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참회록(懺悔錄)' 해설과 감상

- 비극적 결단의 뒷모습

by 한현수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겟세마네의 밤을 지나는 지식인 청년의 거울

이 시는 1942년, 윤동주가 일본유학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일본식 성을 가져야 했던 '창씨개명'의 치욕적인 역사의 문턱에서 쓴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거울을 닦는 행위’와 그 끝에 마주하게 되는 ‘뒷모습’에 있습니다. 이 시는 제목처럼 단순히 과거를 후회하는 자책의 기록이 아닙니다. 화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 민족의 역사적 부채감을 응시하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모색합니다.

마치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며 자신의 운명을 수용한 예수의 모습처럼, 시인이 자신의 비극적 소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비극적 결단’의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 참고)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유물 속에 갇힌 부끄러운 초상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은 망해 버린 왕조의 흔적, 즉 욕된 역사를 상징할 것입니다. 그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화자는 깊은 수치심을 느낍니다(욕될까). 여기서의 ‘나’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 박제된 유물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화자에게 씻을 수 없는 빚이자 부끄러움이라는 자각입니다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스물네 해에 대한 참회

화자는 만 24년 1개월이라는 자신의 삶을 단 한 줄의 고백으로 요약합니다.

'만 나이'를 사용해 생의 길이를 월 단위까지 정밀하게 말하고 있는것은, 그만큼 자신의 삶을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되돌아보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렇다 할 저항이나 실천 없이 무기력하게 생존해 온 지난날에 대해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라고 묻는 것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처절한 자기 부정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묻는 자기 성찰의 행위일 것입니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끊임없이 갱신될 성찰의 고리

화자는 미래의 시점에서 이러한 상태의 오늘을 다시 참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훗날 해방의 날(즐거운 날)이 왔을 때, 지금 이 순간의 고백조차 '왜 그 젊은 나이에 행동하지 못하고 참회만 했는가'라며 부끄러워하게 되리라고 예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순히 해방 후에 쓰게 될 참회에 대한 예상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닐 듯합니다. 실천 없는 참회라면 한 번으로 끝날 수 없고, 죽는 날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느껴집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밤의 시련 속에서 행하는 정화의 의례

화자가 거울을 닦는 '밤'은 일제 치하의 어두운 현실이자, 진실한 자아와 대면할 수 있는 고독한 시간입니다. 손바닥 발바닥이 닳도록 거울을 닦는 행위는 단순히 과거를 씻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삶이라면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는 참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회적 현실 속에서 앞으로의 자신이 가져야 할 모습을 정립하려는 처절한 모색입니다.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비극적 소명을 향한 고독한 발걸음

그렇게 밤새 닦아낸 끝에 거울에 나타난 것, 자신이 가져야 할 모습은, 운석 아래를 홀로 걸어가는 '뒷모양'입니다. '운석'은 희생과 소멸을, '뒷모습'은 그것을 향해 가는 화자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일 것입니다.

이는 화자가 이제 고뇌의 단계를 끝내고 실천의 길로 들어섰음을 보여줍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인 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결국 화자는 거울을 통해 자신이 걸어가야 할 비극적인(슬픈 사람),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앞날'을 목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동력으로 삼은 위대한 결단

이 작품은 지식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형태의 '비극적 수용'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단순히 부끄러워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부끄러움을 닦아내고 자신이 걸어가야 할 가시밭길을 스스로 찾아 확인합니다.

거울 속에 보이는 자신의 미래 '뒷모습'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걸음을 옮기려는 시인의 의지는, 암흑의 시대에 인간이 지킬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윤리적 지표가 됩니다. 자신의 삶을 제물로 바쳐 역사의 녹을 닦아내려 했던 이 시는, 부끄러움을 넘어 높은 윤리적 차원에 도달하려고 했던 고결한 인간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학적 성취라고 할 것입니다.



[비평 노트]

1. 밤마다 거울을 닦는 행위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처럼 처절한 자기 정화를 통해 비극적 운명을 수용하는 '성스러운 결단'의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이 잔을 거두어 달라'는 인간적 공포를 기도로 이겨낸 예수처럼, 화자 역시 손바닥과 발바닥이 닳도록 자신을 연마함으로써 피할 수 없는 십자가(소명)를 기꺼이 짊어지는 종교적 숭고함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2. 그래서 '슬픈 사람의 뒷모습'은 정지된 비극의 자화상이 아니라, 소명을 향해 묵묵히 내딛는 비극적 결단, '앞날의 행보'가 되는 것입니다.

3. 역사와 자아를 향한 인간적인 '원망'을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시인이 도달한 도덕적 결단에 입체적인 생명력과 진정성을 부여했습니다.

망한 왕조의 유물을 물려받은 수치심과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원망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했기에, 그 고통의 끝에서 길어 올린 '부끄러움'은 단순히 자책에 머물지 않고 자아를 갱신하는 가장 뜨거운 윤리적 에너지로 승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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