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 '정릉 살면서' 해설과 감상

- 가난한 육신, 자연의 위로와 치유

by 한현수

솔잎 사이사이

아주 빗질이 잘된 바람이

내 뇌혈관에 새로 닿아 와서는

그동안 허술했던

목숨의 운영을 잘해 보라 일러 주고 있고…


살 끝에는 온통

금싸라기 햇빛이

내 잘못 살아온 서른여섯 해를

덮어서 쓰다듬어 주고 있고…


그뿐인가,

시름으로 고인

내 간장(肝臟) 안 웅덩이를

세월의 동생 실개천이

말갛게 씻어 주며 흐르고 있고…


친구여,

사람들이 돌아보지도 않는

이 눈물 나게 넘치는 자산(資産)을

혼자 아껴서 곱게 가지리로다.



상처 입은 삶을 다독여 깨우는 자연의 손길

난치병으로 전원생활을 하는 분들의 삶이 방송에 나오곤 합니다.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고 갔을 텐데, 살다 보면 자연이 주는 편안함, 푸근함에 더 빠져 행복해 합니다.

자연이 주는 치유력은 어떤 과학적 요인보다도, 이런 심리적, 정서적 측면에서 더 발휘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은 서울 정릉의 소박한 생활 터전에서 화자가 자연과 마주하며 지친 삶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담은 시입니다. 화자는 자신의 지난 세월을 '허술하고 잘못 살아온 것'이라 여기는데, 그는 지금 몸과 마음에 깊은 피로와 시름을 안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이해하는 실마리는 자연이 단순한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솔잎 사이의 바람, 살갗에 내려앉는 햇빛, 쉬지 않고 흐르는 실개천은 모두 화자의 몸 구석구석에 직접 파고들어 치유하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자연은 화자의 허물을 심판하지 않고, 다만 어루만지고 씻어 주고 일으켜 세웁니다.



솔잎 사이사이

아주 빗질이 잘된 바람이

내 뇌혈관에 새로 닿아 와서는

그동안 허술했던

목숨의 운영을 잘해 보라 일러 주고 있고 …


바람의 각성 — 정갈한 손길이 뇌혈관까지 닿아

솔잎 사이를 통과한 바람은 거칠거나 어지러운 기운이 아닙니다. 화자는 이를 '아주 빗질이 잘된 바람'이라 부르는데, 솔잎들 사이에서 걸러지고 정돈된 그 바람은 화자의 피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허술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뇌혈관, 그 병든 자리까지 새로 닿아 옵니다.

거기서 바람은 조용히 타이릅니다. 그동안 무질서하게 방치했던 삶을, 이제부터라도 정성껏 꾸려 보라고. '허술했던 목숨의 운영'이라는 고백은 화자 스스로 지난날의 삶이 충실하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말입니다. 자연이 교사가 되어 가르침을 건네고, 화자는 그 앞에 겸허히 귀를 기울입니다.



살 끝에는 온통

금싸라기 햇빛이

내 잘못 살아온 서른여섯 해를

덮어서 쓰다듬어 주고 있고…


햇빛의 위로 — 잘못 살아온 세월을 덮는 금빛 손길

햇빛이 위로의 매개체로 등장합니다. '살 끝에 온통 금싸라기 햇빛'이 내려앉는다는 표현에서, 화자는 살갗으로 느끼는 햇살의 감촉을 귀한 금 알갱이에 빗댑니다. 화자는 자신이 보낸 서른여섯 해를 '잘못 살아온 시간'이라 부르며 자책하지만, 이 햇빛은 그 삶을 꾸짖거나 심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아픈 세월을 따뜻하게 덮어 주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줍니다.

자책이 아닌 포용, 단죄가 아닌 위무(慰撫)입니다. 햇빛은 죄책감과 후회로 얼룩진 화자의 영혼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해 주는 자애로운 손길로 이 시에서 형상화됩니다. '서른여섯 해'라는 구체적 숫자는 이 고백이 막연한 자책이 아니라 삶 전체를 걸고 하는 진지한 성찰임을 느끼게 합니다.



그뿐인가,

시름으로 고인

내 간장(肝臟) 안 웅덩이를

세월의 동생 실개천이

말갛게 씻어 주며 흐르고 있고…


실개천의 정화 — 시름의 웅덩이를 말갛게 씻어 내며

이번에는 물의 이미지입니다. 오래도록 쌓인 근심은 화자의 간장(肝臟) 속에 웅덩이처럼 고여 있습니다. 간(肝)이 슬픔과 한의 자리로 여겨진 우리 전통 정서를 이어받은 표현입니다.

이 정체된 고통을 씻어 주는 것은 '세월의 동생'이라 불리는 실개천입니다. 세월보다 작고 가냘프지만, 세월을 닮아 쉬지 않고 흐른다는 점에서 실개천은 세월의 진정한 동생입니다. 거대하거나 요란하지 않아도, 그 소박하고 끊임없는 흐름이 화자의 내면에 고착된 시름을 말갛게 닦아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상처 또한 서서히 씻겨 나갈 수 있음을, 이 장면은 조용히 증명합니다.



친구여,

사람들이 돌아보지도 않는

이 눈물 나게 넘치는 자산(資産)을

혼자 아껴서 곱게 가지리로다.


고독한 선언 — 눈물 나게 넘치는 자산을 혼자 간직하리

'친구여'라는 호칭은 따뜻한 말 건네기라기보다, 진정으로 이 가치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고독의 반어적 표현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화자는 이 눈물 나게 넘치는 자산을 혼자서 조용히 간직하겠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이릅니다.

사람들이 눈여겨보지도 않는 자연의 은혜를, 화자는 '눈물 나게 넘치는 자산'이라 명명합니다. 돈도 명예도 아닌, 바람과 햇빛과 물소리처럼 늘 곁에 있으나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생명의 가치입니다. '혼자 아껴서 곱게 가지리로다'라는 결말은 쓸쓸하면서도 의연합니다. 남들이 몰라주더라도 자연이 건네는 이 벅찬 위로를 조용히, 혼자서, 소중히 품겠다는 단단한 내면의 선언입니다.



가난한 삶 속에서 길어 올린 눈물겨운 풍요

이 작품의 문학적 가치는 평범한 자연물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생명력을 회복하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 데 있습니다. 시인은 거창한 사상을 설파하는 대신, '뇌혈관'이나 '간장' 같은 구체적인 신체 언어를 사용하여 자연의 위로가 관념이 아닌 실제의 체험임을 강조했습니다.

겉보기에는 보잘것없고 가난한 삶일지라도, 마음의 결을 열어 자연과 합일될 때 그 생은 이미 눈물겨울 만큼 풍요롭습니다. 물질 중심의 세상에서 우리가 정말로 '잘 운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깊은 울림을 남기는 시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브런치스토리 비회원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에 다 모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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