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긍정적인 밥' 해설과 감상

- 가난을 요리하는 셰프

by 한현수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8』(조선일보 연재, 2008) -



이 작품은 시인인 화자가 자신이 처한 경제적 현실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화자는 시 한 편, 시집 한 권이 팔릴 때 자신에게 돌아오는 보수가 얼마나 적은지 알고 있습니다. 문학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사실, 노력과 정성에 비하면 대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 그리고 예술 노동이 박한 대접을 받는 현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박탈감이나 자괴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화자는 이 차가운 화폐 가치를 생명을 지키는 따뜻한 '밥(음식)'의 가치로 환산하며, 가난 속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놀라운 정신적 전환을 보여줍니다.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첫 연은 허무와 위안을 함께 드러냅니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라는 보상은 박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쌀 두 말에 비유함으로써, 금전적 금액을 삶의 살림과 생계의 감각으로 돌립니다. 바로 이 환산이 정서의 반전을 낳습니다. 돈 → 쌀 → 밥으로 이어지는 전이는, 현실 비관이 아니라 '살아낼 수 있는 온기'로 바뀌는 과정이고, 시가 나를 먹여 살린다는 믿음이 은근히 깔려 있습니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여기서 국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온기와 위로의 상징입니다. 화자는 시집 한 권의 값이 헐하다고 느끼다가도, 자신의 시집이 그 값으로 살 수 있는 국밥만큼의 따뜻함을 독자에게 건넬 수 있는가를 걱정합니다. '아직 멀기만 하네'에서는 겸손을 드러내며, 시인으로 도달하고 싶은 이상적 가치와 현재의 간격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이 연에서 화자는 가장 적나라한 경제 현실을 마주합니다. 한 권에 삼백 원, 노동과 수고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몫. 그러나 화자는 ‘굵은 소금’이라는 이미지를 불러냅니다. 소금은 부패를 막고, 음식의 맛을 지키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소금은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화자의 태도도 은유하고 있는 듯합니다. 마지막의 ‘푸른 바다’는 앞의 소금과 연관되면서 넓고 깊은 포용, 그리고 마음의 건강함을 상징할 것입니다. 불평 대신 인내, 냉소 대신 생의 긍정. 시인은 경제적 현실 위에 마음의 바다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 시는 궁핍을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습니다. 예술가의 노동이 시장에서 저평가되는 현실을 솔직히 말하고 있지만, 그것을 상처나 분노로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쌀·밥·국밥·소금 같은 생활의 필수품을 통해 예술의 가치를 일상의 경험 속에서 재평가합니다.

부정적 현실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온기로 환원하는 시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돈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가치를 결정한다는 관점입니다. 이 작품은 예술의 경제적 조건이 척박해도, 인간의 마음과 삶은 여전히 ‘따뜻한 밥’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박하고 단단한 긍정의 시입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 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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