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절벽' 해설과 감상

- 세계가 현실로 굳지 않을 때

by 한현수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4』(조선일보 연재, 2008)



[이해를 위한 비유]

짙은 안개 속에서는 웅덩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저 앞에서 고인 물 비린내가 먼저 밀려옵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다는 것은 느끼지만, 그것이 디뎌도 되는 길인지 빠져들게 되는 웅덩이인지 끝내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발을 내딛기가 불안해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진의 초점이 완전히 흐려져, 분명히 사물이 찍혀 있는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는 순간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현실을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단순히 보는 일이 아니라, 내가 보는 것이 이거다 하고 마음을 딱 붙이는 일입니다. 그 붙잡힘이 있어야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여기다'라는 확신도 생깁니다. 그런데 그 붙잡힘이 사라지면, 사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현실로 굳지 않습니다. 눈앞에 있어도 어딘가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나 역시 그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없어 안쪽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이 시의 화자에게 세계가 바로 그런 안개 속 풍경입니다. 장자가 말한 것처럼,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다른 현실 속의 꿈속인지, 그런 꿈속이 아닌 진짜의 현실인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과도 같습니다. 세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현실로 단단히 굳지 못한 채 떠 있는 상태입니다.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꽃이 더 이상 ‘저기 있는 대상’으로 확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인식의 절벽 위에 선 화자

이 시에서 대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리적 어둠 때문이 아니라, 세계를 현실로 붙잡을 수 없는 화자의 심리적 고립 때문입니다.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꽃이 더 이상 눈앞의 확실한 대상으로 성립하지 않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파는 묘혈조차 또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현실이 바깥에서 단단하게 서 있지 않으니, 눈은 무엇 하나를 붙잡지 못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대신 향기만은 더 짙어집니다. 눈으로는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는데, 냄새는 계속 '여기 있다'고 말합니다. 화자는 ‘없다’고도 ‘있다’고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그 사이에 매달립니다. 이때 절벽은 바깥 풍경이 아니라, 현실과 자신 사이의 연결이 끊어진 인식의 끝입니다. 묘혈을 파고 들어가는 행위는 세계 속으로 나아가는 대신, 이 불안을 피해 자기 안으로 꺼져 들어가려는 몸짓입니다.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꽃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어둡다는 말, 가려졌다는 말이 아니라, 세계를 눈으로 확정하는 힘이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곧 '꽃이 향기롭다'가 이어집니다. 대상은 보이지 않는데 존재감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화자는 현실을 붙잡지 못한 채 기척 속에만 놓여 있습니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향기가 '만개'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 공간을 가득 채운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없는 것 같은데 계속 느껴져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태입니다. 불안합니다. 그래서 화자는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안으로 숨으려 합니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그런데 묘혈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숨으려는 자리마저 현실의 공간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 캄캄한 빈자리로 내려갑니다. 바깥에서 해결할 길이 없으니 안쪽으로 침잠합니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화자가 눕는 것은 휴식이 아니라 감각을 끊어 버리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향기는 다시 살아나 화자를 깨웁니다. 숨었는데도 기척이 따라 들어옵니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잊어버리고 재차'라는 말은 이 행위가 선택이 아니라 반복 반응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향기가 강해질수록 화자는 또 묘혈을 팝니다. 감각의 압력이 행동을 자동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화자는 꽃을 확인하려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꽃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세계를 눈으로 붙잡아 '저게 저것이다' 하고 확정하는 힘이 무너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화자에게 남아 있는 것은 눈앞의 실체가 아니라, 향기라는 기척뿐입니다. 실체는 보이지 않고 기척만 계속 밀려오니, 앞으로 나아가 확인하기보다 그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후퇴가 먼저 일어납니다.

그래서 화자는 꽃을 ‘깜빡’ 잊은 채 묘혈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여기서 '깜빡'은 단순한 망각이 아닙니다. 현실을 붙잡으려는 의식이 순간적으로 완전히 꺼져버린 상태입니다. 앞에서 화자는 그나마 향기를 의식하면서 묘혈을 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꽃이 있다는 것조차 잠깐 놓쳐버린 채 묘혈 속으로 들어갑니다. 현실 확정 능력의 붕괴가 그만큼 깊어졌다는 뜻입니다.

현실을 붙잡는 힘이 잠깐 느슨해진 틈에, 화자는 세계에서 물러나듯 자기 안의 공허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향기는 이미 화자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기척이기 때문에, 숨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묘혈 속으로 들어갈수록 세계와의 연결만 더 약해지고, 향기와 자기 의식만 또렷하게 남습니다. 그 결과 망각은 이루어지지 않고, 화자는 밖으로 벗어나는 대신 자기 안의 공허 속으로 더 깊이 말려 들어가게 됩니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나는 정말 눕는다'의 '정말'은 이 시에서 가장 인간적인 순간입니다. 화자는 이미 한 번 누웠습니다. 그런데 향기가 다시 살아나 다시 묘혈을 팠고, 이제 다시 눕습니다. '정말'은 그 반복 끝에 나온 말입니다. 이번에는 진짜로, 이번에는 완전히 끝내겠다는 자기 다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 다짐 직후에 향기는 또 피어오릅니다. '정말'이라는 말의 간절함이 클수록,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의 무게도 커집니다.



공간이 아닌 인식의 문제

이 작품에서 '절벽'은 물리적 지형이 아니라, 세계를 현실로 확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위태로운 내면 지도입니다. 이상은 시각적 확인이 불가능해진 자리에서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인 불안을 '보이지 않는 꽃'과 '만개한 향기'라는 역설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했습니다.

화자가 반복해서 묘혈을 파는 행위는 허무를 설명하는 수사가 아니라, 발 디딜 곳 없는 현실에서 자아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비극적인 반응입니다.

이 시는 근대적 자아가 마주한 인식의 파산을 가장 전위적인 언어로 기록했는데, 죽음조차 안식이 되지 못하는 현대인의 존재론적 고독을 아름답고도 서늘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비평 노트] 새로운 지평 - '현실 확정 능력의 상실'

1. 공간에서 인식으로

기존 해설들은 ‘절벽’을 대개 외부 환경으로 잡습니다. 막다른 자리, 어두운 시대의 압박, 더는 물러설 곳 없는 처지 같은 공간·상황의 상징으로 봅니다.
나는 절벽을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인식의 임계점으로 보았습니다. 세계를 객관적으로 붙잡아 고정하는 힘이 멈춘 자리, 즉 '현실이 현실로 굳지 못하는 순간' 자체가 절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의 무대는 바깥 풍경이 아니라, 화자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감각과 의식의 내부가 됩니다.

2. 시각을 '현실 확정의 기능'으로

다른 해설들은 '꽃이 보이지 않는다'를 어둠, 차단, 부재, 혹은 보이지 않는 이상에 대한 갈망으로 풀이하곤 합니다.
나는 시각을 대상을 붙잡고 이름을 붙여 ‘이것이 이것이다’라고 확정하는 힘으로 보았습니다. 시각의 붕괴는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세계와 나를 이어 주는 연결 고리를 잡지 못하는 사건입니다. '사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현실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관점이 들어와야, ‘꽃’과 ‘묘혈’이 함께 보이지 않는 설정이 더 이상 기괴한 장치가 아니라 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논리가 됩니다

3. '묘혈'을 수동적 도피가 아니라 자발적 유폐로

기존 해설은 묘혈을 파고 눕는 행위를 죽음의 욕망이나 허무주의적 포기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묘혈을, 현실로 굳지 못하고 떠도는 바깥 세계에서 벗어나 차라리 확정 가능한 어둠(자기 안의 빈자리)으로 들어가려는 방어 기제로 보았습니다. 묘혈은 죽음 그 자체라기보다, 인식이 흔들릴 때 그 흔들림을 멈추기 위해 화자가 스스로 마련한 ‘암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묘혈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구절은 도피의 실패가 아니라, 인식 붕괴가 이미 깊어졌다는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4. '향기'를 감각의 잔상, 존재의 기척으로

다른 해설은 시각과 후각의 대비가 만드는 초현실적 분위기, 감각 전이의 효과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나는 향기를, 실체는 사라졌는데 끝내 남아 자아를 붙드는 기척으로 읽었습니다. 시각이 꺼진 자리에서 후각만 과잉으로 남을 때, 향기는 위안이 아니라 추적이 됩니다. 화자는 숨으려 하지만 향기는 따라 들어오고, 그 실패가 '잊어버리고 재차'라는 반복 반응을 낳는 것입니다. 결국 이 시의 공포는 ‘부재’가 아니라, 확정되지 않는데도 계속 남는 존재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작품을 난해한 모더니즘 시로서가 아니라, 독자가 잡을 수 있는 독해물로 보고 해설했습니다. ‘안개 속 풍경’, ‘초점 나간 사진’, ‘꿈과 현실의 경계’ 같은 비유는 장식이 아니라, '현실 확정'이라는 개념을 독자가 체감하도록 한 손잡이입니다.

이 시를 기괴한 초현실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실재감의 상실과도 맞닿아 있는 현대의 시로 읽었습니다.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

네이버블로그 현대시 전문 해설과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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