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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현수 Aug 24. 2024

<우리 시 다시 읽기> 황동규, '즐거운 편지'

'나쁜 남자 콤플렉스'의 '그대'

- 1 -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 2 -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총 2연으로 이루어진 산문시로, 간절하고도 변함없는 사랑에 대한 고백적인 정서를 노래한 작품이다. 황동규의 초기 작품인 이 시는 작가가 고등학교 3학년인 18세 때 연상의 여성을 사모했던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여러 영화의 모티프가 되는 등 지금도 널리 애송되고 있는 시이다.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인한 젊은 날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서정적인 어조로 형상화하여 낭만적이고 우수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

 -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아무도 언급하지 않지만,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화자가, ‘내가 지금 나쁜 남자 콤플렉스에 빠진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나쁜 남자 콤플렉스’라는 개념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따져 보니,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보입니다.

1. ‘그대를 생각함’이 ‘사소한 일’이라고 합니다. 누가 ‘그대를 생각함’을 사소하다고 여기는 걸까요? 많은 해설들이 화자가 자신의 사랑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이, 자신의 깊은 감정을 스스로 ‘사소’하다고 표현해서 얻을 효과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비유되는 ‘해’와 ‘바람’도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입니다. ‘그대’의 관점인 것이죠. 당연히 이 ‘사소’함은, ‘그대’가 내 마음을 그렇게 여길 거라는 화자의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2. 화자는 ‘그대’가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그대를 불러’ 본다고 합니다. 그 ‘괴로움’이 내가 알기 어려운 ‘그대’의 일상적 삶의 문제가 아닐 것은 분명합니다. 당연히 ‘나쁜 남자’와의 사랑으로 고통 받을 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3. 연인이 없는 ‘그대’에 대한 짝사랑의 해결책은, 용기이지 한없는 ‘기다림’이 아닙니다. 화자가 ‘기다림’을 택한 것은, '그대'가 나쁜 남자와의 관계에서 벗어나거나, 내 사랑의 깊이와 진정성을 깨닫고 돌아올 때를 생각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그대'의 행동과 화자의 감정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합니다.


1연

고백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대’는 화자의 짝사랑을 눈치 채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변에 멋진 남자들이 넘쳐나는 ‘그대’에게, 이 순진해 보이는 소년의 짝사랑은(내 그대를 생각함은) 그저 흔한 일인 것을(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화자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대’의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화자의 학교선배이거나 동네 형들일 것입니다. 화자가 잘 아는 그들은 ‘나쁜 남자’입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연적(戀敵)들 늘 그렇게 평가하 마련인 사랑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화자는 ‘그대’와 ‘나쁜’ 그들과의 관계가 ‘언젠가 그대’의 ‘한없이 괴로움’으로 끝나리라 생각합니다.

하찮게 여겼지만 변함이 없었던 ‘내’ 사랑은(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때 비로소 ‘그대’에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그대를 불러보리라).


2연

그런데 첫사랑을 경험하고 있을 듯한 이 젊은 청년이, 짝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의외로 꽤 성숙합니다.

대부분의 짝사랑은 고백하는 순간이 곧 파탄의 순간입니다. ‘사소’하게 여겨지고 있는 사랑이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화자는 이미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백보다는 ‘그대’의 ‘괴로움’까지 한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길을 택했습니다(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

대부분의 해설이 이 구절을 화자의 무조건적인 ‘인내와 헌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앞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의 답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 바꾸어버린’이라는 시구는, 이 사랑의 방법이 화자의 의도적 선택이었음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짝사랑과 고백의 운명을 알고 있는 화자는, 이 사랑을 ‘기다림’이라는 방법으로써 지속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까닭은’에 ‘진실로 진실로’라는 수식어가 반복 강조되고 있는 것은, ‘그대’에 대한 화자의 사랑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라기보다, 화자의 의지로 이 사랑을 지속하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이 사랑이 힘겹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오늘 목격한 ‘그대’의 모습이 견디기 어려운지도 모릅니다(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화자는 이 사랑이 영원하지는 않겠다는 것을 느낍니다(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까지는 내 사랑의 진실성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합니다(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때까지 이 사랑은, 이러한 고통이 잊혀지기도 하고(눈이 그치고) 기쁠 때도 있고(꽃이 피어나고) 서글퍼지기도 하고(낙엽이 떨어지고) 또 다시 고통을 겪게 되기도(눈이 퍼붓고) 할 것입니다.


1연에서 화자는 사랑의 번뇌 가운데서도, ‘그대’에 대한 ‘내’ 사랑의 진실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2연은 좀 다릅니다. 사랑이라는 감성적 현상을 대하는 이 젊은이의 시각과 태도는 자못 이성적입니다. 여유와 자신감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사람과 사랑은 변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때까지는 고통과 기쁨이 교차하는 지금 이 사랑의 기다림을 유지해 나갈 거라고 하고 있으니까요. 이것이 이 작품의 주제일 것입니다.


* 내 글을, ‘국민연애시’라고 평가 받는 이 작품에 대한 폄훼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황동규 시인이 뛰어난 능력으로, 수많은 문학작품이나 영화, 현실 속 상담의 모티프였던 초보편적 소재 ‘나쁜 남자 콤플렉스’를 형상화했기 때문에,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탼생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 제목 ‘즐거운 편지’의 ‘즐거운’을 생각해 보다가,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의 ‘실연의 달콤함’이라는 명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작품 속 화자가 ‘언젠가 그칠’ 줄 믿으면서도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리면서까지 이 사랑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그가 이미 고통과 기쁨이 교차하는 사랑의 묘미(실연의 달콤함)를 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즐거운’은, 다른 해설들이 말하는 ‘반어’(하고 싶은 말을 반대로 표현한 것)가 아니라, 차라리 ‘역설’(말이 되지 않는 듯하지만 생각해 보면 진실이 담겨 있는 것)에 가까운 듯합니다.

* 해설마다 ‘18살짜리 고등학생이 연상의 대학생에게 보낸 시’로 시작합니다. 그런 선입으로 보면, 결론은 늘 ‘순수한 젊은이의 간절하고도 변함없는 사랑 고백’이라는 순진한 주제로 귀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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