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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Dec 08. 2023

정신과 약 3주차-스스로에게 관대해졌다.

또다른 동반자-우울증

약을 먹은 이후로 회사 다니는 게 정말 편해졌다.

출근할 때마다 감옥에 스스로 가는 심정이 들었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회사에서 짜증 나는 일이 있어도 금방 잊었다.

전에는 계속 되씹고 또 되씹어서 의도적으로 잊어버리려고 아무리 산책을 하고 다른 재밌는 걸 봐도 짜증이 나고 화가 안 가라앉아서 답답했는데, 지금은 정상인이 된 것 같다.


약에 대한 거부감도 거의 없어졌다.

이걸 먹으면 자제가 잘 되고 내가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느낌이 드니 거부할 필요가 없어졌다.

우울증 유전자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그걸 갖고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약이 존재하는 세상에 산다는 게 고맙기도 했다.


약 먹고 1주차에 느꼈던 것들은 착각이 아니었다.

확실한 효과를 보고 있다.


음주에 대한 욕구가 거의 사라졌다는 게 정말 너무 신기했다.

쉬는 날 저녁에 남편이랑 넷플릭스 보면서 맥주 3~4캔씩 먹느라 맥주캔 처리하는 게 일이었는데, 이제는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드니 집에서 맥주를 마실 일이 없다.

가끔 마시고 싶을 때는 남편이랑 산책하는 겸 동네가게에 들러 생맥 500cc 두 잔을 간단히 나눠먹고?(거의 내가 다 먹지만) 집에 들어왔다.


알코올 의존증이 이렇게 간단히 치유가 되다니 ㄷㄷㄷ

맥주를 먹어도 더 이상 예전처럼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니 ㄷㄷㄷ

이 간단한 일을 못해서 여태까지 나는 너무 의지가 약하다고 구제불능이라고 스스로 그렇게 타박했는데...


잠을 잘 자게 된 것도 나아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여전히 교대근무를 하느라 숙면을 취하긴 어렵지만 옛날처럼 잠을 못 자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지는 않게 되었다.

잠을 자려고 누워서 몇 시간씩 뒤척이다 술을 찾게 되는 일도 없어져서 선순환이었다.


그리고 또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게으름 피우는 것에 대해 관대해졌다.

전에는 웹툰이나 보고 잠이나 자는 나를 보고 스스로 꽤 한심해했다.

교대 근무하면서 애 키우고 친정엄마 챙기고 이것저것 챙기느라 정신없는 상황이니 그냥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도 될 터인데 이상하게 그게 안 됐다.

그냥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역시 안 되는 인간이라며 자책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냥 별 생각이 없다.

뭐 여가시간에 웹툰 좀 볼 수도 있는 거고, 잠이야 맨날 부족하니 잘 수도 있는 거 라고 편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약의 효과가 이렇게나 좋은 걸까?

내 몸이 양약 빨리 엄청 잘 받는 체질인가?

어쨌든간 그렇게 바라던 정상인이 된 것 같아 안심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건강의학과 세번째 진료-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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