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식민지 지식인의 내적 고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부끄러움 없는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주제로 한 윤동주의 대표작. 간결한 언어 속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라는 구절이 비상한 긴장감을 띠고 한 젊은이의 정직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 김흥규, '한국 현대시를 찾아서' -
자신의 꿈을 말할 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보통 '무엇이 될 것인가'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은 대체로, 자신의 가능성 내에서 권력과 부를 가장 많이 획득할 수 있는 직업이 됩니다. '어떤 사람, 어떤 삶'을 고민하지 않고 '무엇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만을 추구하다 보니, 판검사가 권력의 주구 노릇을 하다가 망신하고, 의사가 생명줄보다 돈줄을 움켜잡고 있다가 멸시를 당하고, 대통령이 권력을 향유하는 일에 취해 있다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무엇'보다 '어떤 삶'이 먼저라야 합니다. 그래서 정의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판검사를 선택해야 하고, 연약한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넘쳐서 의사를 꿈 꿔야 하고, 국민들의 삶의 문제 해결에 매달리다 보니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삶'을 고민하는 사람은 결코 나쁜 '무엇'이 될 수 없습니다.
윤동주는 누구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던 시인입니다. 그리고 그 '어떻게'는 정의와 사랑이었습니다. '서시'는 이러한 윤동주의 올곧고 아름다운 삶의 자세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화자가 추구하는 삶은 '부끄러움이 없는 삶'입니다. 절대자 또는 최고의 도덕적 가치를 뜻할 '하늘'을 향해, 조그만(한 점)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을 삶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아주 미세한(잎새에 이는) 양심의 거리낌(바람)에도 견딜 수가 없습니다(괴로워했다).
'부끄럼'은 화자가 내면으로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고 남의 평가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괴로워했다'는 온전히 화자의 내적 감정을 표현하는 시어입니다. 남의 평가 이전에, 화자 자신의 양심이 '부끄럼'의 판단 기준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절대적 가치에 대한 화자의 순수한 열정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별'은 '순수한 이상이나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입니다. 그러니 일반적 해설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순수한 이상을 추구하는 자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윤동주의 시에 '별'이 자주 등장하고, '노래'가 흔히 '시'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생각해 보면, 이 구절은 '순수한 시인의 마음으로'로도 해석이 가능할 듯싶습니다.
'죽어 가는 것'은 연약한 생명을, '모든'은 사랑의 보편성을 의미할 것입니다. 화자가 추구하는 도덕적 가치의 바탕이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한테 주어진 길'의 구체척 의미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저 시 전편을 통해 '연약한 생명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절대적 가치의 추구'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담담한 이 결단 뒤에, 윤동주는 그의 시와 행적을 통해, 일제 치하 우리 민족에 대한 그의 사랑과 희생의 길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보통 '오늘 밤'은 화자가 살고 있는 일제 치하의 어두운 현실을, '별'은 화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스치는 바람'은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시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지금도 민족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여전히 시련을 겪고 있다.'로 해석됩니다. '어둠 속의 바람'을 말하면서도, 그런 시련 속에서도 결코 흐려질 수 없는 순수한 가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나는 이 마지막 구절의 해석을 보면서 의문이 들고는 합니다. 참 짧은 시인데, 앞부분에서 '개인적 부끄러움 또는 양심의 가책'(이 해석에는 의문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으로 해석했던 시어 '바람'을, 바로 몇 줄 뒤에서는 '사회적, 역사적 시련'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윤동주 시에 드러나는 대부분의 갈등은, 역사적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자신의 나약한 측면과의 대립('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자화상', '참회록' 등)이 원인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의 '바람'도 '역사적 시련'이 아니라 '그 시련을 회피하려는 부끄러운 유혹'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이 구절은 '오늘도 어두운 이 현실 속에서, 양심으로부터 도피하라는 부끄러운 유혹은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 내 새로운 해석을 고집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앞뒤가 다른 '바람'의 일반적 해석을 '괴로워했던' 한 T형 인간의 논리적 추론이라고 여겨 주시면 됩니다. 다만, 이 해석이 윤동주에 대한 인간적 폄훼가 될 수 없다는 점만은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투쟁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만이 저항이 아닙니다. 이미 식민지화된 세상에 태어났으면서도, 양심과 정의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한 젊디젊은 대학생의 이러한 내적 고뇌보다 더 강력한 고발은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 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