, 통증 발생의 원인이 된다고 알려진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CGRP)와 그 수용체를 표적으로 하는 단일 클론 항체 주사 치료도 개발되었기 때문에 편두통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킬 만한 방법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각주 2).

이러한 편두통 중 전조증상(Aura)이 있는 경우는 25~30% 정도이며, 전조증상은 다양한 감각 이상으로 나타납니다.
전조증상으로는 시야에 맹점(blind spot)이 발생, 지그재그선이 생김, 혹은 번쩍이는 빛이 보이는 것과 같은 시각 증상도 있고, 피로감이나 근육의 힘이 빠지는 증상, 얼굴이나 팔/다리에 저림이나 감각 저하가 발생하는 증상, 언어 이상이 발생하는 등의 다양한 증상이 있습니다.

이런 전조증상이 두통 발생하기 전에 먼저 나타나는데, 두통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전조증상만 있다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만성 편두통 환자분들에게 전조증상에 관한 질문과 설명을 드려보면 본인들이 느꼈던 이상 감각들이 전조증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워하는 분들도 종종 만나뵐 수 있습니다. 

편두통의 시각 전조증상 이미지. 출처 - http://www.healthcentral.com/condition/migraine-types


오늘 다룬 신화에서 한가지 신기한 점은, 오늘 다뤘던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이야기가 신경과 의사의 관점으로 봤을 때는 편두통에 대한 은유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남자 주인공의 이름인 케팔로스(Cephalus)는 머리를 의미하기도 해서, 머리(혹은 뇌)가 전조증상인 Aura를 느끼다가 결국 편두통 증상이 시작되어(창을 던지는 행위) 그로 인한 고통을 겪게 되는(사랑하는 아내인 프로크리스의 사망) 과정이라고 봐도 그럴 듯하게 여겨집니다.




비록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편두통 환자분들이 겪는 고통은 현대의학으로 많이 호전될 수 있으니 ‘전조증상(Aura)’라는 단어를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각주


1. Wei Z. Yeh, Leigh Blizzard, and Bruce V. Taylor. What is the actual prevalence of migraine? Brain Behav. 2018 Jun; 8(6): e00950.


2.     Diksha Mohanty, MD and Steven Lippmann, MD. CGRP Inhibitors for Migraine. Innov Clin Neurosci. 2020 Apr 1; 17(4-6): 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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