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재가 존재를 받치는 역설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이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 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을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죽은 것이 산 것을 세우는 역설
쓰러질 듯하다가 다시 일어섰을 때, 나를 붙잡아 준 것은 죽은 아버지였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럴 수 없었지만, 내 자식들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누구 덕분이라고 느끼지 않아도 좋으니, 쓰러질 때마다 그냥 벌떡벌떡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쓰러진 나무를 다시 심고, 죽은 나무로 만든 각목을 곁에 세워주는 장면에서 시는 시작됩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지만, 화자는 이 지점에서 삶의 서늘하고도 따뜻한 진실 하나를 길어 올립니다. 살아 있는 나무가 이미 생명을 다한 존재에 기대어 자란다는 사실, 그리고 그 버팀목이 삭아 사라진 뒤에야 나무가 비로소 홀로 서게 된다는 관찰이 시 전체를 지탱하는 든든한 축이 됩니다.
‘버팀목’이라는 소재는 시가 전개됨에 따라 눈에 보이는 물리적 사물에서, 화자의 내면을 지탱하는 아버지와 이웃들로, 그리고 마침내 화자 자신이 도달해야 할 윤리적 지향으로 그 의미가 조용히 확장됩니다.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죽음에 빚진 채 시작되는 생명
이 시는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다'는 선명한 문장으로 삶과 죽음을 한자리에 나란히 놓습니다. 화자는 이 기댐을 두고 '죽음에 빚진 삶'이라 정의합니다. 여기서 '빚'이란 단순히 의존하는 상태를 넘어, 언젠가는 갚아야 할 무게가 실린 관계를 뜻합니다.
생명은 그 무거운 부채감을 안고 싹을 틔우며, 마침내 꽃을 피워 세상에 흩뿌립니다. 이 성장의 과정 자체가 죽음에 대한 응답이며, 먼저 간 존재가 내어준 자리에 대한 조용한 보답인 셈입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이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뒤에 더 강해지는 것
화자의 시선은 버팀목이 삭아 없어지는 소멸의 과정으로 나아갑니다. 나무가 꽃을 피우는 동안 버팀목은 서서히 형체를 잃어갑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일은 그 이후에 벌어집니다. 물리적 지지대가 사라졌음에도 나무는 거센 바람에 굴하지 않습니다. 화자는 그 이유를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버팀목의 힘은 그것이 존재할 때가 아니라, 소멸하여 나무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는 뿌리'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사라지는 것은 허무한 소멸이 아니라, 존재 방식을 바꾸어 영원히 깃드는 일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 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손끝에서 만져지는 그리운 존재들
나무에서 발견한 진실은 이제 화자의 삶으로 내려와 구체적인 온기를 얻습니다. '허위허위'라는 시어는 화자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아슬아슬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렇게 흔들리며 길을 가던 화자가 문득 손을 뻗었을 때, 거기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이웃들이 만져집니다. 버팀목은 이제 단순한 나무 조각이 아니라, 화자의 삶을 묵묵히 떠받쳐 온 모든 사랑의 총체로 다가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끝에 닿는 그 단단한 감촉은 이 시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만드는 지점입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을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한 삶
마지막에 이르러 화자는 받은 사랑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윤리적 자각에 도달합니다. 지금 내가 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이유가, 뒷날 누군가에게 기꺼이 삭아 없어질 버팀목이 되기 위한 준비일 수 있다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화자는 이를 확신이나 선언이 아니라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으로 갈무리합니다. 이러한 겸손한 태도가 오히려 독자에게 더 깊은 여운과 성찰의 공간을 열어줍니다.
소멸과 지속의 아름다운 순환
이 작품은 생태적 관찰에서 출발하여 개인의 그리움을 거쳐 삶의 지향점으로 나아가는 튼튼한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죽음이 삶을 가능하게 하고, 부재가 오히려 존재를 더 단단하게 지탱한다는 역설을 관념이 아닌 '손끝의 촉각'으로 전달한 점이 탁월합니다.
특히 이미 부재하는 아버지를 삶의 고비마다 만져보는 장면은 어떤 긴 설명보다 강력한 위로를 건넵니다. 이 작품은 받음과 줌, 소멸과 지속의 순환을 가장 따뜻하고 섬세하게 형상화하여, 우리 삶이 결코 고립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 낸 한국 현대시의 소중한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비평 노트]
1. 의미의 단계적 확장
'버팀목'이라는 소재가 물리적 지지대 → 죽음의 은유 → 윤리적 책임의 매개체로 전이되는 3단계 의미 구조에 주목하였습니다.
2. 부재의 내면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다'는 구절을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타인의 희생이 주체 내면의 동력으로 치환되는 결정적 순간으로 해석하였습니다.
3. 시어의 질감
'허위허위'라는 시어에 담긴 삶의 고단함을 포착하여, 시의 정서적 깊이를 구체화하였습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브런치스토리 비회원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에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