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섬진강1' 해설과 감상

- '후레자식'들이 마르게 할 수 없는 강

by 한현수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하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걸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4』(조선일보 연재, 2008)



가뭄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강의 성격

이 작품의 화자는 안락한 공간에서 강을 관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물어 터진 섬진강변을 직접 발로 딛고 서 있는 증언자입니다. 가뭄이 든 상황에서야말로 강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믿고, 그 본성을 독자에게 직접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 작품에서 강은 풍경이 아니라 전라도의 삶을 살리는 생명선이며, 고단한 일상을 품고도 끝내 끊어지지 않는 지속의 힘입니다.

이 시가 제시하는 이해의 실마리는 분명합니다. 자연은 여기서 '아름답다'로 끝나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정의가 무엇인지 묻는 증언대가 됩니다. 화자는 강을 둘러싼 어둠과 결핍, 그리고 누군가의 탐욕까지 함께 끌어안고, 그럼에도 마르지 않는 흐름을 통해 '역사는 쉽게 끊기지 않는다'는 확신을 세웁니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전라도의 실핏줄 - 작은 흐름들의 끈질긴 연대

도입부에서 화자는 거대한 강줄기 대신, 가느다란 개울들이 끊임없이 모여드는 모습에 주목합니다. 여기서 물길은 풍경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는 ‘혈관’입니다. 하나하나의 물줄기는 약해 보일지라도, 그 가느다란 것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전체가 살아 움직입니다. ‘퍼내도 마르지 않는다’는 것은 섬진강의 힘이 거창한 영웅적 기개가 아니라, 수많은 민초의 작은 흐름들이 합쳐진 결과물임을 보여줍니다.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하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저녁 강변의 풀꽃 - 밥과 불의 생명력

강변의 풀꽃을 묘사하는 이 대목에서 화자는 생활의 언어를 이끌어 냅니다. 하얀 꽃을 ‘쌀밥’에, 보랏빛 꽃을 ‘숯불’에 비유하는 것은 꽃을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양식과 열기로 바라보는 전라도 특유의 생활 감각입니다.

지도나 식물도감에 실리지 않는 ‘이름 없는’ 존재들은 중심에서 밀려난 소외된 이들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이야말로 어둠 속에서 스스로 등불이 되어 공간을 밝히는 주체가 됩니다.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어둠을 이겨내는 능동적 힘 - 그을린 이마 위로 켠 꽃등

화자는 어둠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풀과 꽃들이 어둠을 끌어당겨 소멸시키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고단한 노동으로 그을린 민중의 이마 위에 환한 꽃등을 달아주는 행위는, 자연이 배경에 머물지 않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어둠을 능동적으로 처리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갈증에서 비롯된 뜨거운 포옹 - 그리움의 생존학

강물이 흐르다 목이 메는 순간(가뭄)은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타자를 향한 강렬한 그리움이 발동하는 순간으로 바뀝니다. 섬진강이 다른 물줄기를 불러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껴안는 장면은 단순한 지리적 합류가 아닙니다. 그것은 생존의 절박함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연대의 몸짓입니다. 고통의 정점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이 연합은 결코 깨뜨릴 수 없는 강한 결속력을 보여줍니다.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걸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산과 강의 거대한 화답 - 지리산과 무등산의 대화

이어 강은 지리산의 몸을 끼고돌아 나아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나 장관이 아니라 기대는 방식입니다. 강은 홀로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산의 투박하고 묵직한 존재감에 기대어 흐르며 자기의 길을 유지합니다. 자연의 관계를 이렇게 그려 놓음으로써, 화자는 '강이 마르지 않는다'는 말의 근거를 더 확실히 합니다. 지속은 혼자의 힘이 아니라 서로 기대는 구조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이제 지리산은 저문 물로 얼굴을 씻고 일어서며 호탕하게 웃습니다. 그리고 무등산에게 강의 건재함을 확인하고, 무등산은 노을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합니다. 이는 화자의 주관적 주장을 넘어, 산과 강이라는 거대한 자연물들이 서로 증언자가 되어 '강은 마르지 않는다'는 진리를 선포하는 대화극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자연의 거대한 질서와 합치되는 장엄한 순간입니다.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현실을 향한 날 선 고발

그리고 마지막에는 거친 욕설에 가까운 언어로, 강물을 퍼 가는 자들을 정면으로 꾸짖습니다. 이 거친 말은 품위를 포기한 감정이 아니라, 강을 예쁘게만 소비하려는 태도, 혹은 현실의 수탈을 낭만으로 덮으려는 시선을 단칼에 끊는 최종 장치입니다. 자연을 말하면서도 끝내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화자의 결기가 여기서 가장 날카롭게 드러납니다.



지역 감각과 생활 언어로 형상화한 사회적 발언

이 작품은 자연과 농촌을 관념적 낭만의 배경에서 건져내어, 생생한 생활의 언어와 지역적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성취를 보여줍니다.

첫째, 이 시는 서정적 감수성을 삶의 윤리와 사회적 현실의 장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자연을 밥과 불로 인식하는 시선은 관찰을 넘어선 생존의 서정을 구현했습니다.

둘째, '지도 바깥'의 무명한 존재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움으로써, 주변부의 힘이 어떻게 세상을 지탱하는지를 당당하게 증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산과 강의 대화 구조와 날 선 고발의 언어는 이 작품을 단순한 자연시가 아닌, 생태적 자각과 민중적 의지가 결합한 독보적인 서정시의 위치에 올려놓았습니다.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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