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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Aug 06. 2022

의학 용어의 기원이 된 그리스 신들의 이름 (2)

: 공포증(Phobia)의 기원인 포보스(Phobos)


어느 새 8월입니다.
개인 사정이 있어서 한참 글을 못 쓰고 있다가, 더위를 이겨보고자(...) 서늘한 공포에 관련된 글을 가져와 봤습니다.

오늘은 공포증이란 의학 용어의 기원이 된 신, 공포를 의인화한 신인 포보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포보스를 형상화한 모자이크 작품. 기원 후 4세기 경.


포보스 자체는 처음 들어보신 분들이 많겠지만, 이 신의 아버지는 상당히 유명합니다. 공포의 아버지는 전쟁의 신인 아레스(로마에서는 마르스) 입니다.

아레스 조각상. 전쟁의 신답게, 무기와 함께 늠름한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아레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앞서 말했듯이 ‘전쟁’의 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복 남매이자 마찬가지로 전쟁을 담당하고 있는 여신 아테나가 전쟁에서의 승리, 영광, 전술, 지도력과 같은 개념을 담당하는 것과 달리, 아레스는 전쟁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온갖 어두운 면들을 상징합니다.
예를 들면, 전쟁의 잔혹함, 피로 물든 전장, 학살과 같은 것들 말이죠.
어찌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전쟁의 본질에 가까운 것은 아레스일지도 모릅니다.

트로이 전쟁 중 아테나에게 지고 있는 아레스. 실제로 아레스가 편을 들었던 트로이는 아테나의 가호를 받던 그리스에게 패퇴.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영광스럽고 멋진 전쟁'의 모습과 거리가 있어서인지, 아레스는 제우스의 적자(嫡子)이자 올림포스의 12주신의 일원이라는 위치에 비하여, 신화 속에서의 활약은 별로 돋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몇 가지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들어보자면, 연인이자 불륜 관계인 아프로디테와 밀회를 나누다가 아프로디테의 남편인 헤파이스토스가 놓은 그물(…)에 사로잡혀서 공개 망신을 당한 사건이라든가, 이전 글에서 등장한 바 있던 황금양털이 아레스 신에게 바쳐졌다는 이야기,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라는 미남자에게 빠졌을 때 화가 나서 멧돼지를 보냈다든가… 와 같은 사건들이 있죠.

Alexandre Charles Guillemot, 1827년, 헤파이스토스의 황금그물에 사로 잡힌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또한, 트로이 전쟁 때 아프로디테가 지원하던 트로이의 편(파리스에게 황금사과를 받고 헬레나를 소개시켜준  것이 모든 문제의 발단)에 섰다는 이야기도 잠시 등장합니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말그대로 '사랑과 전쟁' 커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살펴보면, 아레스가 스스로 주도하는 활약보다는 연인인 아프로디테와 관련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는 식인데, 재밌는 것은 아프로디테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나름 여기저기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큐피드의 화살’ 이미지와 프시케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에로스(Eros)’, 에로스와 형제이자 ‘보답 받지 못한 사랑의 복수자’인 안테로스(Anteros), 조화를 상징하며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힘을 지닌 목걸이의 주인이었던 하르모니아(Harmonia, 테베의 건국왕인 카드모스의 부인이기도 합니다) 등이 모두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죠.

안테로스(좌), 에로스와 프시케(가운데), 그리고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우).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는 소유한 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전설이 함께 합니다.


특히 에로스와 안테로스는 에로테스(Erotes)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며 아프로디테 곁에 함께 하는 것으로 자주 묘사가 됩니다.

아프로디테의 아이들을 묘사한 카메오 작품. 에로테스(날개달린 신들)와 헤르마토프로디토스(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 사이에서 태어난, 양성을 모두 지니게 된 존재).


위에 언급한 세 명의 신들이 아프로디테가 상징하는 ‘사랑’에 더 가까운 정체성을 지녔다면, 아레스가 상징하는 ‘전쟁’의 정체성을 더 많이 타고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데이모스(Deimos, 죽음과 폭력)’와 ‘포보스(Phobos, 공포)’입니다.

데이모스와 포보스는 이름의 뜻에 걸맞게, 자신들의 아버지이자 전쟁의 신인 아레스와 함께 하며 전쟁터를 죽음과 폭력, 그리고 공포로 물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이 둘의 이미지가 전쟁과 워낙 잘 어울려서인지, 아레스의 로마식 이름이자 태양계의 4번째 행성인 ‘화성(火星)’의 영문명인 마르스(Mars)의 위성들의 이름으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화성(Mars)의 위성인 데이모스(좌)와 포보스(우).



두 형제 중 포보스는 의학 용어인 공포증(Phobia)의 어원으로도 여겨집니다.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에 ‘특정 공포증(Specific phobia)’이라는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것의 정의는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에 의해 심한 공포 및 불안이 발생하여 고통을 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어떤 상황이나 대상이 싫고 피하고 싶은 정도는 공포증이라 볼 수 없으며, 공포증의 원인에 대한 비이성적이거나 과다한, 지속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런 공포가 대상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이나 초래될 수 있는 실제적인 위험도에 비해 심각하게 나타나며(추락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아도 심각한 고소공포증이 나타나는 식으로), 이로 인해 사회적, 직업적 기능에 여러 가지 고통이나 손상을 초래하게 될 수 있습니다(예: 폐소공포증으로 인해 좁은 공간에서 작업이 불가능한 경우).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울음을 터뜨리거나 발작 반응, 혹은 주위 사람들에게 매달리는 식으로 공포증의 증상을 표출할 수 있습니다.


공포증을 일으키는 원인에 따라 세부적으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동물에 대한 공포증/자연 환경에 대한 공포/혈액이나 주사, 부상에 대한 것/폐소나 고소 공포증 같은 상황형/기타 특정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공포증 등이 있습니다.

몇 가지 좀 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보자면, 아라크네 이야기에서 나온 거미를 의미하는 어근인 ‘Arachn-‘와 phobia를 결합시키면 ‘거미공포증(arachnophobia)'이 됩니다. 그리고 광장을 의미하는 ‘agora’와 더해져 광장공포증을 의미하는 ‘agoraphobia’, 고대 그리스어로 ‘뚫는다’는 의미를 지닌 어근 ‘Trypano-‘와 결합시켜 ‘주사공포증(trypanophobia)’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집니다.



이 외에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는 식의 사회 불안을 경험한 후에 사회 생활을 회피하게 되어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인 사회 공포증(Social phobia)이라는 질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공포증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단과 치료 받아야하는 ‘질환’이므로, 공포증이 의심될 경우에는 의료 기관을 방문하여 전문 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정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과도한 공포/불안 반응을 보이는 상태를 보고 단순히 별나거나 예민한 사람 취급(혹은 놀리거나 조롱하는 반응을 보이는)하며 넘기는 것은 매우 잘못된 태도인 것이죠.


공포증의 치료 방법에는 면담 치료, 행동 치료(단계적 노출이나 홍수요법 등), 그리고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사용하는 약물 치료 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포증이 의심된다면 자책하거나 부정/회피하지 않고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 공포증의 어원이라고 생각되는 또 다른 신은, 잠의 신인 히프노스의 아들이자 악몽의 신이기도 한 포베토르(Phobetor)입니다. 꿈 속에서 새나 들짐승, 커다란 뱀 등으로 변신하여 사람들을 겁주는 역할을 한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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