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귀천' 해설과 감상

- 인생은 아름다운 소풍

by 한현수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21』(조선일보 연재, 2008)



죽음은 돌아가는 일

'귀천(歸天)'은 하늘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이 작품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귀환인 것입니다. 화자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를 매 연마다 되풀이하며, 죽음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말을 의식처럼 반복함으로써, 스스로의 결심으로 떠남을 정리합니다.

여기서 반복은 단순한 리듬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태도를 표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 번만 말하지 않고 세 번을 거듭 말하는 것은, 죽음이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차분히 준비된 길임을 보여줍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표현하는 말(비명, 절규)이 아니라, '돌아가리라'라는 담담한 서술이 이 시의 중심이 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이슬과 함께하는 가벼운 귀환

화자는 '새벽빛'과 '이슬'을 함께 내세웁니다. 이슬은 어떤 충격에 의해 부서지는 존재가 아니라, 빛이 닿으면 조용히 스러지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죽음은 파국이나 종말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변화가 됩니다. '손에 손을 잡고'라는 말은, 죽음을 단절과 고립이 아니라 자연과 나란히 하는 동행으로 만들어, 떠남의 정서를 부드럽게 격상시키고 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노을과 함께하는 기슭에서의 놀이

여기서는 '노을빛'을 부릅니다. 노을은 끝을 알리는 빛이면서도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화자는 삶의 끝자락을 어둡게 표현하지 않고, 따뜻한 빛과 함께 '단 둘이서' 놀았다고 말합니다. 또한 '기슭'은 경계의 공간, 가장자리입니다. 가장자리는 머무름과 떠남이 맞닿는 자리이기에, 죽음은 여기서 추락이 아니라 경계의 통과로 형상화됩니다. '구름 손짓'은 하늘이 먼저 보내는 신호이므로, 떠남은 강요가 아니라 부름에 응답하는 이동으로 바뀌게 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삶은 아름다운 소풍

삶을 ‘소풍’이라 부르는 순간, 인생은 소유와 집착의 영역에서 경험과 관조의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소풍은 잠시 다녀가는 일이므로, 거기에는 ‘영원히 붙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없습니다. 대신 '끝내는 날'이라는 표현이 삶의 유한성을 또렷하게 인정하게 하고, 그 인정이 오히려 삶을 더 선명하게 만듭니다.

특히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삶 전체를 최종적으로 평가하는 말입니다. 아마도 화자 본인일 시인은 생전을 고문 후유증, 가난, 행려병자 생활 등으로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삶을 '아름다웠다'고 회고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온전히 껴안은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지극한 자기 긍정의 모습일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여행

이 작품은 죽음을 말하지만, 실은 삶을 더 또렷하게 만드는 시입니다. 이슬과 새벽빛, 노을과 기슭, 구름의 손짓 같은 이미지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것은 하나입니다. 떠남은 두려워할 추락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귀환이며, 삶은 끝내 붙들 것이 아니라 잘 다녀오는 시간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래서 이 시는 삶이 버거울 때는 '잠시 머무는 시간'이라는 거리감을 주고, 삶이 충만할 때는 '언젠가 정리해야 할 시간'이라는 겸허를 가지게 해 줍니다. 화자는 우리에게도 한 마디의 대답을 요구하는 듯합니다.

'떠나는 날, 나는 내 삶과 죽음을 어떤 말로 정리할 것인가.'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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