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조금 일찍 가서 교실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언제나 1번으로 오는 재인이는 벌써 와서 공부하고 있고, 현민이, 문정이, 준원이도 일찍 왔다. 기말고사 이틀째라 시시껄렁한 농담도 한마디 못 붙이고 간단히 인사만 서로 나누었다. 말없이 칠판에 오늘 시험 과목을 적었다. 1교시 한국사, 2교시 자습, 3교시 수학이다.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고, 교탁 위에 어질러 놓은 것도 치웠다. 보통 때 같으면, 내가 청소를 시작하면 한둘이 빗자루 들고 같이 쓸기도 하는데 오늘은 모두 표정 없이 긴장한 얼굴이다.
8시 20분쯤 되자 아이들 자리가 거의 다 찼다. 상민이도 왔다.
오상민. 누가 말을 붙이지 않으면 하루종일 말이 없다. 내가 말을 걸어도 씨익 웃기만 할 뿐 자기 말을 좀체 내뱉지 않는다.
“오상민, 너 일본어 만점이라더라.”
학년실 내 옆자리가 3반 담임인데 과목이 일본어다. 일본어는 중간고사 없이 기말고사 한 번만 본다. 첫날 첫 시험이 일본어였다. 마칠 무렵에 벌써 결과가 나왔다. 우리 반에 오상민이 100점이라고 내게 귀띔해 주었다. 전교에 만점이 네댓 명밖에 안 되는 모양인데 그 가운데 상민이도 끼어 있었다. 상민이는 게임에 빠져 공부와 담쌓은 지 오래되었다. 바깥세상은 무관심 그 자체고 오로지 게임 세계에서 게임 캐릭터들하고만 소통하고 산다. 우리 반 아이들도 그걸 아는 터라 깊은 탄성을 질렀다. 조용하던 교실이 한순간 술렁거렸다.
“오상민, 백점 받은 비결이 뭐니? 너 혹시 게임으로 일본어 익혔니?”
나도 신기하고 궁금해서 물었다.
상민이는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고 수줍게 웃을 뿐 대답이 없다.
“그럼 뭐니? 비결을 공개해 봐.”
내가 자꾸 다그치자 못 이기는 투로 한마디 내뱉는다.
“교과서만 공부했는데.”
그러자 여기저기서 아이들 반응이 쏟아졌다.
“우와! 교과서만.”
“상민이, 정말이야?”
“그 말은 수능 만점자 인터뷰하면 항상 하는 재수 없는 말인데.”
여기서 끊어야겠다 싶어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그런데 그 비결을 같은 신인류인 성한이는 알고 있었다. 옆에 사람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슬쩍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상민이가 평소 일본 노래를 자주 들어왔다고 했다. 일본 노래 들으면서 일본말을 익혔구나.
지난주에 버스 타고 학교 오다가 버스 안에서 우리 반 준영이를 만났다. 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걸어오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호 소통이 아니라 나는 묻고 준영이는 대답하는 대화였다. 준영이도 신인류족이다. 이야기 끝에 내가 이렇게 물었다.
“그럼 너는 방학 때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집에만 박혀서 게임하고 지내도 조금도 갑갑하지 않니?”
“예. 그게 더 마음이 편해요.”
“그래도 밖에 나가 친구도 만나고 같이 피시방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하면 그것도 재미잖아?”
“모여서 노는 게 부담스러워요.”
이런 유형에 속에는 아이들이 우리 반에만 대여섯 된다. 2학년 문과 어떤 반은 한 반 전체가 신인류인가 싶을 때가 있다. 교실에 들어가 조용히 시킬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옆에 짝지하고도 말을 안 한다. 공부 시간에 내가 어떤 질문을 던져도 대답이 없다. 하도 답답해서 반장한테 물었다.
“너희 반은 쉬는 시간에도 서로 말을 안 하니?”
“네.”
반장은 참 애매한 표정으로 힘없이 대답했다.
내가 ‘신인류’라고 이름 지은 아이들에게서 발견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이들은 평화주의자들이다. 다른 친구와 붙어 싸우거나 말다툼하거나 남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남과 부딪히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남에게 별 도움을 주지도 않지만,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다.
둘째, 남의 일에 무관심이다. 아이들 속성이 친구 일에 훈수 두기 좋아한다. 그런데 이들은 간섭은커녕 관심조차 없다. 친한 친구는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신인류끼리 간간이 만나 대화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기들끼리도 학교 밖에서 따로 만나 밥을 먹거나 노래방을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셋째, 학교 공부에 별 뜻이 없고 점수와 등수에도 그다지 마음 쓰지 않는다. 세상이 아무리 경쟁 교육으로 몰아가도 경쟁과는 거리가 멀고, 남과 비교하는 것도 비교당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렇다고 학교에 와서 잠만 자거나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의욕 상실형 아이들과는 또 다르다. 자기 관심 분야엔 아주 열심이다. 상민이 같이 일본어에 빠진다든지. 지환이는 드럼에, 태양이는 기타에 푹 빠져 학예제 때 무대에 올라 멋진 연주를 한다. 찬영이는 다른 과목은 아예 팽개치고 수학과 과학만 열심히 판다. 찬영이는 생명공학자가 되고 싶으니까. 우리 반 찬영이는 사람들이 붐비는 급식실이 싫어 배고픈 걸 참고 점심을 굶는 쪽을 선택했다.
넷째,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다. 좋은 직장을 얻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망도 없고, 내 인생 목표를 정해서 계획하고 실천하는 일도 없다. 이 욕망을 갖는 순간부터 내 몸은 물론이고 마음마저 착취당한다는 사실을 직감으로 아는 것 같다. 그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골몰하고, 그 재미로 사는 듯하다.
다섯째, 해가 갈수록 이 새 종족은 기하급수로 불어나는 것 같다. 그전에도 이런 유형에 속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지만, 요즘같이 많지는 않았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부쩍 는 것 같다. 신인류족이 이렇게 대거 등장한 배경이 뭘까, 하고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코로나19, 학원뺑뺑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특히 아이들마다 하나씩 나눠준 태블릿피시가 문제라고 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굳이 친구를 찾지 않아도 조금도 심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경쟁 교육이 가장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점쳐 본다. 그렇지만 경쟁 교육을 무너뜨릴 힘도 이 신인류족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무튼 나는 이 신인류를 문제로 보지 않기로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다. 애써 바꾸어 보겠다는 마음이 없다. 그저 바라봐 주기로. 내 잣대로 재단하지 않고 내 틀에 맞추어 판단 분별하지 않기로. 다만 아주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기는 하다.
*아이들 이름은 본디 이름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