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화자인 ‘나’의 처지가 가난하고 쓸쓸한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 화자는 ‘나타샤’를 사랑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자는 현실을 떠나 깊은 산골로 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한 현실 도피를 일러 화자는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행위가 현실에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현실을 능동적으로 버리는 행위임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화자의 인식에서부터 시대적 아픔과 고민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 시인의 의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치열한 현실 인식이 나타나 있지 않아 아쉬움을 주지만, 인간 모두의 마음 속에 근원적으로 내재해 있는 사랑에의 환상적인 꿈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어 서정시의 한 진경을 보여 주고 있다.
- 양승준·양승국, '한국현대시 400선'
이 시는 눈 내리는 밤의 고요 속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화자가, 사랑(나타샤)과 더불어 세속의 더러움에서 벗어나는 상상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사랑해서 눈이 나린다'는 역인과(원인과 결과가 바뀜)의 서술은, '눈이 내리니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로, 눈·술·고요는 사랑과 관련된 상상의 무대를 마련해 줍니다. 그 무대 위에 가난한 화자와 ‘아름다운 나타샤’가 등장하는데, '아름다운 나타샤'는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 화자의 상상 속 사랑입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사랑해서 - 눈이 나린다'는 인과 관계가 뒤집혔습니다. '눈이 내리니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인과관계가 뒤집힌 역인과인데, 시적 허용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나타샤'는 아무런 현실적 단서가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의 사랑이 아니라 상상 속의 사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타샤'라는 이국적 이름도 현실속 인물이 아니라는 암시입니다. 눈 내리는 밤의 고요와 백색의 분위기가 상상 속의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상상 속 사랑(나타샤)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깊어지는데, 내리는 눈은 그칠 줄 모릅니다. 화자는 쓸쓸히 소주를 마시고, 마신 술은 가슴을 타고 머리에 올라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고 상상을 가속합니다. 화자는 상상 속에서 사랑하는 나타샤와 함께 눈이 푹푹 쌓인 길(세속의 때를 덮는 망각과 정화의 장치)을, 흰 당나귀(순수와 이동의 매개. 현실→이상)를 타고, 출출이(뱁새) 우는 산골 마가리(오두막. 고요와 가난. 탈속과 이상)에 가서 살자고 제안합니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여전히 퍼붓습니다. 눈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 표현의 반복은, 고요를 강조하면서 화자가 더 깊은 상상에 빠져드는 배경이 됩니다. 나타샤의 이름을 반복하면서 나타샤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하다가, 급기야는 나타샤가 이미 내 안 깊숙이 들어와 다정히 말을 걸고 있다고 믿습니다. '산골로 가겠다는 건 세상에 진 게 아니라 더러움을 스스로 떨쳐내는 일'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미 밖에서 화자의 안으로 들어온 나타샤가 화자와 의기투합해서 하는 말입니다. 화자의 상상이 내면에서 확신과 선언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눈발은 그치지 않고, 화자의 확신도 더 단단해집니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둘이 흰 당나귀를 타고 가는 모습을 그립니다. 흰 당나귀의 울음은 둘의 순수와, 동물(자연)까지 자기들의 정서에 동조해 축복해 줄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 시는 '상상 전개(2연) → 내면화(3연) → 합일(4연)'로 정서적 상승을 보여주고 있지만, 주제를 규정하는 해설들은 '세속을 떠나고 싶은 도피적 욕망'과 '세상의 질서를 더러움으로 규정해 거부하려는 가치적 의지'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즉, 현실 도피의 욕구로 보는 시각도, 현실 비판의 의지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두 시각은 모두 이 작품을 일제 치하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3연의 '세상 같은 건 더러워'에 신경이 쓰입니다. '세상 같은 건'이라는 말은, 세상이라는 하나의 실체를 딱 못 박지 않고 '세상 같은 부류' 즉 세속, 세상사, 세속적 가치들 전반을 포괄하면서도 경멸과 무시의 의미까지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시대 규정보다는 세속 일반에 대한 낮춤·거리두기·단절의 의지를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도피 / 저항’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누구나 세속을 낮추고 스스로를 단절하고 싶은 때가 있는 법'이라는, 이 작품의 정서적 사실성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 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